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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 정의를 위해 부정한 손을 빌리다

Shain 2010. 11. 18.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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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드물'이 차라리 정치 드라마를 표방하지 않고 로맨스 드라마의 주인공이 여자 대통령인 내용이었으면 보다 더 관대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대통령이 조연으로 등장한 드라마는 예전에도 많았다. '프라하의 연인(SBS)' 은 대통령의 딸이 사랑에 빠진 이야기였고 '꽃보다 남자(KBS)'의 지우 선배 할아버지는 전직 대통령이었다.

'최초의 여자 대통령 프로젝트' 드라마 '대물'에서 극중 서혜림(고현정)은 드디어 남해도 도지사 자리에 무혈 입성했고 강태산(차인표)은 그녀의 뒤를 도우려 최선을 다했다. 예고를 보니 서혜림이 '복당녀'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선 거 같은데 강태산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자신 만의 가치관을 확립할 지가 다시 두고봐야 한다.

정치인이 드라마의 조연이 되는 건 오락적 요소로 볼 수 있지만 대통령이 메인이 되는 드라마는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크다. 잘못된 정치 컨텐츠의 파급력은 생각 보다 크다. 드라마는 정의롭고 깨끗한 이미지를 깨지 않으면서 현실과 타협하는 방법은 결국 이판사판(理判事判)의 고사처럼 누군가의 희생 밖에 답이 없다는 답안지를 내놓았다. 아무리 정답없는게 정치판이라지만 좋은 점수는 주고 싶지 않다.


서혜림은 언제쯤 자신의 진정성으로 승부를 볼 것인가.




이판사판(理判事判)의 숨겨진 의미

끝장, 갈 때까지 갔다, 막다른 궁지이다 이런 뜻을 가진 이판사판의 뜻엔 조선시대 승려들의 사연이 담겨 있다. 조선의 초기 정책은 알다시피 숭유 억불 정책이다. 고려조까지 불교가 국교였던 나라였지만 갑자기 국가적 탄압을 받게되자 승려들은 먹고살 방법이 없어졌다. 건국 세력은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유학자들이 많았고 상대적으로 승려들은 그들과 척을 지게 되었을 것이다.

하루 아침에 천민으로 전락한 그들은 한편으론 불교나 사찰의 맥을 이어야했고 또다른 한편으론 먹고 살 방편을 마련해야했다. 참선을 하며 불교의 맥과 수도를 수행하는 무리를 이판, 물품 제작이나 장사 등 각종 잡스런 일을 하며 절을 먹여 살리는 일에 종사하는 승려들을 사판이라 하며 각자 소임을 다 했다.

그 두 부류의 승려들은 한쪽은 교리에 밝았지만 살림에 어둡고 다른 한쪽은 세상사에 밝았지만 교리에 어두웠다. 그래서 충돌하여 다투기 시작하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끝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시대적으로도 승려가 된다는 건 성에도 출입할 수 없는 '갈 때까지 간 인생'이란 뜻이기 때문에 이판사판 간의 갈등, 승려의 처지 모두가 최악의 처지란 뜻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도야가 건낸 자료에 충격받고 심장마비를 일으킨 남해도지사 후보



서혜림은 이판, 강태산과 하도야는 사판?

'SBS 대물' 홈페이지를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퇴 처리된 남해도지사 후보는 원래 '사망' 예정이었던 인물이다. 어제 내용으로 보니 하도야 때문에 놀라 심장마비가 온 것으로 죽일 생각이었나 보다. 올곧은 서혜림은 민우당 탈당 후 무소속으로 나섰지만 강태산의 은밀한 지원으로 자신의 보좌관이었던 왕준기(장영남)까지 옆에 둔다. 강태산은 한술 더 떠 복지당 대표와 야합을 하고 민우당 측 후보의 비리까지 하도야에게 넘긴다.

TV 토론회에서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서혜림이야 말로 이판이고 그녀의 뒤에서 모든 것을 보조해주는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사판이 아닌가. 하도야는 원래대로였다면 서혜림의 당선을 위해 협박으로 사람까지 죽일 뻔 했던 것이다. 강태산은 복잡한 선거판에서 자본도 없는 서혜림이 자리잡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정치란 살아있는 생명'이라며 서혜림의 '입으로만 하는 정치'를 비난하는 강태산은 분명 정치판의 생리 하나는 정확히 아는 인물이다.

서혜림이 광고의 결정체인 '헤리티지'에서 호화로운 국회의원 대접을 생각없이 받아들이는 장면도 탐탁치 않은데 강태산의 날카로운 지적과 하도야의 무리한 협박을 지켜보니 주인공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진 것이라곤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진정성과 올곧음 뿐인 서혜림은 언제쯤 강태산을 자신의 사람으로 동조하게 할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는 새 검사와 여당 사무총장을 사판으로 둘 수 있는 것도 능력일까?


착하고 정의로운 조폭이자 하도야와 서혜림의 조력자로 나선 이동백



정의를 위해 부정한 손을 빌려라

'알고서 저지르는 부정'과 '몰라서 저지르는 부정'이 똑같은 죄의 무게를 지니는 지는 사람에 따라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하도야는 (비록 부정한 인물이지만) 도지사 후보를 협박해 사망 직전에 이르게 했고 강태산은 법적 처분을 받을 법한 정보를 하도야에게 넘겨 정치인을 물러나게 했다. 서혜림의 선거 유세를 돕고 있는 인물들은 잠재적 범죄자들인 조폭들이다. 물론 주인공 서혜림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검사의 임면권을 가진 백성민 대통령(이순재)은 하도야의 복귀를 위해 아버지의 곰탕맛을 이으라는 개인적인 수행 과제를 내린다. 조선시대 사헌부 지평의 임면을 결정하는 것도 아닌데 '깨달음'을 얻고 돌아오면 복직시켜 주겠다는 대통령의 인심은 합법적인 절차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장면은 왕에게나 어울리는 모양새다. 하도야는 누명을 썼지만 그 누명이 밝혀지지 않았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징계를 받은 상태다.

하도야가 위험에 빠질 때 마다 등장하는 조폭 이동백(조덕현)은 극의 재미를 배가시키지만 하도야의 수단이 곧은 것인가 생각해보게 만드는 인물이다. 하도야가 '부정한 수단을 써서 서혜림씨를 당선시켜볼까요'라는 하동백의 제안에 아무리 꿋꿋이 거절을 한다고 한들 이동백의 성격이 담백하고 착하며 순종적이라고 한들 그가 폭력조직의 수장이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600만원대 평상복을 못 알아볼 만큼 둔감하다면?



우리 나라엔 예전부터 정치깡패의 역사가 있다. 아니 어느 나라를 가든 재계, 정치권과 결탁한 조폭은 사회의 큰 문제이다. 드라마에서도 강제 철거 장면에 동원된 용역들을 '이동백 패거리'가 물리치는 장면이 등장할 것이다. 그들의 주먹은 세력을 얻기 위해 권력자에게 충성한다. 야당 선거 유세장을 부숴놓고 야유하고 선거판에 박수부대를 동원하던 그들을 벌써 잊어버렸나?

대물의 네 주인공 서혜림, 하도야, 강태산, 장세진(이수경)은 모두 정치권에 연루될 수 밖에 없었던 개인적인 원망을 갖춘 인물들이다. 서혜림과 하도야는 그 원망을 '원대한 목표' 즉 '강에 고등어 만한 은어떼가 돌아오도록' 하는 목적으로 승화시키고 싶어하고 강태산과 장세진은 조배호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를 반드시 실현시키고자 한다. 교과서적으론 분명 앞 커플의 행보를 추구하고자 하는게 제작진의 입장이지 싶다.

도대체 드라마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현재의 서혜림은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은 것인가. 자신의 당선을 이루기 위해 이어진 조폭의 협력도 검사의 협박도 정치권의 야합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일까? 시놉시스 대로라면 남해 도지사 자리에서 내려올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물론 그 모든 걸 '몰랐다'라고 말하거나 그 정도의 잘못이 아니라고 대답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정치 승부'를 볼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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