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바나나 농장 대학살, 지금은 끝났을까

Shain 2010. 11. 2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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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리메이크된 미드 '하와이 파이브 오(Hawaii Five-0)'에 등장하는 코노 칼라카와(Kono Kalakaua)를 맡은 그레이스 박은 한국계입니다만 그녀의 극중 이름 칼라카와는 하와이 왕의 이름입니다. 원작에서는 덩치가 제법 큰 하와이 원주민이 맡았던 역이죠. 드라마 제목 자체가 하와이가 미국의 50번째 주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라 미국에 점령되고 왕국이 사라진 하와이의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식량 제국주의라는 거창한 용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농작물 재배를 위해 희생된 나라들이 제법 많습니다. 하와이는 왕국이 사라지고 미국에 흡수되고,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와 공산국가 쿠바도 미국의 농장이 있던 곳입니다. 그곳 출신들이 미국 뉴욕의 갱단을 이루어 한때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었죠.

단순히 많은 양의 식량을 '남의 땅'에서 생산한다는 문제가 아니라 식량생산을 위해 그 나라를 조종하고 과다하게 생산된 그 식량을 전세계에 팔아치우는 문제가 국제적 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식량생산기지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나라라면 모를까 각자 먹을 만큼은 해결한 후 수입하는게 맞지 않을까 생각하는 쪽입니다. 누군가의 비극을 전제로 한 먹거리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들을 실어나르던 슈거 케인 트레인




바나나, 커피, 파인애플, 와인, 홍차

전세계에 싼 가격으로 대량 공급되고 있는 농산물 중 대표적으로 미국 다국적 기업에 의해 대량재배되는 식량들은 바나나와 파인애플같은 열대 과일들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경우엔 포도 농장에서 일하며 와인을 제조하는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문제로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런 산업들은 공통적으로 배후에 거대 자본이 버티고 있죠.

하와이에 한국인 이민이 시작된건 20세기 초입니다. 목적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바나나 농장 등에서 일할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서였는데 하와이 이민자들의 수난과 고통을 묘사한 이야기를 많이 읽어보셨을 겁니다. 하와이 왕국이 무너지는게 큰 기여를 했던 하와이 대통령 샌퍼드 돌(Dole)의 사촌 제임스 돌(Dole)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열대과일 회사 브랜드라는 걸 모르는 분이 없으실거에요. 전세계적으로 '약한 국가'치고 이런 고통과 무관한 나라는 없을 거라 봅니다.

오 헨리의 소설에 사용된 표현 중 '바나나 공화국'이라는 게 있는데 엘살바도르, 그레나다, 니카라과, 과테말라 같은 중남미 국가들로 열대 과일 수출 이외에는 다른 수입원도 없고 미국에 휘둘리는 나라들을 비꼬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들 나라를 실제로 움직인 건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입니다. 기업에 종속적인 독재 정권을 수립해 자신들의 농장 경영에 도움을 받는다는 공식은 증거가 불분명하다 우기지만 이미 '공식'입니다.




콜롬비아, 바나나 농장의 대학살

멸종 위기에 빠진 바나나에 담긴 진실, 그런 종류의 책이 팔린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착취를 기본으로 재배되는 열대과일들, 사람들은 그런 바나나를 '피의 바나나'라고 부릅니다.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 묘사된 콜롬비아 바나나 농장 대학살은 숨겨진 바나나의 비인간적인 역사를 일부 짐작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지금은 자료가 충분치 않고 조사하기 힘든 내용이 훨씬 많고 세계에 알려진 것도 얼마되지 않습니다.

바나나 농장 대학살(Banana massacre)은 1928년 12월 유나이티드 푸르츠 컴퍼니(현재의 치키타)가 경영하는 바나나 농장, 콜롬비아 산타마르타 지역 Ciénaga 타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현재까지도 숫자가 파악되지 않은 다수의 노동자들이 계엄령을 선포한 정부군에 의해 몰살당했는데 화장실을 지어달라는 등 조금 더 나은 노동 환경을 요구하던 사람들의 파업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정부군의 공식 사망자 발표는 50명 미만이었던 걸로 읽은 듯합니다. 그러나 현장 목격자들이 추정하는 사망 인원은 3000명에 달하며 시신이 모두 바다에 수장되어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유나이티드 푸르츠에게 지원받은 정부는 그 노동자들의 편이 아니었고 전세계에 관련 뉴스가 타전되긴 했지만 관심은 미미했습니다. 콜롬비아의 사례는 일부에 지나지 않고, 정치와 자본의 결합은 결국 국민의 목숨 조차 지켜주지 못한다는 선례를 남겼죠.


바나나 농장의 파업을 주도했던 사람들, 일부는 정부군에게 학살되었다.




전세계적인 식품 브랜드, 지금은

대학살 사건 같은 경우엔 그나마 많은 사상자 때문에 누군가는 끊임없이 회자하는 이야기이지만 농약 범벅이 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숨겨온 현지 노동자들의 고통은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들이 고엽제로 인한 질병에 시달리듯 꽤 많은 전세계의 농장 고용인들이 아직까지 농약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에 싸게 팔아온 그 열대과일들은 이런식으로 겉으로든 안으로든 문제투성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독하게 바나나를 생산하기 위해 100년 가까이 농사를 지었던 땅은 이미 모든 영양분을 다 뺏긴 상태로 '땅심'이 약해져 아주 많은 비료 없이는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태로 망가져 있다고 합니다. 자본없이 일어서고자 해도 많이 어려운 상태라는 거죠.

유나이티드 푸르츠(United Fruit Company)는 현재 사명을 치키타(Chiquita)로 바꾼 상태입니다. 얼마전 국내에도 유기농 바나나(신세계 푸드)를 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U와 8년간 무역분쟁을 치른 회사로도 유명하지요. 이외에도 델몬트(Delmont)와 돌(Dole) 등이 열대 과일 유통으로 유명합니다. 찾아보면 외국에서 수입되는 많은 농산물들이 이런식의 배경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1891년부터 단 하루도 쉬지 않은 바나나 농장



드라마 매드맨(Med Men)은 이런 정치 사회적 배경을 드라마 장면 중 꼼꼼하게 끼워넣기로 유명한데 로버트 케네디와 닉슨의 대통령 선거를 지원하는 장면에서 유나이티드 푸르츠 컴퍼니(U.F.C)가 닉슨의 선거 광고를 지원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동시에 농장 경영으로 생산된 콜롬비아 술, 푸에르토리코 관광 등을 언급하며 그 당시 전세계적인 악명을 떨치던 그 회사의 업적을 떠올리게 합니다. 제작자는 정치와 결합한 다국적 기업 자본을 보여주며 왜 닉슨이 비난받는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줬을 수도 있죠.

예전부터 전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바나나를 잘 먹지 않습니다. 처음엔 농사짓는 부모님을 둔 까닭에 수입품을 먹을 수 없어 안먹었지만 최근엔 다른 이유로 수입 농산물은 잘 손대지 않습니다. 거창한 이념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피해를 전제로 한 음식은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의 '현명한 소비'란 과연 무엇일까요. 서민들이 가장 쉽게 사먹을 수 있는 비타민 C 공급원이 이런식의 생산과정을 거쳤다는 건 아쉬운 일입니다.


이미지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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