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근초고왕

근초고왕, 왕의 주변을 지키는 여인들

Shain 2011. 1. 3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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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이 '선이 굵다'라고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 건 남성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인기리에 방영된 'KBS 천추태후'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긴 했지만 주변 이야기나 정치적인 갈등은 기존 사극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여성의 활약상을 역사로 잘 기록하지 않은 시대의 한계이기도 하고 왕 중심으로 흘러가는 국가를 이룬 이상 여성의 비중은 축소되기 마련이라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사극 속 여성이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은 왕후로서 연인으로서 혹은 어머니로서의 최선일 때가 많습니다. 'KBS 근초고왕'에서 자신이 연모하는 부여구(감우성)을 지키기 위해 발벗고 나선 두 여인, 위홍란(이세은)과 부여화(김지수) 역시 국가를 위해 칼을 들기 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칼을 든 모습을 보여줍니다. 위홍란은 그를 위해 오빠 위비량(정웅인)과의 인연도 끊었고 부여화는 고국원왕(이종원)의 처벌을 각오합니다.


해건(이지훈)은 가짜 서간을 부여구에게 전달하고 부여구와 부여화는 업도에서 다시 없을 애절한 만남을 갖습니다. 고구려의 국상 조불(김응수)은 해건의 음모를 짐작하고 뒤따라 부여구를 어떻게 해서든 없애려 합니다. 그 뒤를 쫓아 위홍란과 진승(안재모)이 부여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달려옵니다. 부여구를 구하려는 사람과 없애려는 사람들 가운데 목숨을 건 여인들의 활약이 돋보입니다.

자기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나는 백제의 위대한 왕들, 부여구의 아버지 비류왕(윤승원)은 가장 사랑하는 아내 진사하(김도연)을 지켜주지 못해 자결하게 했고 그 아들을 요서에 떠돌게 했습니다. 부여구는 부모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 부여화를 떠나보냈는데 자신을 위해 희생한 여자를 다시 버려야하는 지독한 운명에 울부짖습니다. 조불의 중얼거림대로 '정략혼이란 참으로 몹쓸 짓'인가 봅니다.



과연 궁중 여인들의 사랑 싸움일까

위홍란은 백제에 기반 세력이 없는 위비랑 무리, 부여 유민 출신이므로 대성팔족인 백제 귀족 가문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요서에서는 동지였던 진승은 백제로 돌아가는 즉시 진씨 가문의 편을 들며 위홍란을 외면할 것입니다. 제 2왕후의 길을 걷는 이상 제 1왕후 집안과의 갈등은 숙명적인 것입니다. 장자 상속이 확립되기전에는 누구든 어라하의 위에 오를 욕심을 낼 수 있습니다.

백제 해씨 집안과 진씨 집안의 갈등에서 볼 수 있듯 부족이 연합해 세운 나라의 초기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아니 조선처럼 왕권이 확립된 나라에서도 각 당파의 영애들이 왕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다투었던 것만 봐도 권력 싸움과 정략혼은 끊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고대로 갈수록 정권의 몰락과 후궁의 몰락은 가문의 멸문지화를 의미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해소술(최명길)은 적극적으로 제 1왕후의 지위를 이용해 진사하의 기를 죽입니다. 비류왕의 진정한 아내이자 반려자는 진사하 뿐이었지만 해소술의 아이가 장자가 되고 그 아이 부여찬(이종수)의 안정된 왕권을 위해 부여구가 쫓겨가도록 부추깁니다. 해씨와 진씨 가문의 싸움 때문에 해소술이 비류왕과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해야했듯 해여울 역시 부여준(한진희)와 마뜩치 않은 혼인을 합니다.

해소술이 진사하를 종종 괴롭히며 별다른 죄의식없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내뱉는 건 대부인들의 혼인과 지위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운명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진사하처럼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갈 수 없다는 해소술의 대전제가 또다른 남자 계왕과의 혼인을 허락할 수 있게 하는거죠. 부인들이나 후궁들이 진정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 갈등하고 왕의 옆자리를 탐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소서노 못지 않은 위홍란의 기개

다른 남자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부여화의 처신을 알고 해건은 그녀가 죽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여구가 부여화를 고구려로 돌려보내라 했음에 분노하는 이유도 그것이죠. 해건은 부여화를 사랑했으면서도 정략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판단하고 한번도 고백한 적 없는 냉정한 남자지만 목숨이 위험해진 위기 앞에서는 부여화를 먼저 생각합니다. 물론 아버지의 눈물어린 유언을 제일의 목표로 삼고 있는 부여구는 다시 부여화를 보냅니다.

조불의 눈썰미대로 부여구는 고국원왕을 위협하는 인물이 되고 고국원왕은 부여화로 인해 무리하게 백제를 침략한다는 시나리오가 될 것입니다. 나이든 국상 조불의 불안한 예감은 실현되고 만다는 설정이죠. 조금 더 아슬아슬해지기는 하겠지만 부여화는 죽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불안한 가정이긴 하지만 사유가 몹시 사랑하고 소수림왕 구부가 어머니로 여기고 있는 한 쉽게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한 남자의 목숨을 위해 위홍란과 부여화가 함께 등지고 부여구를 감싸는 장면은 인상적입니다. 두 사람 모두 앞으로 백제사를 뒤흔들 한 세력의 최고 여성들이니 더욱 그러할 듯합니다. 어제 부여화가 입고 있던 옷은 제 2왕후의 옷이지만 고구려나 백제 두 나라 중 한나라의 제 1왕후가 될 사람이니 백제 정세에도 영향을 미치겠죠. 장부 못지 않은 기개를 자랑하는 위홍란도 아들에게 위기가 오도록 내버려둘 여인이 아닙니다.

근초고왕이 요서를 지배하고 일본까지 그 위세를 떨쳤다는 꿈은 장자 상속의 위업을 제 1왕후 진씨(혹은 부여화)에게 달성하고 난 후 제 2왕후 위홍란이 왕권 다툼을 피해 요서나 일본에 자신의 아들을 보내는 형식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싶네요. 수적 출신으로 바다에는 누구 보다 익숙한 위비랑 무리들이니 외국에서 능력을 떨치기 알맞을 것입니다. 부여구가 마음을 둔 여인 부여화까지 챙길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을 가진 여성이니 두 개의 나라를 세우고도 거뜬 했던 진짜 소서노의 현신은 위홍란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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