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내 마음이 들리니

내마음이들리니, 제발 미숙씨 죽이지 마요

Shain 2011. 4. 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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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고 잔인하고 과격한 볼거리가 아님에도 시선을 사로잡는 중견 배우들의 활약, 짜장면 한 그릇씩 나눠 먹으며 결혼한 봉영규(정보석)와 미숙(김여진), 아직까지 이름도 짓지 못하고 학교도 다녀본 적 없는 작은 미숙이 봉우리(김새론)는 할머니 황순금(윤여정)과 함께 살게 되어 행복하기만 합니다. 잠자코 짜장면만 먹어치우는 봉마루(서영주) 만이 바보 영구의 아들이란 놀림도 모자라 귀머거리의 아들이라 놀림받게 됐다며 마뜩치 않은 심기를 드러낼 뿐입니다.

봉마루의 친엄마는 역시나 김신애(강문영)이었습니다. 황순금에게 엄마라 부르는 신애는 어찌된 일인지 오빠 봉영규와 성이 다릅니다. '나는 죽어도 그 양반들 못본다'라고 황순금이 한숨을 쉬는 것으로 보아서는 영규의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이 아닐가 싶기도 하지만 하여튼 할머니는 둘을 남매로 키웠습니다. 극중에서는 최진철(송승환)의 아들이 차동주(강찬희)인 것처럼 둘은 성이 다릅니다(최진철은 홈페이지에 차진철로 되어 있더군요).

핏줄이 다른 사람들의 결합이 아름답고 따뜻하기만 하면 좋겠지만 진철과 동주, 태현숙(이혜영)의 만남은 재산 싸움이 예정되어 있어 동주를 그닥 행복하게 해줄 것같지 않습니다. 동주를 몹시 사랑하는 동주의 외할아버지(이호재)는 사위 진철을 경계했지만 그 욕심을 막지 못하고 숨을 거둘 것 같습니다. 현숙 주변을 알짱거리는 신애는 진철 만큼이나 위험한 존재이니 언제 동주의 행복을 위협할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돈도 많이 없고 그렇게 못된 사람도 없는 봉영규네 가족에게도 불행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봉우리의 엄마이자 영규가 가장 사랑하는 아내인 미숙은 공장을 다니다 사고로 죽음을 맞이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이유로 순금에게 이런저런 욕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한가족이 된 미숙이 죽으면 우리와 마루, 영규는 어떻게 살아나가야하는 걸까요. 벌써부터 눈물 바람이 예고되어 있나 봅니다.



이해는 가지만 악당일 수 밖에 없는 사람들

세상의 모든 일이 꼭 본인의 능력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지는 않는다는 진리, 거친 세파를 헤치고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해본 사람들은 자신에게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한편 재산과 지위를 타고난 사람들을 질투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의 재산을 넘어설 수 없고 아무리 승진을 거듭해도 처음부터 사장이나 회장이 되려 태어난 아이와는 경쟁할 수가 없다, 그점을 깨닫는 순간 좌절하기도 하고 자포자기하기도 합니다.

극중 태현숙과 차동주는 진철, 신애, 마루가 동경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습니다. '은수저를 쥐고 태어난' 그 모자는 파티에 익숙하고 돈쓰는 법에 익숙하고 항상 누군가를 대할 때 편견이나 선입견없는 거리낌없고 밝은 미소 만을 보여줍니다. 마치 재산과 함께 능력도 타고난 것처럼 피아노도 잘 치고 여유있고 넉넉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 진철이 결혼을 통해 사장 자리에 오르고 주식을 가지려 했던 건 그들의 것을 갖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노력파'들이 은수저를 쥐고 태어난 사람들을 질투하거나 괴롭히는 것은 아니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조차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이런 일들은 당연히 상처가 됩니다. 자신을 대신해 사장 자리에 오른 남편을 믿었던 태현숙, 의붓 아버지이지만 당연히 동주의 하나 뿐인 아버지라 여겼던 진철이 재산을 모두 차지하고 현숙 모자를 배신한다면 현숙과 동주 역시 할아버지의 유산을 지킬 수 밖에 없습니다.

설정에 의하면 독학으로 어렵게 혼자 대학을 졸업하고 태현숙의 비서가 되었다는 신애나 바보라고 놀림받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마루의 심정도 비슷할 것입니다. 어쩌면 친부모의 운명이 그렇게 되물림되는 것인지 영규가 젖동냥하며 키웠다는 마루는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부유한 동주를 동경하고 영규에게는 한번도 보여준 적 없는 따뜻한 미소를 태현숙에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신애는 이미 중학교 1학년나 된 아들을 이제서야 찾겠다고 해 순금의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진철의 아이가 분명한 마루는 갑작스레 나타난 어머니의 존재가 당연히 반갑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철은 오히려 자신이 바보 영규의 아들이 아니란 점에 안심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낡아빠진 시골집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할머니와 지능이 낮은 아빠, 소리도 못 듣는 새엄마와 살까 했지만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입니다.

결혼하기 위해 연인을 배신한 진철, 재벌가 부근에 머물며 친자식을 오빠에게 맡기고 사라진 신애, 길러준 아버지를 두고 떠나는 봉마루, 어쩌면 한가족의 운명이 이렇게 '지독하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봉우리와 차동주, 봉영규에게 악당 역할을 하게 될 것만은 분명합니다. 안 그래도 슬픈 운명의 영규 가족에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겠지요. 황순금이 신애를 두고 '미친 X'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만도 합니다.



영규와 미숙씨의 슬프고도 짧은 사랑

진철의 가족이 이렇게 계산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동안 진철이 '구질구질하다'고 표현하는 봉영규는 평생에 처음 느끼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말도 못하고 소리도 못 들어서 깡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불쌍한 미숙씨, 미숙씨와 작은 미숙이가 슬퍼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영규는 두 사람과 가족을 이뤄 잠깐 동안의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바보같은 아버지의 행복한 미소는 반갑기만 한데 예고편을 보아하니 두 사람의 사랑은 짧기만 합니다.

짜장면을 나눠 먹으며 결혼한 미숙과 영규. 봉우리의 운명 때문이라도 그들의 슬픈 사랑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일입니다. 드라마에 밝고 따뜻한 한 축을 이루고 있던 미숙의 죽음을 두고 많은 시청자들은 몹시 안타까워하며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미숙이 죽고 나면 드라마의 밝은 분위기는 영규와 봉우리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해야한다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동주'는 한동안 차가운 아이로 변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동주가 될 수 없는 마루, 아무리 노력해도 현숙이 될 수 없는 신애와 진철의 고통은 이 드라마에 '악역'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들이 숨겨둔 아들, 마루의 비밀은 어쩌면 또다른 '막장'의 코드를 예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봉우리와 미숙의 수화처럼 마음으로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귀막아도 들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 메시지를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숙과 마루,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벽에 머리를 찧으며 괴로워하는 영규, 그런 영규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 미숙씨 제발 죽이지 말라는 팬들의 의견, 동감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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