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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빛나는, 황금란 공감받는 악역되려면?

Shain 2011. 5. 30.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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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어르신들은 자기가 그 처지가 되보기 전엔 남의 말을 쉽게 하지 말라고들 합니다. 세상에 기막힌 사연이 워낙 많아 그 환경에서 그 입장이 되어 자라 보기전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는 뜻이죠. 타고나게 워낙 못된 심성도 있는게 사실이지만, 남들이 아무리 손가락질하고 타일러도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극중 황금란(이유리)가 한정원(김현주)를 밉다고 원망하고 싫어하는 심리, 그 마음을 '남탓'이나 '피해의식'이라 쉽게 치부하기 힘듭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밝고 튼튼하게 살 수 있도록 길러진 면역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는가하면 평생을 시달리며 간신히 버텨온 면역력이 약한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황금란이 어려운 처지에서는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으려고 기를 썼지만 간신히 좀 살만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 지금에서는 복수니 증오니 그런 억울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 안정되게 '부잣집 외동딸'로 정착하기 전까지 황금란이 겪어야 하는 일들은 일종의 열병같은 것들입니다.

제가 아는 지인 중 한명은 꽤 오래 '언니 컴플렉스'에 시달렸습니다. 전교 1등, 다재다능, 예쁘고 성실한 그 지인의 언니는 가족과 친척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우등생이었고 딱히 부모님이 둘을 비교하거나 동생의 기를 죽인 건 아님에도 항상 '언니를 넘어설 수 없다'는 컴플렉스와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옷을 사도 자신이 고른 건 덜 예쁜 거 같고 요리를 해도 언니 보다 잘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는군요.

큰 상처는 아닐지라도 어린 시절에 그 지인에겐 충분히 마음을 다쳤을 만한 일 중 하나였고 이후에는 자신의 배우자 조차 언니의 배우자 보다 못한 사람은 아닌지 신경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 마음 속엔 이렇게 약간씩은 비합리적이고 자신의 힘으로 잘 해결되지 않는, 컴플렉스와 상처가 하나씩은 다 있을 것이라 봅니다. 황금란이 자신 보다 밝고 솔직하게 자란, 학벌도 좋고 자기 능력도 발휘할 줄 아는 한정원에게 느끼는 상처, 그 열등감은 쉽게 치유되는 것들은 아닙니다. 다만, 드라마에서처럼 악행을 계속 저질러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은 아무나 하지 않지요.



금란이 동정받는 캐릭터가 되려면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황금란의 컴플렉스, 그리고 한정원 보다 비참하다고 느끼는 이유에는 대부분 공감합니다. 부족함없이 자라 여유롭고 모든 상황을 쉽게(나름 노력하는 거겠지만) 받아들이는 정원은 가난한 집으로 가서도 웃음의 중심에 서 있는 밝은 아이로 대접받았습니다. 찌들은 가난 때문에 자신은 늘 찌푸린 인상을 펼 날이 없었고 오래 사귄 애인 조차 자신을 쓰레기 취급하며 함부로 대했는데 정원은 거기서도 귀한 아이였습니다.

일부 강경한 분들은 환경이 사람을 모두 바꾸진 않는다며 금란이 원래 못났다고도 하지만 이는 일부 사회적 현실과 우리가 경험한 편견들과도 일치하는 묘사입니다. '부자가 망해도 삼년 간다'는 말의 속뜻 중엔 그 부자의 숨겨진 재산을 까먹고 산다는 뜻도 있지만 고생을 모르고 살던 여유로운 성격 덕택에 더 잘 버틴다는 뜻도 있습니다. 성공한 경험만 가지고 있는 정원이 체력도 정신력도 튼튼한 상태에서 힘겨운 일을 겪으면 좀 낫다는 뜻입니다.

정원과 달리 황금란의 인생은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 딱 알맞은 실패 경험의 연속입니다. 특히 사채업자에게 납치당했던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일로 실제 비슷한 일을 당했던 사람들은 한달 가까이 넋나간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생활하기도 합니다. 사법고시 합격한 8:2 가름마 애인이 황금란을 버렸던 일은 그녀의 정신력을 한방에 날려버린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실제로 두 가지 일을 한번에 겪은 사람이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의심스럽습니다.

그렇게 '불쌍한 황금란'이 동정을 받기는 커녕 악녀라며 심한 욕을 먹는 건 그녀의 분노, 공격적인 행동이 유치하고 자기파괴적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도 도둑질을 했다거나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 사채업자의 악행에 동조하는 것 등은 상식적으로 용납받을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일반 사람들의 가치관에도 어긋나지만 평소 금란의 가치관에도 어긋나는 일로 그 행동이 용납받으려면 '정신병 징후'라는 진단이라도 받아야할 것입니다.

무엇 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황금란이 겪는 마음 속의 우울함, 컴플렉스는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그런 종류의 감정인데 반해 금란은 비상식적으로 그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정원이에 비해 사회적 능력도 무엇도 떨어지는 대접을 받고 살아왔을까, 무엇 보다 긍정적인 저 아이의 성격에 비해 우울하고 음침한 느낌을 주는 사람일까, 지금까지 빚에 쪼들려 제대로 학벌이나 경력도 쌓지 못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그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힘든 건 알겠는데 그런 식의 '악행'으로 표현하는 건 분명 틀린 방법입니다.

황금란은 악행 부분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서민'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29살이 되도록 가난과 일상에 찌들어 우울함이 가중되고 돈가진 사람들과 '있는 집 자식들'의 은근한 무시에도 익숙해진, 한번 감정이 폭발하면 눈물이 멈추지 않을 것같은 그런 안쓰러운 서민들. 차라리 황금란이 정원이가 가진 돈이이나 송편(김석훈)같은 외적인 것들이 아닌 능력, 성실함이나 밝음, 따뜻함을 흉내내고 카피하려다 망가질 때 훨씬 공감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유리의 생계형 악역 황금란?

일각에선 황금란 같이 환경 때문에 삐뚤어진 마음을 갖게된 악역을 '생계형 악역'이라고 부른답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을 탈출하고 행복해지고자 보다 적극적으로 악역에 몰입하는 타입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기자는 '내 마음이 들리니'의 남궁민도 이런 류 악역으로 분류합니다(극중 봉마루, 즉 장준하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봉영규 가족을 버렸다는 뜻). 확실히 어렵게 자란 아이가 무조건 수동적으로 운명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질리도록 보았던게 사실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티없이 밝은 모습으로 생계형 곤란을 모두 받아들이는 만화같은 혹은 비현실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코믹물'이라면 모를까 받아들이는데 한계가 있겠죠. 악행에는 전혀 공감이 가지않고 행동도 음침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황금란. 역시나 이번 주에도 황금란에 대한 찬반 논란은 '뜨거운 감자'처럼 게시판을 흔들어놓고 있습니다. 악역으로만 치닫는 금란이 저 역시 많이 안타깝습니다. 캔디가 신데렐라가 되었는데 자신의 손에 쥔 행복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니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일부 시청자들의 의견, 차라리 그런 컴플렉스를 홀로 삭이지 말고 한번쯤 못되게 발산해버리는 게 앞으로의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위해 좋지 않겠느냐는 의견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어느 쪽이 되었든 송편의 어머니 때문에 양쪽 집 모두 힘겨운 일이 생길 것같은 분위기인데(금란 때문이라 봐야할까요) 금란이 계속해서 악행만 저지를 수 있는 처지는 아닌듯 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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