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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빛나는, 금란의 삐뚤어진 가치관은 다른 차원의 배고픔 때문

Shain 2011. 6. 2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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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드라마를 시청해왔고 자극성과 선정성, 혹은 소재 때문에 논란이 된 드라마들은 많았지만 이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처럼 가치관 차이가 선명한 드라마는 처음입니다. 점을 만들어 새로 태어난다는 시놉시스의 '아내의 유혹' 조차 막장 논란은 있어도 여주인공의 약간은 악질적이고 화끈한 복수에는 반발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주인공 황금란(이유리)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이해할 수 있다, 없다 입장 차이도 천차만별이라 오죽하면 황금란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금란빠'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사실 이 드라마 주인공들은 가치관 차이가 참 극명합니다. 지금은 상대방송국의 '광개토태왕'에 담덕의 형 태자 담망 역으로 출연하느냐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윤승재(정태우)의 경우 뼈속부터 속물이라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는 상당히 '물질적'입니다. 여자는 예쁘거나 부자라면 다 좋고 그렇지 않은 여자는 자기 뒷바라지를 해줬어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검사가 된다면 악질 중의 악질이 될 것같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이 드라마 등장인물들은 정도만 좀 다를 뿐 '반짝반짝 빛나는' 것에 대한 정의가 상당히 다양하죠.


한정원(김현주)과 한지웅(장용)의 가치관은 극중에서 가장 올곧고 인간적인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부잣집 딸로 황금란(이유리)에게 훈계를 하기도 했던, 약간은 재수없게 굴던 정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내면의 가치를 중요시합니다. 출판업계의 거물 한지웅 역시 그런 딸과 마찬가지로 원칙주의자고 직원의 능력을 중요시하는 반듯한 성격입니다. 즉 두 부녀가 정의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것의 정체는 내면의 성숙함이나 삶의 원칙같은 것이죠. 소박하긴 하지만 신림동 엄마인 이권양(고두심)의 가치관도 그렇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반면 도박으로 한탕을 꿈꾸는 황남봉(길용우)이나 진나희(박정수), 진나희의 아들인 한상원(김형범)의 가치관은 좀 다릅니다. 진나희의 경우 돈만 추구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들에게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비싼 다이아몬드의 빛같은 것입니다. 돈없이는 사람답게 살 수 없고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 아버지는 부모도 아니라고 느끼는 그들은 평범하긴 하지만 내면의 가치 보다는 물질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백곰(김지영)은 그 가치관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죠. 진나희가 종종 백곰을 혐오하는 듯 이야기하지만 물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면은 일맥상통합니다.



금란이가 추구하던 가치관은 무엇일까

지금은 백곰의 후계자가 되겠다 하고 정원을 사랑하는 송편집장(김석훈)에게 목을 매고 있어도 황금란은 본래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여자는 아니었습니다. 좋은게 좋은거라 한때 윤승재와 결혼하면 편하게 살 수 있겠구나 남들처럼 부유한 결혼을 꿈꾸기도 했지만 난봉꾼 황남봉이나 지지리도 가난한 집안을 도와주며 살던 그녀는 완전히 물질적이라 하기엔 흔히 볼 수 있는 착하고 평범한 둘째딸이었습니다. 윤승재와의 결혼 정도로 '속물'이라 보기엔 그녀의 평소 행동이 너무나도 순종적이었습니다.

송편집장의 어머니 백곰은 돈을 최고로 여기는 극단적인 가치관을 가진 인물입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란이처럼 한두가지 이기적인 선택을 해도 돈을 최고로 여기진 않습니다. 지금은 삐뚤어져 백곰의 추종자가 된 금란이가 처음부터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는 건 시청자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가 부잣집 딸이 되고 갑자기 정원을 미워하기 시작하더니 백곰을 따라다니는 삐뚤어진 아이가 되어버렸죠.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한지웅에게 아버지는 '명품백'같은 존재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은 진심인듯 합니다. 아직 자신은 부유함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했는데 빼앗겠답니다.

돈에 대해 다른 태도를 보이는 두 사람


80-90년대에 흔히 '비행청소년'의 일탈은 가정 문제가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원인분석을 보며 배고픈 전쟁을 겪은 어른들은 저게 다 '배가 불러서' 하는 짓이라며 혀를 끌끌 차곤 합니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일차적인 삶의 목표였던 노인들은 부모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울부짖는 어린 청소년들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공부하라고 압박을 주긴 해도 의식주를 완전히 해결해주는 부모가 있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냐고 오히려 화를 내기 일수였죠.

부자가 된 이후에 점점 더 악마가 되어가고 혼란을 겪는 금란이의 상태가 딱 그렇습니다. 정원이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재산과 편안한 환경을 가지게 되었고 자기가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 지원해줄 부모가 있는데 남의 남자나 차지하겠다며 악을 쓰는 모습이 남들 보기에 전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상황인데 뭐가 불만이냐며 타박하기 딱 좋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금란은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 만의 가치관을 확립하지 못한 혼란 상태일 뿐입니다.

극단적인 가치관의 차이를 보이는 두 부모


사채업자에게 납치당하고 애인에게 차이고 정원에게 무시당하기까지 했던 우울하고 슬픈 삶을 살았던 금란은 자신과 출생이 바뀌어 곱게 살아온 한정원을 처음부터 미워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친부모도 자신을 길러준 부모도 어떤 사람들도 한정원을 환영하고 사랑해주며 안타까워합니다. 진짜 불쌍한 사람은 30년 가까이 윤택한 삶을 뺏긴 자신인데 아버지 조차 길러준 자식에게 안타까워하는 점이 억울하고 분해서 미치겠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정원의 '빛나는' 가치는 어디에서든 환영받습니다.

시청자들은 황금란이 '빛나는' 것을 얻는 방법은 내면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것 뿐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한정원과 황금란의  차이점은 가난하고 지독한 환경과 부유한 환경이란 것도 있지만 한정원이 한지웅 밑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가치관을 쌓아갈 동안 금란은 생활고에 지쳐 세상을 버틸 힘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진나희가 건내준 다이아 반지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 돈과 부유함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 뿐이죠. 금란은 승재가 선을 보던 정원이 첫만남에서 금란에게 잘난척할 수 있었던 이유가 부자집 딸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을 보고서야 깨달을 수 있을까

부자가 된다는 것은 백곰처럼 사채업자가 되어 남의 불행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결정한 한지웅의 가치관은 분명 '돈이 전부는 아니다'란 쪽이겠죠. 일부 네티즌들은 이런 한지웅의 결정이 이제서야 부유한 삶을 살게된 황금란에게 더욱 잔인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한정원이 현재의 '빛나는' 가치관을 가질 수 있었던 조건 중 하나는 따뜻하고 반듯한 아버지도 있지만 생계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풍요로운 삶에도 분명 있습니다. 굶는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좀 더 차원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겁니다.

반면 황금란은 물질의 가치가 먼저냐 정신적 가치가 먼저냐를 따져보기도 전에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어떻게든 편하고 넉넉한 삶을 살고 싶은 일차원적인 욕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명품옷을 두르고 눈에 띌 정도로 화려해진 그녀는 부유함이 정원이 여유로울 수 있는 비밀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환경에 적응하려다가도 한정원 중심으로 만들어진 현재의 세상이 부당하게 느껴집니다. 현재의 금란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서러움과 억울함을 벗어던지고 또다른 가치를 깨달으려면 열병같은 시련이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귀한 너는 비천한 나 따위와 싸우지 않는다? 금란은 자신을 낮춰보는 정원을 증오할만 하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엔 여섯 단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상황과 성장에 따라 자신의 욕구를 조금 더 상위의 욕구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이론인데 인간은 배고픔과 같은 하위단계의 욕구를 해결하면 소속감이나 사랑을 받고 싶은 좀더 윗단계의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합니다. 한정원은 이미 부유함의 정점에서 자아실현이나 명예같은 자신의 욕구를 채워보려 했던 위치에 있지만 금란은 이제 간신히 배고픔을 면했을 뿐입니다. 그 이상의 가치를 요구하기엔 아직 사랑받지 못해 허기가 진 금란입니다.

금란이에게 정원이 했던 말, '너 같은 건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그 말은 금란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던 지웅과 정원의 가치관이면서 자신을 한 수 아래로 보는 듯해 불쾌할 수 밖에 없는 말입니다. 정원은 정원대로 신림동 가족의 여려운 삶을 이해하듯 금란을 이해해야 하고 금란은 금란대로 한지웅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고 좀 더 성장해야만 합니다. 한상원의 아이를 임신중인 이편집장(전수경)이 한상원을 철들게 한다고 표현한 것처럼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은 아니니 자신의 환경과 생활에 알맞는 교훈을 얻어야겠지요. 요즘은 백곰집 앞에 복면남까지 들락거리던데 아슬아슬한 드라마가 되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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