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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리플리, 장미리가 양다리 걸치는 이유는 남성 불신

Shain 2011. 6. 21.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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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드라마를 보면 드라마 작가들의 편견이 드러나는 것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최근 논란을 불러 일으킨 '신기생뎐'의 작가가 운명론을 선호한다던가 특정 직업에 대한 폄하를 별다른 죄의식없이 드러낼 때는 아무리 세상에 널리 퍼진 선입견이라지만 그걸 방송에서 언급해야할까 싶은 때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드라마 '미스리플리'에서 묘사되는 주인공 장미리(이다해)의 가치관과 행동패턴도 여러모로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살기 위해 학력을 위조하고 남들처럼 똑같이 살아보려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난 장미리, 첫회에서 그녀가 거짓말을 하게 된 과정은 충분히 납득이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값싸고 전혀 동정이 가지 않는, 미인계와 거짓말이 성공의 수단인 듯 생활하는 태도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작가는 마치 술집을 다녔던 여자는 그렇게 행동하는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미리의 행동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려면 예쁜 얼굴을 가졌어도 고졸 학력이란 핸디캡 때문에 오히려 성추행을 당해야했던 그 부분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던 것같습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도 사랑을 파는 건 똑같다. 별로 달라지지 않은 인생.

장미리가 술집에서 소위 '힘있는 사람'을 접대하고 웃음을 팔며 애교섞인 목소리로 그들의 비위를 맞추며 배운 진리, 그리고 자신을 우습게 알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몸소 배운 진리는 '남자들은 미인에게 약하다'라는 점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한갖 돈에 살 수 있는 값싼 여자로 보는 남자에게 배운 세상은 그랬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장명훈(김승우)과 송유현(박유천)을 동시에 유혹하고 속여도 그녀에겐 죄책감이 들지 않습니다. 원래 세상은 속는 남자가 바보고 성실히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이 이용당하기 마련이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장미리에게 술집에서 술마시고 남자들에게 거짓웃음을 파는 거나 새로운 세상에서 남자들에게 사랑을 팔며 승승장구하는 것이 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미리에게는 명훈도 유현도 미인계에 속아넘어간 바보일 뿐이고 자신을 협박하는 히라야마(김정태)가 존재하는 한 세상은 똑같이 위험하고 치열한 전쟁터일 뿐입니다. 드라마는 첫회의 자극적인 설정으로 학력 위조의 이유를 납득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이런 미리의 속마음, 두 남자에게 양다리를 걸치는 그 이유는 제대로 납득시키지 못한 것 같습니다.



남자를 불신하지만 남자를 유혹하는 두 여자

장미리는 호텔 에이의 대표가 될 장명훈가 연인 사이가 되었지만 자신이 '썩은 동아줄'이라며 무시했던 송유현이 300개의 체인망을 가진 몬도 그룹 후계자라는 걸 알고 난 후엔 이런저런 거짓말로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유현이 사업상의 문제로 희주(강혜정)와 함께 제주도로 내려가자 자신도 휴가를 내고 제주도로 쫓아갈 정도로 치밀하게 유혹합니다. 병중인 송유현의 아버지 송인수(장용)가 음식 문제로 호텔 직원들을 애먹이자 미리는 호감을 살 좋은 기회로 여기고 자원합니다.

손으로 직접 간장게장을 발라주는 장미리에게 만족한 송인수는 아내 이화(최명길)에게 호텔 여직원이 당신 만큼이나 게장을 잘 발라내더라며 칭찬을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영 떨떠름한 표정이 된 이화를 보니 이화 역시 과거에 송인수에 맘에 들기 위해 비슷하게 행동한 적이 있나 봅니다. 장미리의 특징이 입 속의 혀처럼 굴며 남자들의 비위를 잘 맞추는 것인 것처럼 장미리의 엄마로 추정되는 이화 역시 남자에게 같은 행동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옛날 생각이 떠올라 혹은 자신의 속셈 때문에 경쟁자가 생긴 것은 아닐까 싶어 기분이 좋진 않았던 거겠죠.

장미리를 위해 성당 프로포즈를 준비한 장명훈과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한 송유현

생글생글 웃으며 다정한 말을 하고 혹시라도 상대방에게 폐가 될까 배려하는 듯 조심스런 발언을 하는 미녀가 자신을 속이며 속셈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좀처럼 믿기 힘들 것입니다. 장미리의 불성실한 태도를 비판하며 장명훈 이사가 '여자보는 눈이 없다'고 비판하는 호텔 직원이나 호텔의 기획실장인 정시영(김나운)이 장미리를 어쩐지 불편하게 쳐다보지만 속고 있는 남자는 이 여자가 오로지 나만 바라보고 있다 믿으며 꿈에도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유혹에 넘어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보통 이런 양다리나 거짓말의 밑바탕엔 일종의 '불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화가 시청자의 예측대로 가정을 버리고 송인수를 유혹한 것이라면 이화는 사고를 당한 아내가 있음에도 자신에게 끌리는 송인수를 내심 불신하게 됩니다. 자신이 유혹했어도 '너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구나' 싶어지는 것이죠. 그리고 자신 역시 상대의 마음에 들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과거를 속였으니 자신의 약점 때문에 더욱 상대방을 못믿게 됩니다. 늘 긴장하고 완벽한 여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감추고 위장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비슷한 부류의 두 여자 이화와 미리, 과연 모녀일까

자신은 장이사의 성당 프로포즈를 받느냐 바빴지만 집에 돌아온 장미리는 송유현이 울었던 문희주를 달래며 함께 있던 장면을 보고 화를 냅니다. 희주에게는 더욱 심하게 겉과 속이 다르다며 내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꼬리치지 말라는 식으로 함부로 말하죠. 유현과 희주가 자신의 생일을 위해 몰래 준비했다는 점에 기뻐하기 보다 둘이 함께 있다는 사실에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희주가 자신의 거짓을 폭로할까 무섭기도 하고 예쁘장한 자신의 애교에 넘어간 유현이란 남자의 진심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하긴 장이사라는 이혼남과 송유현이라는 재벌 후계자가 자신에게 진심이고 사랑 밖에 모르는 순진한 남자라고 믿기엔 지금까지 장미리가 만나온 남자들이 정상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빚을 갚아도 자신을 보내려 하지 않는 히라야마가 대표적인 악마같은 남자였고, 술을 마시며 미리가 접대한 사람들, 성추행을 하려던 면접관 등이 그녀의 세상에 대한 신뢰를 모두 빼앗아가버렸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지리 운없고 복없는 여자라서 사랑까지 속여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성격이 되었다는 것인데 현재로서 드라마는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합니다.



거짓말의 결론은 비극 뿐일텐데

어제 방영분에서도 새로운 남자들을 미모로 휘어잡은 장미리는 희주의 포트폴리오를 훔쳐 장이사에게 제출하고 학교에도 특강을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한마디로 드라마의 모델이라는 신정아가 갔던 길을 그대로 밟을 요량인가 봅니다. 거짓 학위와 거짓 포트폴리오가 힘을 얻다니 드라마라지만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네요. 문제는 그렇게 거침없이 나아가는 장미리의 미래가 절대 밝아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삶도 술집여자로 살던 그 시절과 그닥 다를 바가 없지만 자신의 거짓말을 책임져야할 때도 있겠죠.

자신의 인생까지 빼앗긴 희주, 또한번 희생할까

드라마의 첫회가 장미리에 대한 회상신으로 시작되었다는 건 마지막엔 장명훈의 곁에도 송유현의 곁에도 장미리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장명훈의 사랑을 얻게 되더라도 학력 위조를 비롯한 여러 문제가 발목을 잡을 것이고 송유현의 사랑을 얻으면 시청자들의 짐작대로 이화가 친어머니인 경우 둘은 의붓남매가 됩니다. 과거 유행했던 '하늘이시여' 후속편을 찍을 게 아니라면 둘의 결합은 불가능하단 이야기죠. 드라마의 특징상 거짓말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란 것은 이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신뢰와 문희주의 인생을 담보로 얻은 성공, 세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 장미리가 그닥 행복할 리도 없습니다. 자신으로 인한 불행에 마음이 아파올 것이고 세상을 속인 결과가 사람을 잃는 것이란 점을 알게 될 지도 모릅니다. 법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불행할 수 밖에 없는 결말, 한마디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장미리의 인생이 위태로워보입니다. 하여튼 캐릭터를 잘 설명해주지 못해 공감을 얻지 못하는 드라마 '미스리플리', 이번에도 시청률이 하락했다고 하는데 박유천의 힘으로도 극복하기 힘든 문제인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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