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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리플리, 하루아침에 연인에서 오빠가 되어버린 유현

Shain 2011. 7. 13.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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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속극의 재미는 퍼즐을 풀듯 풀어가는 미스터리거나 복잡한 두뇌게임이 아닌 극적인 상황 연출이나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 진행에 있습니다. 실화에서 소재를 끌어왔더라도 누가 생각해도 주인공 팔자가 참 사납구나 싶도록 이야기를 끌어가는가 하면 눈에 뻔히 보이는 출생의 비밀이나 음모를 배치시켜두기도 합니다. 말하지만 드라마 '미스 리플리'의 여주인공 장미리(이다해)가 극중 송유현(박유천)의 계모인 이화(최명길)의 딸이란 건 시청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짐작했던. 반전도 아니고 비밀도 아닌 부분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극적으로 설득력있게 그 장면을 연출하느냐였는데 역시 연륜있는 배우 최명길의 연기력은 감탄할 만 하단 생각이 들긴 듭니다. 자신의 사랑과 성공을 위해 딸과 동거남을 버리고 신분까지 위장해 송유현의 아버지 송인수(장용)과 결혼할 정도로 이기적인 성격인 건 처음부터 잘 표현되고 있던 부분인데 이화는 그 이면에 몰래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 친딸이 아들의 약혼자, 그것도 자신이 직접 괴롭히고 뺨까지 때렸던 그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온갖 복잡한 감정이 밀려와 울먹이는 표정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학력을 위조하고 친구를 괴롭히고 연인를 희롱하는 미스 리플리, 장미리의 운명은 법적으로나 인정상으로나 동정을 받기 힘든 행동들입니다. 그녀의 아슬아슬한 거짓말이 언제 들킬까 조마조마한 맛은 있어도 드라마라는 특성상 언젠가 대가를 치르리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 드라마는 그 부분에 보태 악녀라고 지탄받는 한 여자의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연을 흥미롭게 묘사해야 합니다. 드라마 '미스리플리'의 마지막 두 편은 어쩌면 거짓말하는 장면 보다 더 표현하기 어려운 결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아 고아가 되고 일본으로 입양을 갔지만 열다섯 어린 나이에 유흥업소로 가게 되고 유흥업소에서 양아버지 빚을 갚다 한국으로 도망온 여자. 정식 취업 비자를 얻고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고졸 학력의 장미리를 받아주는 곳도 없고 오히려 예쁜 외모 때문에 성추행이나 당하는 비참한 현실. 드라마는 그런 여자가 끔찍한 거짓말로 삶은 바꾸려 했던 원인을 이화와 송인수의 이기심 때문이라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의 원인, 김정순의 정체는 이화

장미리가 사문서 위조 및 업무 방해 혐의로 검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되자 송유현은 일단 장미리의 안전을 위해 변호사를 보내줍니다. 마치 신정아 스캔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학력 위조로 사회가 떠들썩해질 것같자 권력층이 비호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화는 또다시 장미리와 몬도 그룹을 완전히 떼어놓기 위해 각종 조치를 취하기 시작합니다. 학력을 위조한 과거 유흥업소 종사자가 몬도그룹 후계자의 약혼녀란 사실은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만한 엄청난 추문입니다. 어떻게든 장미리와 몬도는 관계가 없어야 합니다.

장미리가 이화의 친딸이란 설정 때문에 껄끄러워 그렇지 몬도그룹을 운영하는 이화의 반응은 상당부분 현실적입니다. 처음에는 집안과 배경이 탐탁치 않은 한 고아 여자아이에 대한 경계 정도였는데 장명훈(김승우)과 깊은 사이였다던가 뒤를 캐면 캘수록 수상한 과거는 아무리 송유현의 계모라도 걱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딸까지 버리고 결혼할 정도로 사랑했던 송인수의 아들이 그런 여자와 결혼한다는데 상식적으로 싫어할 수 밖에 없지요.

검찰조사를 받게 된 장미리와 공식 대응에 나선 이화

친엄마 마저 외면하는 장미리에 대한 사람들의 대우는 딱 그 정도입니다. 감싸줄 부모도 진심으로 미리 만을 위해주는 친구도 없는 그녀를 받아준다는 사람은 죽도록 싫다며 도망나온 히라야마(김정태) 밖에 없습니다. 유흥업소를 다닌 경력까지 밝혀져 모두 장미리의 적이고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들만 세상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어린 시절의 선택을 후회한다고 한들 한국으로 나와 어머니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한들 그녀를 동정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입니다.

장미리 만큼 비극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김정순의 정체가 이화라는 걸 알게 된 송유현의 심정도 마찬가지로 비참합니다. 사랑한다고 믿었던 여자가 거짓말쟁이에 과거가 복잡한 여자란 걸 알게 된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 지경인데 20년 이상 어머니라고 불러왔던 존재가 그 여자의 친어머니라니 하루 아침에 연인이었던 여자를 여동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송유현 역시 혼란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엄마가 사라진단 느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송유현

차마 어머니에게 당신이 괴롭히던 나의 약혼자 장미리가 당신의 딸이란 말도 하지 못하고 장미리가 자라던 수녀원까지 찾아가 이야기를 전하는 송유현은 장미리에 대해 잠시 가졌던 원망, 왜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마음까지 버리게 됩니다. 송유현 자신이 장미리가 일본까지 가 불행하게 살아야했던 원인이라니 그녀의 인생을 알면 알수록 자신에게 인생을 빼앗긴 장미리가 불쌍하기만 합니다. 새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에 장미리의 인생이 희생당한 것입니다.

그러고보면 세상을 뒤흔든 한 여자의 거짓말, 그 원인이 친어머니의 무책임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도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타인을 속여서라도 한때의 달콤한 꿈을 꾸고 싶었던 불나방 장미리, 성냥팔이 소녀가 크리스마스날 밤에 켰던 성냥불같은 환상을 보기 위해 모든 걸 내던진 장미리. 어머니가 아이를 버리고, 기댈 곳없는 여자아이를 유흥업소에 거두고, 젊은 여성에게 추근대고, 공정한 기준에 의해 재능있는 인재를 뽑기 보다 미모를 중요시하는 그런 곳에서 처음부터 장미리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거짓말 밖에 없던 건 아닐까요.



충격의 삼자대면, 이화는 어떻게 대처할까

드라마 '욕망의 불꽃'을 볼 때도 의붓아들 때문에 친딸을 괴롭히는 어머니 역할이 지나치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느끼며 이십년 넘게 그리워하던 친딸을 괴롭힌다니 작가들에겐 그만큼 극적인 연출도 없나 봅니다. 이후에 관계를 회복하더라도 의붓아들에게 맞지 않는 짝이라며 뺨을 때리고 괴롭히고 그런 일을 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평생 괴로워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전국민의 비난을 받는 장미리의 처지는 남은 인생을 손가락질 받는 죄인으로 살아야할 지도 모르는 최악의 상황입니다.

장미리를 구원해줄 사람은 과연 누구

검찰 조사에서도 자신이 거짓말로 만든 세계와 실제 세계를 혼동하는 모습을 보여준 장미리, 자신의 성냥불로 만든 환상은 언젠가 사라진다는 걸 깨닫기엔 너무도 춥고 배고팠던 그녀기에 '성냥팔이 소녀'의 한장면처럼 하늘나라로 떠나기전까지 그녀의 정신은 제자리를 찾기 힘들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 마다 자신을 비난하는 일을 당하느니 남은 평생을 넋을 놓아버린 상태로 사는 것이 행복할 수도 있겠죠. 평생 기다리던 엄마를 만났는데 그녀의 현실은 너무도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면 이제 연인은 될 수 없지만 오빠 노릇은 해줄 수 있는 송유현과 엄마라는 걸 깨달은 이화가 장미리에게 제 2의 인생을 살게 해줄 책임감을 느낄 것이라는 점같습니다. 송유현은 괴로워도 생각 보다 빨리 연인으로서의 감정을 접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진심으로 한 여자의 인생을 고민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리라 마음먹었으니 자신의 사랑 보다 장미리의 미래를 더욱 걱정해주는 멋진 남자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자신이 살던 집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딸을 그리워하던 이화 역시 그런 의붓아들의 결정을 반겨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 남은 2회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 보다 그 뒷감당이 더욱 힘들다는 것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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