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계백

계백, 김춘추와 김유신 사이에는 은고가 없었다?

Shain 2011. 11. 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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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와 삼국사기에는 제대로 전하지 않지만 '일본서기'에는 백제의 후궁 은고(恩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녀는 의자왕을 부추켜 충성스런 신하들을 죽게 만들고 신라와 내통해 나라를 위기에 빠트리는 등 백제 패망의 원인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백제가 망한 후에는 다른 왕자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과거 SBS에서 방영된 판타지 드라마 '천년지애'에서 신라장군과 내통하던 의자왕의 후궁, '금화'가 이 은고를 모델로 만들어진 역할이며 '연개소문'에서 의자왕에게 술을 따르며 교태를 부리던 후궁 역시 은고입니다.

보통 '요망하다'는 평을 받는 후궁들은 전쟁후 처벌을 받는 경우도 많은데 왕자들과 함께 당에 끌려갈 정도로 중요한 인물인 은고가 정말 그런 여자였을까. 의자왕에 비해 '계백'의 영웅성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묘사한 삼국사기에서 은고와 의자를 폄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당시 백제는 귀족들의 세력이 강해 왕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여러 귀족가문의 자녀와 혼인을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언급되는 '은고'가 정말 단순히 후궁에 불과한 여성일까요. 혹시 정치적으로 입지가 탄탄하고 지략이 뛰어난 황후였기에 신라와 당나라가 그녀를 깎아내리려 든 것은 아닐까요.

계백은 의자의 분노를 피해 낙향하고 은고는 황후가 된다

드라마 '계백'에 등장하는 은고(송지효)는 기록된 역사적 사실, 즉 백제를 패망에 이르게 한 요부 은고와 나름 타당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의자왕(조재현)과 함께 뜻을 세우고 강력한 사택씨 일가를 물리친 여걸의 양면을 가진 캐릭터로 묘사됩니다. 그녀는 백제의 장군 계백(이서진)과 의자왕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여성이면서 두 영웅이 갈등하게 만드는 여성으로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점점 더 백제를 패망의 길로 몰고 갑니다. 정치적 입장같은 건 전혀 모르는 계백을 감싸주지도 못했고 영웅에 대한 질투를 참지 못해 폭정을 저지르는 의자를 위로하지도 못 했습니다.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어찌 보면 이렇게 단순한게 아닙니다. 개국한지 오래된 나라들이 보통 그러하듯 백제 역시 강력한 귀족과 무력한 왕 때문에 몸살을 앓았으며(이건 신라나 고구려나 다른 중국의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획기적으로 상황을 바꿀 강력한 왕이 탄생한다 쳐도 무리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단순히 신라와의 전쟁에서 졌다는 이유로 의자왕은 미친 왕이고 은고는 요망한 첩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건 당사자들에겐 정말 억울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백제사에는 윤충, 성충, 흥수, 의직을 비롯한 현명한 장수들이 다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자왕과 계백은 김춘추와 김유신 보다 못한 사이일 수 밖에 없는 걸까요?



김춘추와 김유신의 단단한 혼인 동맹

백제 사서가 부족하기 때문에 백제 내의 정확한 정치 상황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가 없지만 극중에 등장하는 김춘추(이동규)와 김유신(박성웅)의 관계는 자세히 묘사가 된 편입니다. 김유신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주군인 춘추를 목숨걸고 지킨 명장으로 삼국통일의 실질적인 주역입니다. 또 신라 제 29대 왕으로 등극한 태종무열왕 김춘추 역시 김유신이 최고의 장군이자 상대등으로 대접합니다. 당시 상대등에는 왕과 가장 가까운 귀족이 오를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왕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준 셈이죠. 두 사람은 상당히 뜻이 잘 맞아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할 때까지 그 기반을 다져놓습니다.

실제로도 김유신의 무덤을 보면 당시 역사적으로 별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다른 신라 왕들의 무덤 보다 화려하고 멋진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진골으로 김서현과 만명공주의 장남이고 선덕여왕의 사촌이라지만 가야 왕족 출신으로서는 상당히 출세한 편입니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시피 그와 김춘추의 단단한 동맹은 여동생 문희와 김춘추를 결혼시키는 계책을 썼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주군이 자신을 배신할 수 없는 최고의 전략을 구사했고 요즘 말로 하면 '인맥'을 단단히 쌓은 것입니다.

계백과 의자의 분열을 농담거리로 삼는 김유신과 김춘추

왕이라면 무릇 자신의 손발이 되어 자신의 뜻을 펼쳐줄 수 있는 장군과 신하를 얻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종 '영웅'에 대한 드라마에서 왕들이 문신과 무신을 고루 등용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드라마 '계백'의 의자왕 역시 자신과 정치적인 이념을 함께한 까막재의 흥수(김유석)와 생고 출신 성충(전노민)을 얻었으며 무왕(최종환)의 장군이며 의자왕의 호위무사이던 무진(차인표)의 아들, 의자를 원수처럼 생각하며 죽이려 했던 계백도 측근에 두게 되었습니다. 신라와의 전투에서 윤충을 비롯한 많은 장군이 활약한 것으로 보아 의자 역시 김춘추처럼 많은 인력을 활용한게 사실인듯 합니다.

김춘추와 김유신은 둘 다 공통적으로 입신양명의 뜻을 확실히 가진 목적형 인물들이지만 두 사람이 드라마 '계백'의 의자왕과 계백처럼 갈라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둘 사이에 '문희'라는 여성 즉 문무왕의 어머니인 문명왕후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김유신이 김춘추의 장래성을 보고 다분히 고의적으로 자신의 여동생들을 접근시킨 것으로 보아 그가 왕에게 처신을 잘한 전략적인 인물인 탓도 있겠지만 유신에게 자신의 딸인 지소부인을 아내로 줄 정도 춘추 역시 유신에게 매우 호의적이었습니다.

임자(이한위)와 조미압은 실제 삼국사기에 기록된 인물로 신라에 정보를 빼돌린 인물들.

삼국사기에서는 김춘추가 백제를 멸망시키고 말리라 마음먹은 이유는 윤충이 춘추의 딸 고타소와 사위 품석을 죽여 묻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게 했기 때문이라는데 당시 백제, 고구려와 대치중이었던 신라는 그 일이 아니라도 어떻게든 백제를 이겨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신라는 존망의 위기를 두고 '한 여성'으로 인해 장군과 왕의 결속이 단단해졌는데 드라마 '계백'의 의자왕과 그의 손발 계백은 '한 여성' 때문에 오히려 서로의 존재 때문에 괴로워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망국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자, 삼국사기에 적힌 기록으로는 백제가 패망한 진짜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백제가 망한다'며 소리치는 귀신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궁궐안에서 흰여우가 상좌평의 책상에 앉고, 태자궁의 암탉과 참새가 교미를 하는 등 수상한 징조가 있었다고만 적혀 있습니다. 실제 상황을 상징적으로 적어둔 것인지 신라에서 퍼트린 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역사를 적는 자가 백제가 그럴만했다는 걸 긍정시키기 위해 위조한 것인지 모르지만, 백제는 신라와 당나라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고야 맙니다.

삼국사기에는 드라마 속에서 이미 쫓겨난 것으로 설정된 '부여태' 왕자가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성을 지켰다는 기록도 있고 태자가 바뀌는 등 십만이 넘는 대군이 양쪽에서 쳐밀고 들어오자 백제는 엄청난 공황상태에서 멸망해 갑니다. 개인적으로는 신라가 백제에 비해 우월했다거나 백제가 멸망할 만했다기 보다는 수적으로 열세에 있어 저항하기 힘든 상황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궁궐 안에서 상좌평의 책상에 앉아 정사를 좌우한 흰여우가 은고는 아니었을까. 그녀는 과연 계백과 의자의 사이를 흐트러놓은 요녀였을까. 이제서야 계백을 불러들이려 마음먹는 의자왕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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