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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제 '나라를 망하게 한 여자'라는 평을 받는 여자들은 대부분 꽤 오래전 인물들입니다. 은나라를 망하게 한 달기는 주왕이 '주지육림(酒池肉林)' 즉 술로 만든 호수에 고기로 만든 숲을 만들도록 한 요부 중의 요부입니다. 은나라가 기원전 천년전에 있었던 나라이니 이미 몇천년 전의 전설같은 이야기입니다. 주나라 멸망의 원인이라는 포사는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주나라 유왕의 후궁이 되었으나 웃지 않아 왕의 애를 태웠습니다. 왕은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해 거짓 봉화를 올리다 망하게 됩니다. 이 때가 기원전 770년경입니다. 하나라 매희는 훨씬 더 오래된 '경국지색'입니다.
은고는 정말 나라를 망하게 한 요부일까. 낙향한 계백은 의자왕의 부름을 받는다.
우리 나라의 경우 종종 조선 왕조의 '명성황후'나 통일신라의 '진성여왕' 등이 나라를 망하게 한 여성으로 원망을 받곤 합니다. 그러나 개화기의 국제 정세는 몹시 혼란스러워 누구라도 쉽게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통일신라 말기 역시 귀족들의 횡포로 나라가 어지러웠던 시기입니다. 국가를 하나의 큰 집으로 비유한다면 '대들보' 하나가 흔들린다고 해서 당장 그 집이 무너지는 건 아니지만 집의 여러 부분이 함께 흔들리면 그 국가는 무너지고 맙니다. '망국'의 책임을 어느 하나에게 돌리는 것은 당연히 합당한 일이 아니겠지요.
황후 책봉을 위해 신라 스파이를 자청하는 은고
찬란하게 빛나던 화려한 백제가 멸망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더군다나 의자왕은 신라를 쳐 40개의 성을 뺏는 등 승승장구하며 한반도 남쪽을 차지했었고 고구려와 동맹해 신라를 위협했던 진취적인 왕이었습니다. 그런 전세가 하루 아침에 뒤집어져 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이유를 한가지로 단정짓지 못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제 쓴 포스팅에 누군가가 댓글을 달아주신대로 왕의 측근인 '예식'이라는 자가 의자왕 가족을 당나라에 바쳤다는 설도 있지만 그 역시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여러 원인들 중 하나로 꼽히고 있을 뿐입니다.
남아있는 기록으로 짐작할 수있는 것은 백제의 군사수가 갑작스레 줄어들었고(당나라와의 전투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살아남고자 하는 귀족들 일부가 크게 동요하여 항복하거나 스파이짓을 했으며 왕자들과 왕족들이 그 혼란의 와중에 우왕좌왕했다는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상실했다고 보는 편이 옳은 것 같습니다. 태자가 바뀌기도 하고 왕자 중 하나가 스스로를 왕이라 하기도 하는 등, 망하는 나라들이 흔히 보이는 '리더십 부재'가 백제에도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자왕과 계백의 술자리에 참석한 은고는 고의적으로 정보를 빼돌린다.
대부분은 드라마 속 의자가 연문진(임현식)의 딸 연태연(한지우)와 결혼했듯 왕권 강화라는 정치적인 이유로 맺어진 혼인의 결과들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백제 귀족들과의 정략적인 혼인이었다면 그만큼 백제 귀족들의 세력이 강성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치 고려 초기 왕건이 다수의 호족들과 정략혼을 했던 것처럼 일단 혼인으로 귀족들을 다스렸다 쳐도 언젠가는 그들은 드라마 초기에 등장했던 사택씨들처럼 왕에게 반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드라마 '계백'에서 백제가 쇠락해가는 과정은 일단 계백(이서진)의 영웅성을 시기한 의자왕(조재현)이 그를 국경선이 아닌 변방으로 내쫓았기 대문에 시작됩니다. 정치적으로 유능했고 통치에 내실을 기한 의자왕이지만 국경선을 경계할 장군이 없던 의자는 결국 허리를 굽히고 계백을 다시 부르게 됩니다. 극중 백제의 상황은 황후 은고(송지효)가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음에도 당나라로부터 황후로 인정받지 못했고 신라는 김유신(박성웅)과 김춘추(이동규)는 호시탐탐 백제의 빈틈을 노리고 있던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당대의 영웅이 모두 겨루게 된 시점. 백제의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란데.
'은고'의 역할은 단순히 망국의 요부에서 끝나지 않을 거라 봅니다. 그녀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동요하는 권력자들의 전형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됩니다. 황후 자리에 연연해 신라와 내통할 만큼 썩은 귀족 권력들의 내분도 국가가 멸망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여자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기 보다 권력에 눈이 먼 크고작은 세력들의 균형이 한번에 깨지면서 둑이 무너지듯 한번에 붕괴하는 게 국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충성스런 영웅 계백처럼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지키는 동안 권력 때문에 허튼 짓을 하는 사람들은 요즘도 많으니까요.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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