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70년대 연예계의 전설이 안재욱과 돌아오다

Shain 2011. 11. 2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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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팝을 취미삼아 듣고 이런 저런 자료도 수집하곤 했지만 제가 감히 60년대 70년대를 추억할 연배는 아닙니다. 이 드라마 '빛과 그림자'의 배경인 1970년(한 장면에 프랭카드가 걸려 있더군요)대는 부모님 세대에게 이야기로 듣고 이런 저런 소설 속에서 체험했어도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문화를 즐겼는지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겠지요. 한쪽에서는 갑작스런 물질적 풍요와 밀려드는 문화적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 이 드라마 속 주인공 강기태(안재욱)처럼 즐거움을 누리기 바빴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직도 구시대의 가치관이 일부 남아 있고 빈곤에 허덕이기도 했던 그런 시대.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은 어쩌면 그 시대의 분위기를 담는데 가장 적절한 타이틀이 아닌가 싶습니다. 딱히 진지한 주제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주인공 강기태가 화려한 조명 속에서 아름다운 쇼문화를 즐기고 만들어내는 빛과 같은 존재라면 차수혁(이필모)은 권력의 어둠 속에서 욕망으로 허덕이는 그림자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자집 아들로 태어나 돈이 아쉽기 않았던 기태가 딱히 추구하는 것도 없이 극장 사장으로 놀고 먹는 동안 아직도 조선시대처럼 기태를 도련님이라 부르며 식모살이하는 엄마 순양댁(김미경)이 대조적인 그런 시대이니 말입니다.


샴푸, 바세린, 가루쥬스, 맥스웰 커피 각종 미제를 팔던 미제 아줌마.

70년대를 상징하는 시대적 양면성은 1회 전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식 가옥에 사는 기태 어머니 박경자(박원숙)은 화려한 홈드레스를 입고 방문판매를 하는 아줌마(권은아)에게 물건을 구입합니다. 공산품의 품질이 좋지 않던 시대라 조금 산다하는 집에서는 '미제 아줌마'에게 오렌지 가루쥬스나 화장품을 구입해서 썼고 가난한 가정에선 그런 부유함과 품질좋은 물건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미군부대 PX에서 몰래 빼돌린 물건을 팔던 미제 아줌마들은 호황을 누리며 돈을 긁어모으기 바빴습니다. 영어와 일본어가 묘하게 섞인 특이한 외래어도 인상적이죠.

민주주의 시대라 많은 사람들이 투표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했고 현대적인 제도에 눈을 떠갔지만 군부 정권이 장악한 그 시대 뒷돈과 권력을 좋아하는 국회의원 장철환(전광렬)은 정치인이기 보다 깡패에 가까운 태도로 조명국(이종원)과 차수혁을 자기 사람으로 끌어들입니다. 돈없는 집 자식들은 베트남에 참전해 꼬박꼬박 집으로 월급을 부치던 그 시절, 미군부대 없이 먹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던 그 시대, TV에서는 인기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멋진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에 열광하던 그 시대는 이렇게 어두운 면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식모살이하는 순양댁은 주인집 남매를 도련님, 아가씨라 부른다.

어떻게 보면 미제에 열광하는 그 분위기는 21세기인 요즘까지 이어지고 있고 아직까지 막연한(물론 대부분 충분히 이유있는 불만이기도 합니다만) 국산품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치는 인맥과 깡패를 동원하고 돈을 긁어모아야한다는 발상을 가진 정치인들은 요즘에도 수두룩하구요. 60-70년대처럼 식모살이하고 사장님을 거들던 어깨 역할을 하던 사람들도 문화는 달라졌지만 지금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결과가 현대라는 관점에서 21세기 문화와 비교해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안재욱이 부른 노래는 김추자의 '그럴 수가 있나요'

그러나 무엇 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흥미를 느낀 건 그 시대를 풍미한 가수들의 음악입니다. 1969년 열광하던 대학생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노래를 불렀다는 클리프 리차드의 'Early In The Morning'이라던가 지금 들어도 탁월한 목소리라 할 수 있는 김추자의 '댄서의 순정', '그럴 수가 있나요', '커피한잔' 등이 드라마 곳곳에서 흘러 나옵니다. 특히 오프닝 때 안재욱이 직접 불렀던 '그럴 수가 있나요'는 80년대까지도 왕성히 활동한 작곡자 김희갑의 음악이기도 합니다. 김추자의 음악과 70년대 쇼문화를 떼어놓고 볼 수는 없는 것이겠죠.




시대상이 곳곳에 배여나는 음악

1981년 은퇴한 가수 김추자가 당한 테러가 얼마전 TV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69년 데뷰했던 김추자는 한국적인 목소리면서도 락적인 요소를 가미한 여러 음악을 발표했습니다. '한국 록의 대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신중현과도 꽤 오래 작업을 했지요. 매력적인 목소리와 강렬한 외모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70년대 동안 여러 히트곡을 남기며 승승장구했지만 매니저의 청혼을 거절했단 이유로 깨진 소주병으로 얼굴을 내려찍는 테러를 당해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김추자는 상처입은 얼굴 그대로 TV에 출연하는 프로 기질을 보여주기도 했다는군요.


당시 인기를 끌던 가수들이 참 많지만 그중에 많은 가수들이 미군부대 무대 출신입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인 '빛과 그림자'라는 히트곡의 가수 '패티김'도 미군부대에서 데뷰를 했고 신중현, 현미, 최희준 등은 그곳에서 가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은 음악과 노래를 들려줄 가수들이 필요했고 따로 본국에서 불러오기 보다 한국 출신 가수들을 무대에 올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노래에 팝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곡들은 팝을 번안한 곡으로 발표되고 또 지금 들어봐도 훌륭한 노래들이 많아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던 젊은이들의 큰 호응을 받게 됩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들.

펄시스터즈의 노래로 훨씬 유명한 김추자의 '커피한잔'은 신해철이 리메이크한 '커피한잔'의 분위기와 비교해 들어보면 감성적으로는 뒤지지 않는 저력을 발휘합니다. 작곡 능력이나 연주 능력이 현대인들 보다 뒤떨어질 지는 몰라도 음악에 대한 감각이나 열정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시대가 70년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드라마는 당시에 그런 분위기를 타고 흥행했던 화춘화나 김추자같은 스타의 성공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아 드라마를 꾸려갈 것이라고 합니다. 화려했지만 어려웠던 그 시대의 이야기가 '복고풍'의 부활을 가져올 지 기대해볼 일입니다.


남상미가 불렀던 '댄서의 순정'과 '커피한잔'은 김추자의 곡이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 확실히 화제의 중심에 오른 걸 보니 첫테이프는 잘 끊어낸 것 같네요. 마치 조선 시대 한량처럼 능청스럽게 기생집과 나이트를 들락거리는 강기태의 집이 조명국과 장철환에게 몰락하고 본격적으로 강기태가 쇼비지니스 세계에 뛰어들 일만 남은 것 같은대요. 솔직히 안재욱씨가 자신의 역할을 워낙 잘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배신과 사랑 성공으로 꾸며질 전체 이야기는 걱정 안해도 잘 끌어가리라 생각하고 요즘은 볼 수 없어진 시대상 쪽이 훨씬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그 시대 음악은 이런 기회가 아니면 듣기 힘든 곡들이니까요.


* 그런데 나이트 클럽씬에서 나온 노래가 잘 찾아보니 '김훈'이란 가수의 '바람'이란 노래같은데 이 곡은 베트남 파병을 하던 70년대 곡이 아니라  80년에 나온 곡이더군요. 앨범이나 음원도 MP3도 잘 구매가 되지 않는 곡이라 들려주고 싶어도 들려드릴 수가 없네요(바람이 불어오네 외로움을 몰아 갈듯이 내마음 깊은 곳에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 이런 가사인데 검색하시면 혹시 나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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