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나무, 쉽게 배우는 문자 한글과 SNS가 닮은 점

Shain 2011. 12. 1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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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제작되는 대부분의 사극들은 과거 우리가 재미있게 보던 편년체 사극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습니다. 배우들의 분장이나 복장은 과거와 유사하고 극중 이야기도 역사 속 사실을 근거로 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메시지나 주제는 현대극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사극의 경향은 정통사극을 추구하기 보다 현대극으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화두를 과거를 배경으로 풀어나갔다고 보는 것이 맞는 듯합니다. 이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역시 현대극이라면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권력자들 간의 대립이나 국민과 기득권층의 갈등을 훌륭히 묘사한 수작입니다.

사서에는 '밀본'도 정기준도 광평대군(서영준)이 암살당했다는 기록 조차 없지만 드라마에서는 민주적 군주 세종(한석규)이 백성에게 한글을 주기 위해 고통스러워하며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한자를 몰라 편지 한 줄 쓸 수 없는 백성들 조차 글자 만드는 일이 쓸데없는 일이라며 시원찮게 생각하고 왕과 함께 나라를 꾸려가야할 신하들은 혹자는 질서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혹자는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을까 싶어 반대합니다. '어린 백성'을 '긍휼히' 여겨 만든 한글은 드라마 안에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어 재탄생된 것입니다.


한글 창제와 반포를 위해 괴로움을 감내하는 왕 세종.

물론 한글을 창제해 널리 배포한 실존인물 세종은 달리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지 않아도 충분히 훌륭합니다. 아버지 태종과 다르게 문치(文治)를 실현한 왕이며(물론 아들 세조가 홀랑 말아먹긴 했지만) 사대부들은 잡학이라 천시하던 천문학, 의학, 해부학 등 각종 과학을 두루 발전시켰습니다. 장영실같은 학자를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등용한 '열린 개념'을 가진 왕이기도 했으며 북방을 개척해 국경을 경계하고 땅을 넓힌 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세종에게 '소통'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세종은 백성들이 두루 쓸 수 있는 각종 학문, 즉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을 개발하고 책을 편찬해 배포했고, 화폐를 제조해 경제 개혁을 시도한 적 있지만 당시 조선에는 그 뜻을 널리 알릴 수단이 없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지식의 '네트워크'나 '제도'가 없었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세종이 궁리 끝에 백성들에게 유용한 지식을 지식을 알릴 수 있는 '한글'을 개발한 것은 현대인들에게 '인터넷'이나 'SNS'가 나타난 것 만큼이나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습니다.



한글과 SNS의 기본 역할은 '언론'

팩션(Faction)을 볼 때 명심할 것은 드라마나 소설의 소재로 등장한 역사적 사실이나 대상이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태종(백윤식)의 지신사로, 세종을 돕는 승록대부로 등장하는 조말생(이재용)은 왕의 명령에 충성하기는 했으나 청렴하고 올곧은 신하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는 인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종이 큰 뜻을 품고 집현전 학자들과 대신들의 반대에도 널리 반포한 '훈민정음' 즉 '한글'이 조선시대 백성들에게 큰 역할을 했다고 보기 힘든 면도 있습니다.

반면 서얼 제도를 비판하고 이상국을 건한다는 내용의 '홍길동전' 등은 한글로 제작되어 백성들에게 널리 읽혔고 최근 일부 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양반, 천민을 가리지 않고 한글이 공식문자로 널리 사용되었다고도 합니다.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벽보나 사적인 사랑을 고백하는 연애편지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용되었고 한글이 등장한 후에는 백성들의 상소도 늘어났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한글이 '우리 글'로서 도드라진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입니다.

일본어 강요로 인해 독립운동과 계몽활동이 힘들어진 사람들은 쉽게 가르칠 수 있는 한글을 널리 보급하고자 애썼고 한글 보급의 위험함을 알고 있는 일제가 그를 탄합하여 '조선어학회 사건' 등이 발생합니다. 한글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명실공히 우리의 문자가 되어 국민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준 것입니다. 또한 한글은 국민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널리 알릴 수 있는 '언론'의 수단이 된 것입니다. 한자로 퍼트리기 힘든 주장이나 이론도 한글을 통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배울 수 있습니다.

과거와 다르게 현대인들은 누구나 문자를 배우고 익힐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소통의 수단으로 널리 쓰이는 것이 '인터넷'과 'SNS'입니다. 과거에 한글을 이용해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써내려갈 수 있었던 것처럼 최근에는 트위터나 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습니다. '1인 미디어'라는 블로그나 다수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트위터는 기성 언론들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폭넓은 '언론'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글이 한자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는 SNS가 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언로'를 막으려 하는가.

'한글'이 '언문'이라 불리며 한자를 주요 사용하는 사대부층의 탄압을 당했다면 'SNS' 역시 기성 언론과 기득권층에게 비하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때로는 사실 관계가 부정확한 소문이 흘러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한 개인에게 무차별 공격을 퍼붓기도 합니다. 기성 언론의 여론조작이나 편파적인 보도에 대항해 새로운 '언로'로 각광받는 SNS이지만 유저들의 자정작용 만으론 한계가 있는 수단이란 평가도 받습니다. 허나 그런 몇가지 결점에도 불구하고 'SNS'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쉬운 수단으로 환영받고 있습니다.

하긴 모든 문제는 '수단'의 문제라기 보다는 사용하는 사람의 자질이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세종이 한글을 반포해도 그걸 사용하는 건 백성들의 몫이듯 'SNS'도 잘 활용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언론'이라는 훌륭한 제도를 발명하고도 그 책임에 눈감는다면 있으나 마나한 제도이고 SNS 역시 일부에게 나쁜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통법이라는 점에서 절대 막아서도 안되고 탄압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되는 것이 'SNS'입니다. 최근 '선거 독려'를 이유로 검찰 수사를 받는다는 김제동을 보면 한글사용을 이유로 잡혀가던 과거를 보는 기분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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