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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이야기/천명 19

천명, 문정왕후와 세자 이호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퓨전사극의 장점은 기록된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데 있습니다. 의붓아들을 죽이고 친아들을 왕위에 올린 문정왕후의 악행이 어느 정도였을까? 착하고 순하다고만 알려진 인종이 과연 어머니에게 반항하고 군주가 되려 한 적이 없었을까? 드라마 '천명'은 이 두가지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했고 그 과정에 살인 누명을 쓴 최원(이동욱)을 개입시켰습니다. 계모와 의붓아들의 권력다툼은 최원을 비롯한 여러 가상인물들 덕분에 더욱 흥미진진했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실존인물들의 캐릭터는 역사에서 빠져나온듯 재미있었죠. 그러나 다른 면에서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 최원(이동욱)은 처음부터 불행을 겪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최창손(장용복)이 세자 이호(임슬옹)를 지키다 단수형을 당하고 죽었을 때 그때 궁을..

천명, 인종과 문정왕후가 보여준 유교사상의 폐단

조선은 유교사회였고 왕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나라였기 때문에 누가 왕이 되느냐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비록 때로는 왕권이 약해져 외척에 시달리고 외세의 압력으로 왕이란 존재가 유명무실해질 때도 있었지만 왕이 어떤 의지를 가지냐에 따라 백성들의 삶도 달라졌습니다. '천명'에서 왕위를 두고 대립하는 세자 이호(임슬옹)와 문정왕후(박지영)의 정쟁은 최원(이동욱)의 딸 랑이(김유빈)의 생존과 직결되고 나아가서는 배고프고 억울해서 도둑이 되어야 하는 거칠(이원종) 패거리들의 미래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천명'의 큰 줄거리는 친구 민도생(최필립)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최원이 문정왕후 때문에 위기에 처한 인종을 돕는 내용입니다만 전체적인 대립구조는 권신들과 민중의 대립입니다. 권신들을 대표하는 문정왕후는 사..

천명, 문정왕후를 급습한 세자 이호와 미쳐가는 경원대군

가끔 드라마 속 등장인물이 실존인물인지 아닌지 검색해보시는 분이 많은데 '천명'의 김치용(전국환)은 가상인물입니다. 중종, 인종 시기의 실존인물 중 김치용과 가장 닮은 사람은 김안로가 떠오르지만 김안로는 문정왕후(박지영)와 대립하던 대윤파의 인물로 역사적으로 이미 한참전에 제거된 사람입니다. '천명'의 문정왕후는 의붓아들 세자 이호(임슬옹)를 죽이고 아들 경원대군(서동현)을 앞세워 왕위를 찬탈할 계획으로 김치용과 동생 윤원형(김정균)을 끊임없이 사주합니다. 한때 화제가 되었던 영화 '후궁: 제왕의 첩(2012)'을 흥미롭게 보신 분들은 이 영화의 원작이 명종 시기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내시(1968)'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자를 두고 후궁이 되는 한 여성과 그들을 둘러싼 궁궐의 은밀함을 묘..

천명, 문정왕후의 이중성이 드러난 섬뜩한 자장가

'천명'을 볼 때 마다 연산군과 정현왕후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연산군은 성종의 세 후궁에게 인간으로서 차마 못할 짓을 저지르면서도 새어머니 정현왕후는 딱히 괴롭힌 기록이 없습니다. 정현왕후는 1480년에 왕후로 책봉되어 연산군이 기억하는 유일한 어머니였습니다. 정현왕후는 당시 기세등등하던 인수대비와 성종의 눈치 때문인지 연산군에게 잘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속으로는 친아들 진성대군(중종)을 더 사랑할언정 연산군에게 흠잡힐 정도로 행동한 적은 없다는 말이죠. 야사에는 연산군이 어머니를 많이 그리워해 어머니가 고려 공민왕의 아내였던 노국대장공주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말을 듣고 그 초상화를 수집하게 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언뜻 들을 때는 그 마음이 이해가 이해가 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이상하기도 합니다..

천명, 자식을 살리려는 아버지와 '천명'의 관계는?

처음 이 드라마를 볼 때 저는 마지막회에 주인공 최원(이동욱)이 죽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누명을 쓰고 도망가는 최원과 불치병에 걸린 그 딸 랑이(김유빈)의 이야기가 너무나 비장했고 또 최원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이 심각하다는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로 진지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내내 반복되는 '아버지'와 '희생'이라는 키워드 그리고 자식을 위해 죽어가는 여러 아버지들이 등장하여 최원 역시 딸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거는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죠. 실제로도 최원은 딸을 위해 누명을 벗었고 그 덕분에 세자 이호를 지켜냈습니다. 감옥에 갇혀 딸 랑이를 부탁하는 최원에게 '네가 없으면 네 새끼도 죽는다'면서 네 자식 네가 알아서 하라던 최형구(고인범)는 자신은 자기 자식 최원을 살리기 위해..

천명, 경원대군에게서 세자 이호의 모습이 보인다

도망자 최원(이동욱)이 드디어 자신의 누명을 벗었습니다. 친구이자 세자 이호(임슬옹)의 담당 의원이던 민도생(최필립)을 죽였단 누명을 쓰고 도망치던 최원은 홍다인(송지효), 의금부 이정환(송종호)과 거칠(이원종) 일당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중종(최일화)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했습니다. 의붓아들 이호를 죽이려했던 문정왕후(박지영)의 음모는 만천하에 드러났고 모든 일을 주도한 김치용(전국환), 윤원형(김정균)도 처벌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었죠. 반면 형과 어머니의 안전을 동시에 지키고자 했던 경원대군(서동현)은 어머니 때문에 슬픈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일국의 국본인 이복형을 살리겠다며 납치까지 자처한 경원대군인데 형을 살리는데 도움을 주고 보니 어머니가 위험에 처했습니..

천명, 문정왕후를 공격한 최원 죽는 사람은 누구?

병에 걸린 딸을 위해 죽지 못한다는 주인공 최원(이동욱)은 내의원 의관으로 가늘고 길게 살려 했지만 자신도 모르는새 문정왕후(박지영)와 세자 이호(임슬옹)의 왕위 계승 다툼에 휘말리고 맙니다. 민도생(최필립)을 죽였다는 누명을 벗고 딸 랑이(김유빈)를 살리려면 진짜 살인자인 김치용(전국환)의 죄상을 파헤쳐야하고 문정왕후가 세자를 짐독으로 암살하라 지시했다는 정황을 낱낱이 드러내야합니다. 지금까지는 최원이 찾아낸 증거와 증인은 대부분 문정왕후 수하들에게 제거당하고 최원은 '민폐형' 주인공이란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그러나 어제밤의 일격으로 문정왕후는 왕이 보는 앞에서 약점이 잡히고 말았습니다. 늘 세자 이호의 머리 꼭대기에서 다음 한수를 궁리했던 문정왕후는 도망자 최원이 직접 왕 앞에 나타나 암살 사주의 증..

천명, 임꺽정의 연인 소백 경원대군을 쥐어박은 이유는?

퓨전사극 속 캐릭터 중에는 실제 기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라 기존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온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임꺽정과 갖바치같은 사람들입니다. 전에도 한번 적었지만 '여인천하(2001)'나 '조선왕조오백년 풍란(1985)'의 갖바치는 조광조와 친분을 나누고 스승 대접을 받은 지식인처럼 묘사되었으나 실제 갖바치의 기록은 매우 짧습니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사서에 조선의 '민중'을 대표할 인물이 없어 때로는 범상한 조광조의 인품을 강조하기 위해 때로는 백성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등장시킬 뿐이죠. 특히 임꺽정은 실록 속 기록이 반란과 체포에 대한 것 뿐이라 임꺽정의 어린 시절이나 산채 생활은 대부분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천명'에 등장하는..

천명, 대의를 선택한 세자 이호의 반격과 최원의 귀환

드라마 '천명'를 끌고 나가는 주된 모티브는 간절한 부성애와 지독한 모성애입니다. 내의원 의관이었던 최원(이동욱)은 딸 랑이(김유빈)를 살리기 위해 세자 이호(임슬옹)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의금부에 잡힌 아들을 구하려 장홍달(이희도)에게 증거를 찾던 최형구(고인범)는 밀지에 그려진 모란꽃 문양을 쥐고 죽었고 그 문양이 최원을 살렸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최원은 그 모란꽃 그림을 김치용(전국환)에게 내밀어 나 역시 밀지를 받았노라 거짓말했고 그 덕분에 천봉(이재용)이 올 시간을 벌었습니다. 조선 중종은 후궁과 자식들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부성애가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록상 중종은 12명의 부인에 9남 11녀를 낳았습니다. 원래 왕의 자녀들은 왕위를 이을 세자를 제외하면 모두 일정한 나이..

천명, 세자 이호 정말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을까

조선 왕들의 책임 중 하나는 기우제를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전국에 가뭄으로 흉년이 들면 백성이 굶고 백성이 고통받으면 군왕의 부덕이라 여겨 기우제 지내는 일에 꽤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조선 중종만 해도 실록에 백여차례가 넘게 기우제에 대해 논의한 기록이 적혀 있는데 의외로 이게 꽤 힘든 일이었나 봅니다. 일종의 연중행사 성격이 있었던 이 기우제는 비가 내릴 때까지 계속 됩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곳에서 장소를 바꾸어가며 제를 올리려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던거죠. 때로는 세자나 신료들을 기우제에 대신 보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신앙적인 행위 이외에도 가뭄이 들면 조세를 낮추고 곡물을 푸는 등 여러 보조적인 조치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폐한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거칠(이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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