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천명

천명, 자식을 살리려는 아버지와 '천명'의 관계는?

Shain 2013. 6. 1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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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드라마를 볼 때 저는 마지막회에 주인공 최원(이동욱)이 죽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누명을 쓰고 도망가는 최원과 불치병에 걸린 그 딸 랑이(김유빈)의 이야기가 너무나 비장했고 또 최원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이 심각하다는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로 진지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내내 반복되는 '아버지'와 '희생'이라는 키워드 그리고 자식을 위해 죽어가는 여러 아버지들이 등장하여 최원 역시 딸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거는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죠. 실제로도 최원은 딸을 위해 누명을 벗었고 그 덕분에 세자 이호를 지켜냈습니다.

감옥에 갇혀 딸 랑이를 부탁하는 최원에게 '네가 없으면 네 새끼도 죽는다'면서 네 자식 네가 알아서 하라던 최형구(고인범)는 자신은 자기 자식 최원을 살리기 위해 장홍달(이희도)을 찾아갑니다. 장홍달에게 랑이를 살리기 위해 최형구가 몰래 구입한 약재가 최원이 누명을 쓰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내의원 약재를 훔친 최원이 그 죄를 들킬까 두려워 친구 민도생(최필립)을 죽였다는 의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증거를 줄 수 없다는 장홍달에게 매달리고 애원하던 최형구는 결국 문정왕후(박지영)의 밀지를 훔쳐 목숨을 잃습니다.

아버지 최원에게 내려진 '천명'은 과연 무엇일까.

최원의 칼침을 김치용(전국환)에게 준 당사자이자 민도생 살인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던 덕팔(조달환)이 그처럼 민도생을 배신하고 최원을 외면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자식 때문이었습니다. 거북바위 부근에 사는 무녀가 덕팔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고 산달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덕팔은 아내가 아이낳는 것을 돌보기 위해 숨어들었고 최원의 도움으로 무사히 출산을 마치자 아이한테 만큼은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며 민도생 살인사건의 전말을 증언해주기로 합니다.

악명높은 도적패 두목 거칠(이원종)은 그 누구 보다 무섭고 사나운 남자지만 딸아이 소백(윤진이)에게 만큼은 따뜻하고 자상한 아버지입니다. 소백의 어머니가 김치용 때문에 죽었다는 슬픈 과거를 딸아이가 알면 슬퍼할까봐 절대로 발설하지 않을 만큼 속깊은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식 때문에 죽지 못한다는 최원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 누구 보다 먼저 최원을 편들어주고 도와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김치용을 비롯한 양반네들에게 원한이 많지만 최원 일가를 거두어 준것도 어디까지나 딸을 사랑하는 부성애에 공감했기 때문이죠.

김치용, 윤원형(김정균)과 함께한 악역이자 문정왕후의 밀지를 받아 움직인 장사꾼 장홍달도 홍다인(송지효)과 도문(성웅)에게만은 따뜻한 양아버지였습니다. 홍다인의 집안이 역적으로 몰려 몰락하기 전에는 노비였으나 뱀에 물린 장홍달을 홍다인이 피를 빨아 구해준 인연으로 홍다인에게 만큼은 정성을 다했습니다. 뱀독 때문에 죽을 위기를 넘긴 홍다인 때문에 다인의 아버지는 내 딸이 구해준 목숨이라며 장홍달을 면천해주었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또 다인의 아버지로 살기 위해 온갖 모진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장홍달입니다.

'천명'에는 자식을 위해 목숨을 건 여러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민도생의 자술서가 최원에게 넘어가 문정왕후에게 암살당할 위기에 처하자 장홍달은 지금까지 쌓은 모든 부를 포기하고 다인과 청나라로 도망치기로 작정합니다. 그 많은 재물도 다인의 생사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던 진짜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라 한번만 불러달라 부탁하며 최원에게 다인을 맡기고 죽은 장홍달의 부성애도 보는 사람들을 마음아프게 했습니다. 비록 도문, 다인과 장홍달의 인연이 피로 이어지지 않은 부녀였으나 아버지의 마음 만큼은 진짜였던 것입니다.

몸이 아픈 중종(최일화)은 세자 이호(임슬옹)와 경원대군(서동현)의 아버지인 동시에 한 나라의 왕으로서 세자 이호가 늘 구설에 오르는 점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명분이 생기면 아들을 밀어주려 최선을 다합니다. 중종에게 아버지로서의 정과 왕으로서의 책임을 조절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처럼 보입니다. 명분이 없어 아들을 외면하는 중종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 종종 있었지요.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해 부성애가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중종 역시 한 사람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천명'의 마지막 부분은 아버지 최원의 마지막 선택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린 시절의 인연으로 홍다인과 정인이 된 최원에겐 이제 행복해질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랑이와 함께 살 수 있게 되었고 노비가 되었던 동생 최우영(강별)도 곧 풀려나서 이정환(송종호)과 혼인할 분위기입니다. 중종 앞에서 모든 죄를 낱낱이 고한 상으로 세자 이호의 든든한 우군으로 성공도 보장받은 듯합니다. 그러나 심곡지사의 수장인 천봉(이재용)은 최원에게 랑이의 치료법을 두고 모종의 거래를 제안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최원이 다시 한번 정치에 휘말리게 된다면 그 역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최원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오로지 딸을 살리는 일 뿐이었습니다. 이제는 홍다인이란 든든한 반려가 생겼으니 두 사람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최원이 무리한 욕심을 낼 리는 없습니다. 그런 최원이 또다시 청지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 이유는 최원이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말에 '인명은 천명'이라고 했습니다. 이 드라마의 제목인 '천명(川命)'은 딸아이의 천명을 거스르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타고난 운명을 어쩌지 못하고 역사에 휘말리는 최원을 뜻하는 말일까요.

그도 아니면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대의를 거스르지 못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딸아이를 살리고 싶으면 정치가 바로 돌아가야 합니다. 최원은 딸을 살리고 누명을 벗기 위해서일 뿐이라고 했으나 결과적으로 그의 필사적인 노력은 세자 이호의 운명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최원의 마지막 천명이 첫 시작의 느낌처럼 비극이 될지 아니면 행복이 될지 궁금해지는 순간입니다. 드라마 속 많은 아버지들처럼 혹시라도 비극적인 운명을 맞게 된다면 그 역시 천명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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