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천명

천명, 문정왕후와 세자 이호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Shain 2013. 6. 2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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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사극의 장점은 기록된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데 있습니다. 의붓아들을 죽이고 친아들을 왕위에 올린 문정왕후의 악행이 어느 정도였을까? 착하고 순하다고만 알려진 인종이 과연 어머니에게 반항하고 군주가 되려 한 적이 없었을까? 드라마 '천명'은 이 두가지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했고 그 과정에 살인 누명을 쓴 최원(이동욱)을 개입시켰습니다. 계모와 의붓아들의 권력다툼은 최원을 비롯한 여러 가상인물들 덕분에 더욱 흥미진진했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실존인물들의 캐릭터는 역사에서 빠져나온듯 재미있었죠.

너무나 간단하게 실존인물들의 역사에서 탈출한 최원. 그는 궁궐을 떠나자마자 행복해졌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 최원(이동욱)은 처음부터 불행을 겪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최창손(장용복)이 세자 이호(임슬옹)를 지키다 단수형을 당하고 죽었을 때 그때 궁을 떠났으면 도망자가 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아버지 최형구(고인범)처럼 의원의 자질이 없었다면 실존인물들 사이에서 죽을 고생은 안해도 되었던 거죠. 왜 이런 말을 하냐면 누명쓰고 도망칠 때는 너무 복잡하게 얽혀 빠져나올 길이 없어 보이더니 끝날 때는 역사속에서 너무 쉽게 쏙 빠져나와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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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의 실존인물들은 하나같이 쟁쟁합니다. 문정왕후(박지영)가 누구입니까. 세 명의 왕을 손에서 쥐락펴락한 조선왕조 최악의 악후가 아닙니까. 형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최일화), 정난정과 함께 정사를 망친 윤원형(김정균)이나 선비들에게 존경받는 조광조의 친구였던 갖바치 천봉(이재용),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의적 임꺽정(권현상)과 그의 아내(윤진이), 거기다 장차 명종이 될 경원대군(명종)은 어머니 때문에 정사를 망친 조울증에 걸린 왕으로 유명합니다.

김치용(전국환), 도문(성웅), 장홍달(이희도), 덕팔(조달환), 무명(김동준)까지 얽혀 혼란으로 치닫던 왕위 계승싸움은  마지막회가 되자 먹구름이 걷히듯 깔끔하게 해결됩니다. 마치 무서운 '귀신의 집'을 빠져나온 사람들처럼 최원과 홍다인(송지효), 랑이(김유빈), 최우영(강별), 홍역귀(송종호)는 한가족이 되어 환하게 웃습니다. 해피엔딩을 맞은 마지막 장면만 보자면 최원과 최우영이 그렇게 힘든 고난을 겪은 이유는 다인과 이정환이라는 짝을 얻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었던 것같군요.

환한 웃음으로 최원을 보내줬지만 이호와 문정왕후의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야사에는 문정왕후와 인종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전합니다. 가장 인상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동궁전에 불이 났을 때 세자가 어머니 문정왕후가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걸 알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부분인데 아무리 문정왕후가 시집와서 경원대군이 태어날 때까지 무려 20년이 넘게 친어머니처럼 대했던 사람이라지만 자신을 죽이려는 엄마에게도 효도했다는게 믿어지지 않더군요. 그리고 그 야사는 결국 아버지 중종의 울부짖음과 후궁 귀인 정씨의 설득 때문에 인종이 무사히 탈출했다고 끝맺고 있습니다. 인종이 왕이 되기로 마음먹었단 뜻이지요.

드라마 속 인종은 최원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왕위에 오르고 패배한 문정왕후는 인종을 죽이려 다시 무리수를 두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끝내 아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경원대군은 그런 어머니와 형에 대한 우애 사이에서 고민하다 반쯤 미쳐 병을 앓고 있습니다. 김치용은 죽었지만 어리석은 윤원형은 아직까지 살아 있습니다. 왕위에 올랐다고는 해도 드라마 인종은 끊임없이 위험에 처할 것이란 뜻이고 경원대군의 나머지 일생은 평생 비극입니다.

문정왕후와 경원대군을 적대시하게 되는 임꺽정과 그의 아내. 비극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찬가지로 랑이에게 세상이 좋아지면 도둑질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두루뭉술하고 간 거칠(이원종)과 임꺽정의 삶도 결코 평탄치 않을 것입니다. 인종의 치세 기간은 불과 8개월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중종의 장례기간과 기타 의례를 치르기 위해 소모한 기간을 빼면 나라를 획기적으로 바꿀 만한 업적을 쌓을 시간이 없던 왕입니다. 김치용의 죽음을 보고 기우제에서 가여운 아이를 돌보던 인종을 믿었으나 명종 시기의 조선은 중종 때보다 훨씬 처참해집니다. 임꺽정의 고난은 지금부터 시작인 셈입니다.

최원 가족은 실존인물들 사이에서 쏙 빠져나와 해피엔딩을 맞았지만 드라마 밖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구가의 서' 마지막 장면에서 효과음과 함께 곤(성준)과 이순신(유동근)이 등장했듯 마지막 장면에서 섬뜩한 표정으로 음모를 꾸미는 문정왕후와 눈밑에 다크서클이 생겨 벌벌 떨고 있는 경원대군이 등장한다 해도 이상할 거 같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인종은 계모의 손에서 동생을 구해내지 못하고 어머니와 대립해야하는 자신의 운명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말았으니까요.

최우영이 만삭이니 인종을 비롯한 실존인물들의 비극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의원 최원은 자신의 '천명'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극중 어의녀 장금(김미경)이 궁중의 복잡한 음모를 다 알면서 함부로 개입하지 않은 것도 자신의 천명은 의술이고 가볍게 나서다 죽으면 자신의 천명을 다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첫회부터 '천명'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가 잠깐 고민했지만 결국 의원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길임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유난히 부성애를 강조하던 드라마니 남편이자 아버지로 사는게 영웅으로 사는 것보다 낫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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