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읽었던 셜록 홈즈 이야기는 흥미진진했습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방대한 지식과 상식을 뛰어넘는 판단력, 초능력에 가까운 날카로움과 날렵한 행동이 보는 사람들을 속시원하게 합니다. 그런데 '뤼팽'이 아무리 멋있어도 도둑인 것처럼 셜록 홈즈 역시 아무리 탁월해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사회부적응자라는 걸 부정할 수가 없죠. 그래서 현대판 셜록은
'셜록'에게 은둔형 외톨이, 고기능 소시오패스라는 독특한 설정을 부여 했고 단순한 관찰자처럼 보였던 왓슨도 점잖은 겉모습과는 달리 따분한 세상에 질린 참전 군의관으로 탄생시켰습니다. 물론 원작에 기반한 비틀기였죠.
영국 드라마 '셜록' 시즌 1, 2도 재미있게 시청했지만 지난주 방송된 시즌 3의 두번째 에피소드 '세 사람(The Sign of Three)'은 전체 시즌을 통틀어 가장 유쾌하더군요. 자난 시즌은 스티븐 모팻 특유의 기발하고, 박력있고 속도감있는 전개로 시선을 잡아 끌었던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계속해서 웃음이 떠나지 않게 만든 에피소드는 이번이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셜록 홈즈(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유일한 친구 존 왓슨(마틴 프리먼)이 결혼하는데 이 정도 재미는 당연한거겠지만요.
우리 나라의 요즘 결혼식은 호텔이나 예식장에서 예식치르고 사진촬영하고, 손님들은 간단히 밥한끼를 먹은 다음 가족들에게 폐백을 드리고 친구들끼리 피로연을 갖고 그후에 신혼여행을 떠나는 코스가 일반화되어 있는데요. 영국의 결혼식은 하루종일 이어지는 파티수준의 결혼식이 많더군요. 사실 이번 에피소드는 흔히 보기 힘들었던 영국식 결혼식을 드라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왓슨하고 메리(아만다 애빙턴) 결혼식 전통에 맞춰 꼼꼼히 준비했나봐요.
영국은 지붕없는 곳에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구청에 달린 결혼식장을 이용하지 않으면 왓슨 부부처럼 성 한채를 빌려 결혼식에 이용합니다. 예식장은 장소만 대여해주고 다른 도움을 주지 않아 신랑 신부의 손이 많이 간다고 합니다. 미리 소수의 예정된 인원에게만 청첩장을 돌려 숙박장소를 예약할 수 있게 하고 신부는 결혼식 장소에서 잠을 자거나 하면서 결혼식 당일에 미용사가 방문한다는군요. 하루 종일 드레스를 입어야해서 웨딩드레스는 보통 물려입거나 사고, 신랑이 결혼전에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보는건 금지되어 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들러리와 함께 사진촬영을 하고 리셉션에서 축사를 읽고, 건배를 하고, 웨딩케이크를 자르고, 이야기를 나누며 파티를 하다 이브닝 파티에선 신랑, 신부가 처음 왈츠를 추면 다른 사람들도 함께 춤을 추며 즐깁니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경우도 많지만 불안한 영국 날씨 때문에 차양을 치거나 실내에서 하는 경우도 많다는군요. 셜록이 결혼식장을 방문할 손님들을 일일이 만나고 냅킨을 접느니 어쩌니 하면서 온갖 야단법석을 다 떨었던 것처럼 친구들의 도움이 필수적입니다. 남자 들러리는 연미복을 손님들은 정장을 입죠.
마이크로프트(마티 게이티스)와 셜록은 가끔 내가 더 똑똑하다고 싸우는 것 같습니다. 마이크로프트는 난 그래도 너처럼 소시오패스는 아니란 느낌으로 셜록을 위해준다며 감시도 붙이고 그러지만 셜록에겐 마이크로프트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게 하나 있죠. 마로 존 왓슨이란 친구입니다. 극중에서 등장은 안했지만 아마 셜록의 형은 신랑 들러리나 축사같은 거 안해봤을거에요. 메리와 존은 셜록을 배려한답시고 애를 쓰는 듯했지만 셜록은 의외로 차분(?)하게 결혼식을 돕습니다. 영국 역사상 가장 독특한 탐정 신랑들러리죠.
왓슨하고 제일 친한 친구 - 시청자들도 셜록이 왓슨의 신랑 들러리로 최고라 생각하지만 셜록 본인은 기쁘면서도 충격을 받은 것 같았죠. 눈만 깜빡이며 대사는 몇마디 하지 않았습니다만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 이렇게 특별한 내가 평범한 결혼식 신랑 들러리를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런 느낌의 표정이더군요. 왓슨의 결혼식이 있어도 사건을 포기하지 않은 셜록은 총각파티를 한답시고 왓슨을 불러내 술을 마시게 했고 헤롱헤롱한 상태로 '하루살이맨'을 잡는다며 여기저기 돌아답니다
셜록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기에 취하지 않는 양을 계산해달라며 몰리(루 브루얼리)를 조를 때도 상당히 코믹했습니다. 준비된 술잔으로 왓슨에게 술을 줄 때는 웃느냐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 저 술잔 마음에 든다 하고 자세히 봤더니 술량이 표시된 비이커였더군요. 천하의 셜록도 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 주변 술집에서 '정량'의 술을 마시며 돌아다니다가 뻗어버렸습니다. '난 전문가야'라며 소리지르고 주먹을 휘두를 땐 셜록이 시즌3에선 너무 귀여워진거 같단 생각까지 했더랍니다.
자신을 사이코패스 취급하는 상대에게 '나는 고기능 소시오패스'라고 대답하는 셜록. 분명 타인을 상대하는데 익숙한 인물도 아니고 왓슨의 도움없이는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기 힘든 남자입니다만 셜록과 왓슨을 배려해주는 메리라는 또다른 친구가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왓슨이 베이커가에 더 이상 살지 않는 것처럼 왓슨의 가정과 자신의 사이를 분리할 필요가 생긴 셈이죠. 이번 결혼식은 (셜록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유일한 친구를 떠나보내는 질투어린 자리인 동시에 축하해주는 자리였습니다.
'셜록' 시즌3는 스티브 모펫이 아닌 마이크로프트 역의 마크 게이티스가 각본을 맡은거 같더군요. 살인음모가 난무하던 긴박한 시즌 1. 2의 방식도 좋았지만 소시오패스 셜록의 코믹한 좌충우돌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가끔 '닥터후'에서 보여준 모펫식 전개방식은 무언가 무거운 부담감을 주는 면도 있거든요.소시오패스 셜록이 친구 왓슨과 마음의 이별을 한다는 컨셉이 그럴듯합니다. 과연 시즌3의 왓슨 부부와 셜록은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이며 세번째 에피소드는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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