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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족의 결혼, 신분은 부족한 사료 덕에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사통하여 낳은 자식도 왕자가 되는가 하면 도저히 결혼이 될 것같지 않은 사이가 혼인하는 경우도 있다. 왕위를 잇기 위해 어머니가 혹은 아버지가 다른 여자형제를 아내로 두는 경우도 많다. 이는 권력 분배나 신분상으로 그 결혼이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이루어진 조치란 점에서 흥미롭다. 공주가 아닌 미실이 '나는 왜 성골이 아니냐'며 눈물지을 만도 한 그런 나라가 신라였다.
화랑세기는 화랑에 대한 기록이지만 그들의 가계를 자세히 적다 보니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게 된다. 삼국사기 이후 사료들이 주로 부계는 자세히 적어도 모계는 자세히 적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서 어머니의 이름이나 아내의 이름이 전하여 오는 경우도 거의 없을 지경이지만 화랑세기는 화랑의 모계와 부계를 거의 동등하게 기술하고 아버지를 모를 경우 모계만 적는 경우도 있다. 부계 신분이 낮아도 모계 혈통이 인정되면 높은 신분을 얻기도 한다.
왕의 이름 만큼이나 많이 적힌게 낭주들과 궁주, 공주들, 그리고 태후들의 이름이다. 왕의 적자가 왕자, 왕의 서자나 왕후의 서자가 전군이었던 식의 남성 분류와 다르게 공주들은 적서를 가리지 않고 공주로 봉해졌다. 지금 MBC 드라마 선덕여왕엔 화랑이나 왕자의 등장은 잦지만 상대적으로 등장하는 후궁과 공주의 숫자가 적은 건 몹시 아쉬운 일이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배경엔 공주들과 태후들의 정치적 활약이 뒷받침된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화랑의 암투 만큼이나 치열한 게 태후궁과 미실궁의 대립이었고, 각 공주들 간 색공이고, 자매들 간 라이벌 구도였음에도 드라마에 출연하는 공주들은 지나치게 적은 숫자다. 미실과 진평왕 사이의 딸 보화공주, 미실과 진흥왕의 딸로 진평왕의 궁주 자리에 오른 난야공주, 진평왕의 제 2 왕후인 승만왕후, 진덕여왕이 되는 승만공주가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여성 간 궁중 암투로 비치는 것이 두려운지 여성권력자는 미실과 덕만 단 둘 만 등장하고 있다.
특히 승만공주의 경우 진평왕의 조카이자 선덕여왕의 사촌여동생으로 동반 세력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고 김춘추와 승계 다툼을 벌일 만도 한 인물인데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당연히 선덕여왕과 연배가 비슷하고 김춘추 보다 나이가 위일만도 한데 궁중의 한 축으로 등장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일까. 천명공주의 사망으로 궁중 내 동료이자 경쟁자가 줄어든 덕만의 발목을 잡을 궁중 세력이 모자라다.
지소태후는 꽤 많은 아들과 공주를 낳아 왕실을 번성케 하고 세력을 확장했는데 자신의 딸 숙명공주를 진흥왕의 왕후로 삼고, 사도왕후를 좇아내려다 실패한다. 숙명과 어머니가 같은 진흥왕은 공주 자체도 꺼려한데다 숙명은 잘 알려진대로 다른 연인이 있었다(원광법사의 어머니가 숙명공주). 진흥왕이 사도왕후를 사랑하자 지소태후는 그 분풀이로 며느리 미실을 쫓아낸다. 그리고 진종의 딸 융명을 자신의 아들 세종과 혼인시켜 정비로 삼았다.
지소태후의 뿌리들은 꾸준히 미실파를 괴롭히는 정점으로 활약한다. 지소태후의 딸들은 대대로 미실과 척을 지며 반대파로 살았고 궁중 세력의 중심이 되었는데 사도왕후의 계보를 잇는 미실의 딸들이 궁주 이상의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과 대조적으로 대부분 왕후, 태후가 되었다. 지소태후가 이화랑과 결혼하여 낳은 만호공주는 동륜태자의 부인으로 한동안 독수공방했지만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이후 진골정통의 종이 된다.
선덕여왕의 어머니인 마야왕후는 복승갈문왕과 송화공주의 딸인데 송화공주는 지소태후의 딸이니 마야부인은 지소태후의 손녀인 셈이다. 그들에게 위기 의식을 느낀 미실이 숙명공주의 아들에게 딸 애함을 시집 보내려 하지만 만호태후가 자신의 7살 딸과 숙명공주의 아들과 혼인시켜 막는다. 진골정통파 공주들의 단합이 미실을 궁중에서 고립시킨 셈이다. 만호태후의 딸 만명공주 만이 이 분위기를 거스르고 대원신통 김서현과 결혼하는 까닭에 미실이 서현과 유신에게 호의를 보인다.
공주들과 후궁들, 그리고 화랑과의 결혼 등이 드라마에 등장하고 나면 화랑들 간의 암투로 이어지는 이 드라마의 흐름이 산만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애초에 여왕이 될 덕만공주를 흙탕물 전투에 익숙한 화랑으로 고생시킨 것도 그런 분위기 보다는 화랑들 간의 박진감 넘치고 파워풀한 장면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궁중 암투로 이어지는 사극의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아름다운 천명공주는 초반에 죽어버려야했는 지 모르겠다. 선덕여왕은 이제 남편을 공유한 천명과 갈등하지 않아도 된다.
지소태후와 사도태후, 만호태후가 등장하는 설정으로 드라마를 이끌었다면 어떤 분위기가 됐을까? 비록 그녀들의 정치 다툼이 궁중 암투처럼 보일 수 있을 지 몰라도 그들이 병력을 이끌고 군사를 지휘했다면 진평왕의 입지는 지금 보다 훨씬 더 좁아지지 않았을까? 드라마를 보며 놀라는게 특별출연한 배우들의 경력이 만만찮음에도 비중이 작다 점인데 짧은 출연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드라마를 보니 잠깐이라도 등장했으면 좋겠단 바람이 든다.
화랑세기는 화랑에 대한 기록이지만 그들의 가계를 자세히 적다 보니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등장하게 된다. 삼국사기 이후 사료들이 주로 부계는 자세히 적어도 모계는 자세히 적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서 어머니의 이름이나 아내의 이름이 전하여 오는 경우도 거의 없을 지경이지만 화랑세기는 화랑의 모계와 부계를 거의 동등하게 기술하고 아버지를 모를 경우 모계만 적는 경우도 있다. 부계 신분이 낮아도 모계 혈통이 인정되면 높은 신분을 얻기도 한다.
가장 기존 공주의 이미지와 비슷했던 천명공주. 최근엔 마야부인의 딸이 아니라 성골이 아니었을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마야부인이 딸이라면 지소태후의 증손녀가 된다.
왕의 이름 만큼이나 많이 적힌게 낭주들과 궁주, 공주들, 그리고 태후들의 이름이다. 왕의 적자가 왕자, 왕의 서자나 왕후의 서자가 전군이었던 식의 남성 분류와 다르게 공주들은 적서를 가리지 않고 공주로 봉해졌다. 지금 MBC 드라마 선덕여왕엔 화랑이나 왕자의 등장은 잦지만 상대적으로 등장하는 후궁과 공주의 숫자가 적은 건 몹시 아쉬운 일이다. 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배경엔 공주들과 태후들의 정치적 활약이 뒷받침된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아들을 낳고 정치 싸움에 끼어든 천명공주.
화랑의 암투 만큼이나 치열한 게 태후궁과 미실궁의 대립이었고, 각 공주들 간 색공이고, 자매들 간 라이벌 구도였음에도 드라마에 출연하는 공주들은 지나치게 적은 숫자다. 미실과 진평왕 사이의 딸 보화공주, 미실과 진흥왕의 딸로 진평왕의 궁주 자리에 오른 난야공주, 진평왕의 제 2 왕후인 승만왕후, 진덕여왕이 되는 승만공주가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지만 여성 간 궁중 암투로 비치는 것이 두려운지 여성권력자는 미실과 덕만 단 둘 만 등장하고 있다.
만호태후와 입종갈문왕의 아들인 숙흘종의 딸, 만명공주는 늦도록 결혼을 하지 않다가 가야파이자 대원신통인 김서현과 야합하여 미실파를 배제하려는 어머니의 뜻을 꺾는다.
특히 승만공주의 경우 진평왕의 조카이자 선덕여왕의 사촌여동생으로 동반 세력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고 김춘추와 승계 다툼을 벌일 만도 한 인물인데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당연히 선덕여왕과 연배가 비슷하고 김춘추 보다 나이가 위일만도 한데 궁중의 한 축으로 등장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일까. 천명공주의 사망으로 궁중 내 동료이자 경쟁자가 줄어든 덕만의 발목을 잡을 궁중 세력이 모자라다.
지소태후는 꽤 많은 아들과 공주를 낳아 왕실을 번성케 하고 세력을 확장했는데 자신의 딸 숙명공주를 진흥왕의 왕후로 삼고, 사도왕후를 좇아내려다 실패한다. 숙명과 어머니가 같은 진흥왕은 공주 자체도 꺼려한데다 숙명은 잘 알려진대로 다른 연인이 있었다(원광법사의 어머니가 숙명공주). 진흥왕이 사도왕후를 사랑하자 지소태후는 그 분풀이로 며느리 미실을 쫓아낸다. 그리고 진종의 딸 융명을 자신의 아들 세종과 혼인시켜 정비로 삼았다.
복승갈문왕과 송화공주의 딸인 마야부인은 진골정통이다. 아버지인 갈문왕의 책봉 시기에 따라 공주인지 아닌지가 결정될 듯하다. 딸의 신분이 성골인 것으로 보아 마야 역시 공주였을 가능성이 높다.
지소태후의 뿌리들은 꾸준히 미실파를 괴롭히는 정점으로 활약한다. 지소태후의 딸들은 대대로 미실과 척을 지며 반대파로 살았고 궁중 세력의 중심이 되었는데 사도왕후의 계보를 잇는 미실의 딸들이 궁주 이상의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과 대조적으로 대부분 왕후, 태후가 되었다. 지소태후가 이화랑과 결혼하여 낳은 만호공주는 동륜태자의 부인으로 한동안 독수공방했지만 진평왕이 왕위에 오른 이후 진골정통의 종이 된다.
만호태후는 지소태후가 이화랑과 사통해 낳은 딸로 공주였다. 오빠 진흥왕의 아들, 동륜과 결혼해 진평을 낳고 진흥왕과 언니 숙명공주의 아들, 정숙태자에게서도 자식을 낳는다. 여러 자녀를 둬 세력을 확장했다.
선덕여왕의 어머니인 마야왕후는 복승갈문왕과 송화공주의 딸인데 송화공주는 지소태후의 딸이니 마야부인은 지소태후의 손녀인 셈이다. 그들에게 위기 의식을 느낀 미실이 숙명공주의 아들에게 딸 애함을 시집 보내려 하지만 만호태후가 자신의 7살 딸과 숙명공주의 아들과 혼인시켜 막는다. 진골정통파 공주들의 단합이 미실을 궁중에서 고립시킨 셈이다. 만호태후의 딸 만명공주 만이 이 분위기를 거스르고 대원신통 김서현과 결혼하는 까닭에 미실이 서현과 유신에게 호의를 보인다.
요즘 공주들은 궁에서 곱게 다투지 않고 군대를 갑니다. 아니 화랑이 됩니다.
공주들과 후궁들, 그리고 화랑과의 결혼 등이 드라마에 등장하고 나면 화랑들 간의 암투로 이어지는 이 드라마의 흐름이 산만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애초에 여왕이 될 덕만공주를 흙탕물 전투에 익숙한 화랑으로 고생시킨 것도 그런 분위기 보다는 화랑들 간의 박진감 넘치고 파워풀한 장면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궁중 암투로 이어지는 사극의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아름다운 천명공주는 초반에 죽어버려야했는 지 모르겠다. 선덕여왕은 이제 남편을 공유한 천명과 갈등하지 않아도 된다.
공주로서 왕실의 어머니가 된 할머니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왕비가 될 수 있었던 덕만공주. 미실과 지소태후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기에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꾼 건 아닐까?
지소태후와 사도태후, 만호태후가 등장하는 설정으로 드라마를 이끌었다면 어떤 분위기가 됐을까? 비록 그녀들의 정치 다툼이 궁중 암투처럼 보일 수 있을 지 몰라도 그들이 병력을 이끌고 군사를 지휘했다면 진평왕의 입지는 지금 보다 훨씬 더 좁아지지 않았을까? 드라마를 보며 놀라는게 특별출연한 배우들의 경력이 만만찮음에도 비중이 작다 점인데 짧은 출연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드라마를 보니 잠깐이라도 등장했으면 좋겠단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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