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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지던트, 박쥐같은 정치인 장일준

Shain 2011. 1. 2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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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프레지던트'의 장점은 정치 현안을 소재로 차용하고 애매모호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입장을 밝힌다는 점입니다. 다큐 성격의 정치 드라마였던 'MBC 제5공화국' 타입 이외에 정치 컨텐츠로서 사실적인 드라마 구성을 시도한 건 거의 최초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 피력이 현정권의 입장과 맞닿아 있을 때는 역시 탐탁치 않습니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혼탁하고 치열한 '대통령 선거' 분위기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건전하고 올곧아 보이던 주인공 장일준(최수종)의 행보는 점점 더 비열하고 지독해집니다. 신희주(김정난)과 박을섭(이기열)의 단일화로 위기가 오자 형의 죽음까지 팔아먹으며 승리를 위한 포석을 다지고 있습니다. 각 진영의 브레인 백찬기(김규철)와 기수찬(김흥수) 간의 희생을 각오한 전쟁도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욕먹는 정치인을 만드는 건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가 바르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란 말은 맞습니다. 장일준은 대학생들을 자극해 청년실업이 대학생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발언을 했던 것처럼 자신의 정적을 지지하는 농촌 사람들을 대상으로 같은 방법을 사용해 자극합니다. 여기서 한번 더 장일준의 색깔이 드러납니다.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형인 장일도의 죽음까지 봐야했던 주인공이 형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썩어빠진 정치인들의 뒷공작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 했던 가족들의 희생도 '선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한다'며 감수합니다. 그의 정치관은 '정치는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권력의지'라는 입장입니다.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의 정책이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자극적이고 현란한 설득, 진심은?

장일준은 자신의 형에게 사형을 선고한, 은퇴한 정치인 청암 송학수(진봉진)를 찾아 '빚을 갚으라' 당돌한 주문을 합니다. 물론 완강하고 고집 쎈 은퇴 정치인에게 씨도 먹히지 않을 협박이지만 죄없는 한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노인의 심정이 편했을 리 만은 없습니다. 청암의 심기를 흐트려놓은 장일준은 그 무례한 공격 뒤 청암을 지지하는 농민들을 찾아가 공격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자신은 'FTA를 찬성하며 지금 같은 농촌이라면 망하는게 당연하다'라고 전제한 장일준은 통상무역국가인 한국에서 FTA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설명합니다. 당연히 술집에 모인 농촌들은 농촌이 망해야 한다는 말에 반발하고 화를 냅니다. 일준은 '지금 같은 상황'이라는 전제에 대해 설명하며 노련하고 화려한 화술로 개방하지 않는 한국은 살 길이 없다고 설득합니다.


국민과 농민이 함께 하는 '국민농업시대'가 되고 국민이 농민을 편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일준의 말에 농민들은 설득되는 듯 합니다. 일부는 순간 화를 내는 듯 했지만 금방 일준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변변한 항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의 탁월한 식견에 감탄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충격적인 말로 허를 찌르고 대화의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이 설득법은 장일준이 가진 장기입니다.

농사에는 농민의 기술과 연륜을 따라갈 사람이 없지만 정치인의 특기는 화려한 화술이죠. 농촌의 현실과 억울한 심정에 대해 솔직한 진심을 털어놓는다면 장일준은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승부를 보듯 도전적인 화법으로 상황을 타개하다 보니 장일준의 '논리'가 이긴 것처럼 보입니다. 더군다나 모든 농민이 FTA를 반대한다는(조건부 반대, 찬성이 더 많을 겁니다) 전제를 깔고 '한국의 농민'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현실 모르는 소리를 하는 걸 보면 뭣 모르는 인물의 건방진 조언이기도 합니다.

13화까지 방영된 '대통령 후보 장일준'은 형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 한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지만 정치인에게는 가치관이 아닌 이겨서 대권을 차지하려는 권력의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합니다. 청암을 설득하기 위해 청암을 겨냥한 지역감정 타파를 주장하는 장일준, 그는 다른 후보와 다를 바 없이 비전이 담긴 정책이기 보다 이기기 위한 주장을 내뱉는 껍데기일 뿐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나

극중 이수명(정한용) 대통령은 김경모에게 너무 샌님이라며 영악해지라 독려합니다. 김경모는 백찬기와 이수명이 자신을 돕기 위해 꾸미는 공작을 그닥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신희주는 정치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며 눈물짓고 백찬기는 선거를 위해 밑바닥에서 일하는 참모들은 어떤 고통을 감내하는지 아느냐 분노합니다. 백찬기가 윤성구(이두일)에게 준 매수 자금은 어디에서 나온 돈일까요.

신념을 고수할 수 있는 고고한 정치인으로 남을 수 있으려면 장일준과 백찬기의 말처럼 일단 이겨야 합니다. 분노하는 민주 투사가 세상을 바꿀 수 없을 지도 모릅니다. 백찬기의 말처럼 처음부터 모든 정치인들이 나쁜 놈은 아니었을 지도 모릅니다. '연꽃은 흙탕물에서 핀다'며 김경모에게 흙탕물을 묻지 않는게 자신의 임무라는 백찬기의 각오는 어쩐지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고상렬(변희봉)의 말처럼 젊은 정치인들은 득표를 위해 이미지를 지키고 싶어 합니다. 어쩌면 정책의 실현을 위한 장기적이고 탄탄한 비전을 갖추는 것 보다 깔끔하고 신선한 외모가 정치인에겐 훨씬 낫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덧붙여 득표를 위해 화려하지만 추잡한 암수까지 당연하게 여긴다면 국민의 운명을 맡길 인물이 아니라 모사꾼일 수 밖에 없습니다. 깨끗한 이미지가 모두 사기 행각이 되버리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정치적 야심을 가질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결과 뿐 아니라 과정까지 좋아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실리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장일준은 감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나섰습니다. 지금 그의 모습은 능력있는 젊은 정치인이기 보다 박쥐를 더 닮아 있습니다. 굳이 특정 정권의 홍보 용어인 '녹색 성장'이란 단어를 썼을 때부터 양심 문제는 가망이 없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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