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넝쿨째 굴러온 당신

넝쿨째굴러온당신, 보기만 해도 속터지는 남자들 대거 등장시킨 이유?

Shain 2012. 3.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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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는 이상하게 입장 차이가 큽니다. 아무리 며느리를 딸처럼 예뻐해도 내 딸이 하면 괜찮은 행동을 며느리가 하면 기분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로 설명을 해보려 해도 이상하게 며느리만 뱁새눈으로 보는 심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내 딸이 남편 즉 사위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건은 오죽 고생했으면 그럴까 하면서 며느리가 남편 때문에 속터져 죽겠다고 하면 노한 마음이 드는게 어머니랍니다. 다른 집 며느리는 속상한 일 있으면 술마시는게 당연하지 그러면서 내 며느리가 속상한 일로 폭탄주를 마시면 싫은 마음이 듭니다.

혹자는 이런 심리를 '세대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윗사람의 말대로 살아야하는게 법이었고 당연히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게 질서였는데 최근에는 자신의 일을 하며 당당히 남편에게 사랑과 대접을 요구하는 아내들이 많아졌으니 상대적으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질투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나는 고생하며 살았는데 너는 왜 조그만 것도 참지 못하느냐는 반응입니다. 이런 행동 기저에는 아들에게 남편의 역할을 기대하던 보상심리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은 그런 노골적인 갈등은 많은 부분 사라졌지요.

엄청애는 왜 차윤희가 싫을까. 알고 보면 윤희도 힘든 인생인데.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는 삼십대 이상이라면 한번쯤 겪어보았을 여자들의 고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어머니 세대에게는 너무도 부러운 며느리들에게도 고민은 있습니다. 드라마 외주제작사 PD 차윤희(김남주)는 어디 가든 싹싹 빌어야 간신히 직업을 유지하는 애매한 사회적 지위에 노골적으로 여자라며 폭언을 퍼붓는 직장 상사들을 버티며 경제 성장 시대를 살았던 딸들답게 형제나 친정을 돌보고, 어지간한 남자 못지 않은 삶을 삽니다. 옆방송국 '전하를 품은 중전' 때문에 달달 볶이는 그녀의 직장은 전쟁터입니다. 극중 차윤희는 매사에 너그럽고 따뜻한 남편 테리강(유준상)이 아니면 도저히 결혼생활을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평생 시어머니 전막례(강부자)의 그늘에서 가족들 뒷바라지만 하고 살던 엄청애(윤여정)는 며느리도 아닌 옆집 여자 차윤희가 못마땅합니다. 사업하다 형님네 재산 거덜내고, 집세도 제때 한번 안내고 윗층에 얹혀 사는 시동생 방정배(김상호)는 얄미워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엄청애가 매사에 딱 부러지고 깍쟁이에 손해보기 싫어하는 윤희는 거칠고 막나간다며 싫어합니다. 안그래도 바쁜 윤희 쪽에서도 부담스럽고 쓸데없이(?) 친절한 이웃 청애가 싫습니다. 따지고 보면 주변에 못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제 할 일 잘하는 두 여자는 서로가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습니다.



의도적인 못난 남자들의 등장, 무엇을 위한 설정?

일부러 찾아볼 것도 없이 드라마 안엔 이상한 남자들 투성이 입니다. 윤희네 집에도 여자들 속터지게 만드는 못 말리는 남자가 둘이나 있습니다. 장남 차세중(김용희)은 사업한답시고 친정 재산 다 말아먹고 그것도 모자라 윤희의 전세금까지 긁어갔습니다. 아내 민지영(진경)은 월급까지 차압당하는 입장이 되자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 비꼬는 태도를 보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세중에게 윤희가 펄펄 뛰며 화를 내자 친정의 경제적인 부분까지 일정량 책임진 딸에게 친정엄마 한만희(김영란)는 자기 아들 달달 볶지 말라며 야단입니다. 사업말아먹느냐 고생한 아들이 가엽다며 오히려 성화입니다.

카이스트에서 공부한다고 내려간 막내 차세광(강민혁)은 누나가 펑펑 퍼주는 용돈으로 사업한답시고 몰래 서울에 와 있습니다. 자신의 형 세중이 장수풍뎅이를 키우다가 거지꼴이 된 걸 아는지 모르는지 누나 윤희가 싸움닭에 마녀란 별명까지 들으며 벌어들인 돈의 가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세광도 대책없는 건 형과 마찬가지입니다. 안그래도 졸업하기 힘든 카이스트에서 쫓겨나면 세광의 앞날도 깜깜하기는 마찬가지겠죠. 홈쇼핑 물건까지 사달라 조르는 만희가 윤희를 또 달달 볶을 것입니다.

하는 사업 마다 말아먹는 윤희의 오빠 세중.

한만희는 시집살이 때문에 마음고생하며 살아온 윗세대로 차윤희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자기 만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또래에 많은 여성들이 그런 마음으로 사회적 성공을 꿈꾸었을지도 모릅니다. 가족을 사랑하며 의지하는 윗세대의 삶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엄청애처럼 허탈한 감정에 시달리고 한만희처럼 삐뚤어진 아들 사랑을 보여주게 됩니다. 윤희는 그런 결혼에 매달리기 보다 내 일을 해보겠노라 다짐한 것입니다. 늦게 결혼했다고 손가락질하든 말든 고부갈등을 묘사하는 '막장 드라마' PD로 이제 잔뼈가 좀 굵었습니다.

가정을 선택한다고 해서 편하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젊을 때 사랑에 빠져 일찍 결혼했던 방일숙(양정아)의 인생은 하루아침에 뒤집힙니다. 그동안 돈 못버는 남편 때문에 갖은 고생을 다 했는데 이제 간신히 먹고 살만해졌나 싶었더니 그 웬수가 바람이 났답니다. 사랑한다고 애원하던 남남구(김형범)는 어디로 가고 어디서 웬 인간성 최악의 '뺀질이'이 하나가 큰소리를 칩니다. 새로 사귀는 그 여자가 불편해하니 이혼 서류 다 되면 전화하지 말고 문자넣으라고 할 땐 보는 사람도 어이가 없습니다. 생계형 바람이라고 주장할 때부터 정상이 아닌 걸 알아봤어야 합니다.

바람피우고 '진상' 부리는 남편 인간적으로 너무 못났다.

문제는 그동안 남편 밖에 모르고 살아온 일숙이 세상물정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돈많은 내연녀가 시댁 식구들까지 구워삶아 자신을 모른척 할 거란 생각은 해본적도 없는 일숙입니다. 대학도 안가고 어머니 눈에 피눈물나게 하며 결혼했건만 못난 남편 돌봐준 공은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바람난 남자의 대표적인 허튼 수작. '쿨하게' 헤어지자는 말이 서글프기 보다 기가 막힌데 어디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그녀를 흔들어놓을 남자는 '왕년'의 스타 윤빈(김원준)으로 보증금 천만원짜리 월세집에 이사오면서 커다란 피아노를 가져올 만큼 철없는 남자입니다.

그 외에도 둘째 방이숙(조윤희)에게 쓰레기 봉투로 얻어맞았다고 갖은 생떼를 다 쓰는 천재용(이희석)은 말 끝마다 '여자가'를 달고 다니는 재수없는 타입입니다. 찜질방에서 잠든 여자에게 사람많은데 드러누워 잔다고 깨울 정도로 특이한 성격이기도 합니다. 과외 스승(?)인 윤희를 물먹이려 각종 장난을 쳤던 천재용은 속은 따뜻한 것 같은데 기분 나쁜 말만 골라서 하는 이상한 성격입니다. 냄비만 달랑 들고 와서 형네집 반찬을 다 쓸어가고 일하는 사무실의 커피와 사탕까지 다 줏어가는 방정배는 두말할 것도 없구요. 방정배네 식구는 알뜰하다기 보다는 민폐에 가까운 행동이라 보는 사람도 영 씁쓸한 부부입니다.

뻔한 '막장 고부갈등'의 구조. 새로운 해법이 나올까?

드라마는 왜 유독 이런 남자들을 여주인공들의 짝으로 등장시켰을까요. 이 '못나고 이상한 남자'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에게 헌신하는 여성들의 고마운 점을 몰라준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아내란 이름으로 때로는 엄마나 가족이란 이름으로 자신들을 위해 애쓰는 여자들을 늘 자신의 조력자로 두려한다는 점이죠. 놀랍게도 같은 여자임에도 '시어머니'란 입장이 되버리면 어느새 아들의 그런 행동을 두둔하고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막장 고부갈등' 스토리의 기본플롯이면서도 흥미롭습니다. 극중 드라마 PD 차윤희가 '막장드라마' 운운하고 다니는 장면이 여러번 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막장 드라마의 포석은 깔았는데 막장 드라마를 거부하겠다? 직접적으로 '타도의 대상'이 될만한 못난 남자들을 대거 출연시켜놓은 상황에서 별뾰족한 수가 있을 것같진 않지만 여우같은 애교로 남자들에게 뭔가를 얻어내는 '된장녀' 방말숙(오연서) 보다 좋은 대처법이 나올 것도 같은 묘한 기대감이 듭니다. 극중 상황이 어디서 본 듯 눈에 익숙하다는 쓸쓸한 현실감이 들면서도 아직도 이러는 집이 있나 싶은 비현실적인 느낌도 반반인 것처럼 기대반 우려반이라 이거죠. 그건 그렇고 극중 유일한 '완벽남', 테리강의 이름이 '방귀남'이 되는 건 언제쯤일까요. 이름이 바뀌면 성격도 바뀔 것같은 불안한 예감이 엄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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