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골든타임

골든타임, 헬리콥터를 갖춘 중증외상센터와 착한 사마리아인 법

Shain 2012. 9. 2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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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위급할수록 책임 문제는 중요합니다. '골든타임'의 마취과 과장 지한구(정석용)가 퇴근하려다 발길을 돌린 건 어레스트까지 온 환자를 경력짧은 다른 스탭에게 맡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김도형(김기방)이 환자가 오면 각 과 레지던트와 펠로우를 부르고 원칙적으로 인턴에게 처치를 맡기지 않는 이유는 경험도 경험이지만 그 책임을 감당할 자격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또 책임을 면하고 의료소송을 피하기 위해 종종 1차 병원에서 감당할 수 없는 응급환자를 입구에서 되돌려 보내는 경우도 있고 응급처치를 수행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검사를 하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환자를 책임지고 진료하고 수술하는 사람은 의사지만 그 의사의 책임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기관은 정부입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시술하고 처치를 했더라도 때로 과잉진료라던가 부적절한 조치라는 이유로 의료비 지급을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망한 환자의 마지막까지 책임지기 위해 남은 유족들에게 정중하게 사망진단을 해주는 최인혁(이성민)의 노력은 그 시스템 속에서 묻히고 맙니다. 그런 현장의 분위기는 단순한 서류 한장으로 평가할 수 없는 부분임에도 방어적 의료 조치를 하지 않으면 병원도 평가에서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문책을 받게 된 이민우 제왕절개 당시의 위급함을 설명해보지만.


환자를 위해 늘 응급실 주변을 서성이고 피범벅이 되어 응급조치를 하는 이민우(이선균) 인턴의 노력. 5분 안에 개복하지 않으면 산모도 아이도 살릴 수 없다는 판단에 수술복도 입지 못하고 개복을 했지만 그의 그런 행동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정도로 중대한 일입니다. 만약 산모와 아이 둘 중 하나라도 사망하면 의료소송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교통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라도 사망사고가 일어나면 자격을 갖춘 의사가 매뉴얼대로 응급조치를 했느냐가 의료 소송의 이유가 됩니다. 불합리하지만 시스템이 그래서 의사들이 일단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는 현실도 분명 있다는 것이죠.

극중 병원장 오광철(박영지)과 이사장대행 강재인(황정음)의 대화처럼 의사가 소신진료를 했더라도 심평원 측에 부당이득금 문제로 환금조치를 당하고 병원에 불리한 처분이 내려질 경우엔 의사를 감싸주고 적극적으로 소송을 진행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은 응급의료 매뉴얼이나 심평원 기준대로 시술하고 처방하는게 제일이겠지만 환자의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 의사가 부득이한 선택을 했다면 그 역시 보호해주는게 마땅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2008년부터 '착한 사마리아인 법'과 유사한 응급의료법이 시행중이고 의사에게 최소한의 방어막이 되어 주긴 하나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탁상공론 앞에서 체념하는 최인혁 교수

'골든타임'은 아시다시피 해운대 백병원이라는 곳에서 촬영중입니다. 그곳에는 실제 헬기로 응급환자를 수송할 수 있는 헬리포트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003년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응급환자 이송을 위한 헬기 이용을 추진해왔고 2010년 현재 총 6대의 응급구조헬기가 운영중이지만 그 헬기 이용자의 13% 만이 응급환자이며 나머지는 화재와 지방자치단체장의 업무지원을 위해 이용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특히 특정 지방단체장은 걸핏하면 헬기를 이용해 언론에서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속 대사대로 한번 뜨는데 500만원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응급구조헬기가 구조용이 아닌 이동수단이 된 것입니다.

또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전문의를 대동한 소방헬기가 응급구조를 위해 이용되고 있긴 합니다만 아직까지 그리 높은 활용도를 보이고 있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무엇 보다 드라마 속에서 묘사된대로 응급의학 자체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분야라 전문적인 인력과 장비를 갖춘 병원도 흔치 않은데 빠른 시간 안에 응급환자를 적절한 장소로 이송하는 문제도 생각 만큼 쉽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1차 병원에서 처리해야하는 각종 행정 절차나 담당자의 지식 부족 또는 판단 착오로 환자 수송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송이 늦어 사망한 두 아이의 아버지. 헬기로 왔더라면 살았을텐데.


강대제(장용)를 대신해 이사장이 된 강재인은 환자를 살리려 메스를 든 이민우(이선균)와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위해 애쓰는 최인혁(이성민)을 지지해 보지만 자신의 힘으로 모순투성이 의료시스템을 움직이긴 무리라는 걸 알게 됩니다. 정치적 이해 타산 때문에 응급구조헬 지원법이 바뀐다고도 하고 아무리 운영을 잘해도 중증외상센터 지원 지역에서 배제되는 현실 속에서 힘없는 이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병원장에게 애써보라 지시를 내리는 것 정도입니다. 더군다나 고모할머니(반혜라)처럼 이권에 개입하는 사람이 많을 땐 아무리 뜻이 좋아도 손발이 꽁꽁 묶입니다.

강재인의 할아버지 강대제는 병원을 어떻게든 흑자 운영해야하는 입장입니다. 딱히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그는 병원의 살림을 책임진 이사장으로 실적을 보여야 하고 안정적인 재원이 있어야 전체 의료재단을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하기로 마음먹고 박금녀(선우용여)에게 조언을 구한 것은 강재인의 요청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나마 강대제가 의사 출신이라 최인혁이나 강재인의 진심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인턴, 레지던트, 펠로우, 교수, 과장 순으로 경력을 쌓고 전문 의료인이 되는 시스템의 권력 관계나 응급의학실의 현실을 같은 의사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십년째 같은 말이 반복되는 소방헬기 컨퍼런스. 최인혁은 한번이라도 출동하고 이야기하자고 애청한다.


정형외과 펠로우 박성진(조상기)가 말대로 산모를 제왕절개한 인턴 이민우의 행동은 칭찬할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을 살려야한다는 의사 본연의 책임과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는 누구든 행동해야한다는 의무감에는 공감을 표시합니다. 최인혁 교수같은 실력과 지식을 갖춘 의사는 많지만 그런 순간에 자진해 나서지 않는 이유는 의료행위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소리를 듣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응급상황에서 찾아온 죽음이 아무리 어쩔 수 없어도 사망진단을 내리고 의료소송까지 감당한다는 건 결코 기분좋은 일이 아닙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 아닙니다. 위급상황에서 몸사리는 의사가 늘어나 각종 행정 처분이나 소송이 두려워 시술하려는 의사들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법이든 병원이든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의사라면 무슨수를 써서라도 보호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이럴 때 적용되는 것이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 법'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응급의료법'으로 적용되어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 주지 않은 행위를 처벌하는 법'으로 본래는 불구조죄를 뜻하지만 우리 나라에선 적극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병원과 법은 의사들이 최선을 다 했을 경우 보호해주어야 한다.


프랑스같은 경우 자신이 특별히 위험하지 않음에도 타인을 구조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법을 적극 시행하기 힘들다는 여론이 많은데 그것은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할 경우 의사든 구조한 사람이든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그 책임 소재에 대한 법규정을 동시에 마련해야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신 '응급의료법'에서는 '응급사항에 처한 환자를 도울 목적으로 행한 응급처치 등이 본의 아니게 재산상의 피해를 입혔거나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감면해주는, 법률상의 면책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을 도와주려다 잘못되어 구해준 사람이나 의사가 각종 소송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으니 당연한 법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법조항이 애매하고 의사에게 적용될 경우에는 면책의 범위가 한정적이라 드라마 속 '인턴 이민우'의 상황에는 적극적으로 적용하기 힘들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민우가 개복해서 살린 산모와 아이가 사망한다면 유족 측은 최소한 그 시간에 자리를 비운 당직 의료진과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드라마는 왜 인턴이 칼을 들 수 밖에 없었는지 묘사했지만 원칙적으로 펠로우나 외과전문의가 자리를 비워서는 안되는 것이니까요.

위급환자를 맡겠다고 자원하는 의사. 현재의 시스템은 왜 그런 의사를 격려하지 못할까.


최인혁은 소방헬기가 출동하려면 전문의가 가야한다는 말에 내가 갈 수 있다고 자원합니다. 그는 그 많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살리고 싶어하는 의사입니다. 동시에 탁상공론에 지친 최인혁은 응급구조 헬기 도입과 중증의학센터 설립을 어느 정도 체념한 무기력한 의사이기도 합니다. 제때 도착하지 못해 사망한 한 아버지의 자녀들을 양육하려면 500만원 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사람 목숨값은 원래 비싸다'라고 항변해 보지만 그런 작은 진리가 시스템을 책임진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는가 봅니다. 최첨단 기기가 발명된 이 시대에  '골든타임' 안에 환자를 병원에 싣고 오는 일이 어쩌면 그리 멀고 험하기만 한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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