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골든타임

골든타임, 시청자들이 환영한 PPL 이번이 처음 아닐까

Shain 2012. 9. 2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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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골든타임'의 장점 중 하나는 누가 뭐래도 적절히 활용된 PPL입니다. 응급환자의 이송과 치료를 위해 헬기까지 동원된다는 내용의 이 드라마는 부산광역시와 소방방재청, 해운대 백병원을 비롯한 공공기관과 관공서, 의료기관의 촬영협조 없이는 제작이 아예 불가능한 드라마였고 현장근무 중인 외상외과 의료진들의 자문과 의료장비 협조없이는 풍부한 연출이 힘든 드라마였습니다. 이외에도 부산광역시는 휴가철이라 잠자리 얻기 힘든 제작진을 위해 숙소를 제공하기도 하고 관사를 빌려주는 등 각종 혜택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응급상황에 처한 환자를 일정 시간 안에 병원에 옮기지 못하면 죽는다 - 환자를 살릴 수 있는 황금 시간을 뜻하는 '골든타임'이란 용어는 정확한 의학용어는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용어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곳은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이 아닌 환자 이송을 담당하고 있는 소방방재청 쪽입니다. 어제 방송에서 처음 소방방재청과 MOU를 체결하고 환자 수송에 동원된 의사 최인혁(이성민)과 인턴 이민우(이선균)가 묘사되었는데 그 장면은 응급이송 상황과 매뉴얼을 그대로 옮겨놓다 보니 드라마틱하다기 보단 사실적입니다.

최인혁과 이민우. 긴장되지만 감격적인 첫 응급환자 헬기 이송.

'골든타임'에서 묘사된대로 우리 나라 병원은 응급의료 지원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은 편입니다. 응급의료는 민간 의료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료' 차원에서 접근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재인(황정음)과 강대제(장용)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 첨단 장비와 숙련된 전문의,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해 개개 종합병원에게 사회봉사 차원의 서비스를 강요하긴 무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큰 병원이라도 그만한 예산과 적자를 메꿔줄 재력을 갖춘 병원은 없고 실제로도 중증외상센터에 내세우고 있는 병원도 중형 병원이 훨씬 더 많다고 합니다.

환자를 살리고 싶은 의사들은 행정과 제도 앞에서 절망하고 환자와 환자 가족은 제때에 제 장소로 이송되지 못해 치료받을 수 없는, 그 '시스템'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묘사되다 보니 이 드라마 '골든타임'은 자극적인 요소가 없는데도 보는 사람들을 감동시킵니다. 고아 다섯을 후원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던 진짜 김우수씨는 죽었지만 극중 박원국(최재섭) 환자는 모든 책임을 감수하는 최인혁의 노력 덕에 살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방영된 그 어떤 드라마도 응급의료 정책을 이렇게 신랄한 비판하는 동시에 홍보하는 내용은 없었던 것같습니다.

몇몇 지방에서 병원과 소방방재청의 협조 하에 소방헬기가 응급의료를 위해 지원되고 있다.

부산광역시는 '골든타임' 덕분에 최고의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습니다. 몇몇 드라마를 협찬, 유치해 최고의 드라마 촬영지로 인정받았음은 물론 각 관공서와 소방방재청 등은 드라마 촬영 협조를 내용으로 한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특정 사기업이 드라마 소품 협찬과 제작비 지원 등을 통해 제품 판매 효과를 누리는 것과 달리 지방자체단체나 정부기관은 잘 알려지지 않는 정책을 '드라마'를 통해 효율적으로 홍보할 수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닥터헬기'도 몇개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고 소방방재청 역시 꽤 오래전부터 이 일에 협조하고 있지만 그 부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골든타임'은 각각의 기관에서 제공한 시설을 이용해 응급의료정책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내면서도 특정 기관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습니다. 극중에서 심평원 직원들은 꼭 필요한 투약과 시술임에도 까다롭게 의료비 지원심사를 하고 담당 의사의 판단으로 투여된 항생제까지 트집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입장이 있다는 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또 보건복지부에서 헬기의 크기를 작게 변경하고 특정 지역을 위해 법까지 바꿨다는 대사를 하면서도 '정치'없이는 의료정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최인혁 교수가 응급환자 구조 장비를 갖추고 신분증을 소방방재청에 제시한 뒤 헬기를 타고 환자가 있는 장소로 날아가던 장면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비록 헬리포트가 설치된 장소가 많지 않아 근처 초등학교에서 환자를 태워야했지만 사고 현장으로 전문의가 달려갈 수 있다면 그리고 헬기를 이용해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헬기 한번 띄우는데 500만원의 예산이 들고 헬기에 환자를 태우기 위해 응급구조대 여러명이 출동한다는 걸 알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협조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병원과 정부의 상황을 신랄하게 꼬집으면서도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는 드라마.

응급의료를 원하는 환자가 있고 또 그 응급의료를 위해 자진해서 훈련을 받겠다는 의사와 출동해주겠다는 소방대원이 있어도 정책적으로 그를 지원해주지 못하면 그 큰 뜻은 물거품이 됩니다. 극중 세중병원과 MOU를 체결한 소방방재청이 응급환자 지원을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선택되었지만 소방방재청 역시 처음부터 이 일에 협조적이지는 않았습니다. 10년 동안 같은 내용의 컨퍼런스만 반복해왔다는 최인혁의 말처럼 이 응급구조 시스템에 있어 '소방방재청' 역시 절대 선은 아닌 것입니다. 드라마는 그 각 기관의 입장과 태도를 여과없이 그대로 묘사합니다.

우리 나라는 정책적으로 의료보험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로 의료는 '공공'의 성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영리 목적의 병원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안정적 재원 없이 꼭 필요한 장비나 의약품 개발을 시도할 수 없습니다. 또 숙련된 의사들을 양성하고 인턴에서 레지던트로 또 전문의와 교수로 의료진을 키워나가는 그들의 탄탄한 체계도 존중해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반면 그 영리 목적이 지나쳐 또 의료 책임을 피하려 불필요한 검사를 남발해 환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병원도 있습니다. 비싼 '의료비'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환자는 아직도 많습니다.

창고같은 방에 자리잡은 중증외상센터. 이런 정책에 대한 이야기라면 PPL도 괜찮지 않을까.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PPL은 거의 반강제적인 광고입니다. 일부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배우가 착용하고 이용하는 협찬 제품이 드라마 내용과 상관없이 자주 등장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 중 일부는 노골적인 광고가 들어간 컨텐츠에 대해서는 '드라마냐 CF냐'라며 비아냥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응급의학의 현실을 되짚어 보고 그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의 고민을 함께 공유하며 모두 공감할만한 토론을 끌어내는 PPL이라면 누구나 환영하지 않을까요. 드라마를 꽤 오래 보았지만 이렇게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낸 정부 PPL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긍정적인 반응 뒤에는 사실적인 현실 묘사와 더불어 그 어느 정책도 무조건 편들어주지 않는 제작진의 객관적 태도도 한몫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정책을 아무 비판없이 홍보하기 위한 드라마였다면 그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구요. 다른 드라마들 중에는 노골적으로 정부 정책을 홍보해 지적받아야할 내용도 종종 있습니다. '골든타임'은 중증외상센터 지원과 응급구조 시스템 확충이라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호소해 시청자들에게 잘 받아들여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시즌제 제작에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이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만큼요.

* 오늘 마지막회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솔직히 두근두근합니다. 그건 그렇고 산탄총 환자를 누가 쏘았느냐, 그 미스터리는 언제 정확히 밝혀주나요. 시즌 2에서 혹시 알려주실 생각이라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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