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아랑사또전

아랑사또전, 민폐 캐릭터 조짐이 보이는 아랑 씩씩한 그녀가 그립다

Shain 2012. 10. 1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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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시청하는 드라마를 고르는 기준은 보기 보다 간단합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설정이 마음에 안드는 드라마는 처음부터 선택하지 않습니다. 반면 연기자, 내용 모두가 마음에 안 들어도 '사극'같은 장르의 특수성이 있거나 눈여겨볼 화제성이 있으면 억지로라도 한번쯤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원래부터 '졸작'인 드라마는 없으니 잘 살펴보면 장점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아랑사또전'은 꾸준히 시청하면서도 뒤끝이 개운치 않은 드라마입니다. 방영 초기의 기대감은 산산조각났지만 연기자는 매력적이라 시선을 뗄 수가 없네요.

예전에 '전설의 고향'에서 보던 밀양의 '아랑전설'은 무서워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나 '아랑사또전'은 뭔가 기괴한 것이 대중적인 코드는 아닌 듯합니다. 이런 류 드라마들은 취향을 타는 편입니다. 미국 드라마 중 '그림(Grimm, 2011)'은 동화 작가로만 알려진 그림형제를 퇴마사로 재해석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호러인 듯 하면서 동화를 새롭게 각색한 설정에 은근히 팬층이 두텁지만 이상하다는 반응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렇게 시청자 반응이 극과 극인 드라마를 공중파 골든타임에 방영하는 건 무리죠.

요물이 된 선녀와 다시 태어난 처녀귀신. 취향을 타기 쉬운 소재이긴 했다.

그나마 이 드라마를 지금까지 끌고온 것은 어디까지나 연기자들의 매력입니다. 복수에 미친 아낙에서 품위있는 선녀였다가 악귀부리는 요물로 변신하는 홍련(강문영), 깜찍함과 엉뚱함이 최고 무기인 허당 무당 방울(황보라), 냉정하고 무관심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지만 아랑으로 인해 여린 속내를 들키고 만 최주왈(연우진), 당차고 드센듯하면서 마음이 따뜻한 처녀귀신 아랑(신민아) 등 시청자를 사로잡는 연기자가 이 드라마 최고의 장점입니다. 무엇 보다 격한 감정연기와 액션을 오가는 김은오(이준기) 사또는 팬들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죠.

김은오는 이미 한번 죽은 몸이나 혹황상제(유승호)로 인해 되살아났습니다. 옥황상제는 자신이 쫓아낸 선녀였던 무연(임주은) 즉 홍련이 인간 세상에 어떤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지 직접 보고 다닌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최대감(김용건)에게 엄청난 증오를 품고 있는 서씨를 보았고 서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죽은 어린 은오를 발견한 것입니다. 산자와 죽은자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은오야 말로 인간의 몸에 깃든 무연을 처치하기 가장 알맞은 '최종병기'였으며 이준기는 반쪽자리 양반인 얼자 은오의 역할을 멋지게 해냈습니다.

이 드라마의 최고 매력은 누가 뭐래도 연기자다.

물론 방영 초반 왜 은오가 죽은자에게 동정심을 가지지 못했는지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까칠한 성격인 것은 알겠는데 왜 그렇게 박하게 죽은자들을 쫓아내는지 왜 어머니만 쫓아다니는 모모동자가 되었으며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데 서투른지 묘사되지 않았으나 후반부에 자연스럽게 적자가 아닌 얼자로 눈치보며 살아야했던 은오의 과거 그리고 차라리 없어지라는 자신의 말 때문에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죄책감이 드러나며 시청자들을 납득시켰습니다. 은오가 남들에게 돌보지 않던 이유를 보여줬으니 아랑을 사랑하게 되고 좋은 사또가 된 계기 또한 이해하게 된 것이죠.

대신 아랑은 초반부와 달리 매력을 잃고 어정쩡해졌습니다. 옥황상제와 염라대왕(박준규)과 담판지어 다시 한번 지상에 살게된 아랑은 씩씩하고 귀엽고 발랄한 처녀귀신이었습니다. 때로는 왈자 원귀들에게 얻어맞고 혼자 울기도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씩씩하게 또 사람(?)답게 잘 헤쳐나가던 똑똑한 귀신이기도 했죠. 그녀는 이서림과 자신을 전혀 별개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얌전하고 답답해보이던 이서림의 마음과 아랑의 마음은 다르다고 단언하기도 합니다. 마치 새로 태어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초반부의 매력을 잃어버린 아랑 이제는 민폐캐릭터까지 되려 한다.

전생(?)의 아랑은 최주왈에게 첫눈에 반했고 주왈을 위해 서씨의 칼을 대신 맞았습니다. 주왈을 살리는데는 성공했지만 그로 인해 충격을 받은 서씨는 홍련에게 몸을 빼앗기고 맙니다. 그때문에 주왈은 살인의 기억을 잊고 아랑은 홍련을 본 기억을 잊은 채 시간이 흘렀습니다. 귀신 아랑과 은오의 은원은 그렇게 뒤섞여 있었기에 이서림과 은오의 사랑이 엮이자면 이서림과 아랑의 인생을 분리하고 다르게 취급하는게 당연할 수 밖에 없겠죠. 문제는 서서히 기억이 돌아오는 아랑이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본래의 매력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홍련에게 몸을 내어주기로 한 선택은 약간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은오와 무영(한정수)에게 아무것도 알리지 않고 너무 쉽게 홍련에게 몸을 내주기로 했다는 것이죠. 물론 죽음의 진실을 찾아내라는 옥황상제와의 내기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모두를 살리라'는 그런 뜻이기는 할 것입니다. 모두가 사연있는 사람들이고 사랑을 욕망하는 인간들이다 보니 수백년간 악행을 저지른 무연 조차 안타깝고 불쌍한 존재들일 뿐입니다. 옥황상제는 아랑이 단순히 복수를 선택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기에 아랑을 살린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화면에 보이는 아랑이 이상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캐릭터의 매력을 지켜줘야하는 게 아닐까

사또를 홀릴 정도로 발랄하고 귀엽고 투털투털하면서 방울과 티격태격하던 아랑. 산 사람 보다 더 씩씩하고 생기있던 그녀가 요즘은 계속해서 은오의 발목을 잡는 민폐 캐릭터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 최대감이 부리는 수하들에게 은오가 얻어맞은 건 아랑이 납치되었기 때문이었고 이번에도 최대감이 꾸민 역모를 순순히 자백할 수 없었던 건 아랑의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신이 천상에 가든 지옥에 가든 어떻게든 은오와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해서 홍련에게 대뜸 몸을 주겠다니 답답할 수 밖에 없죠.

지금은 마지막회가 얼마 안남아서 이 드라마 자체에 대한 애착 보다 캐릭터와 배우에 대한 애정으로 끝까지 지켜보는 시청자가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아랑사또전'은 전체적으론 '별로'란 평가를 받아도 이준기, 신민아, 연우진, 강문영 같은 모든 등장 배우들에 대한 평가는 높은 편이지요. 하다 못해 방울의 할머니 역으로 잠깐 특별출연한 김부선 조차 호평을 받을 정도니까요. 마무리를 어떻게 할 지 알 수 없지만 끝까지 아랑과 은오의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제 드디어 다음주면 아랑과 은오의 이야기가 결말이 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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