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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급공무원'은 왜 '트루라이즈'가 되지 못했을까

Shain 2013. 3. 2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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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드라마 경쟁이 워낙 치열해 시청률 20퍼센트가 넘는 드라마는 단 한편도 없습니다.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도 14퍼센트를 넘지 못하고 시청률 꼴지인 '7급공무원'도 9퍼센트니 완전히 망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경쟁작인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멜로물 색깔이 뚜렷한데 비해 로맨틱 코미디와 국정원을 결합시킨 '7급공무원'은 로코물과 진지한 첩보물을 넘나드는 연출이 거슬렸던 것 같습니다. 초반에는 거짓말 때문에 만날 때 마다 싸우는 두 남녀주인공의 사랑이 재미있었지만 '국정원'은 로코물의 배경으론 결과적으론 무리였나 봅니다.

남녀주인공들이 근무하는 '국정원'은 실제 국정원과 몇 부분 유사한 면도 있지만 실제 국정원의 운영방식은 극비이기 때문에 드라마 속 묘사와는 많은 부분 다르다고 합니다. 우선 요원들끼리도 서로서로 하는 일을 모르고 가명을 사용한다는 점은 화이트 요원이냐 블랙요원이냐에 따라 다릅니다. 김원석(안내상)이 훈련한 것처럼 6개월 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각종 거짓말탐지기 훈련, 음주 교육, 파티교육, 고공 낙하 훈련 등을 받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는군요. 그런 면면이 흥미로워 방송 초반에는 15퍼센트 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했습니다.

이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했으면 드라마 버전 '트루라이즈'를 기대할 수 있었는데.

미드나 영화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배경이 첩보기관인 경우엔 첩보기관의 아슬아슬한 미션과 거짓말을 반복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유쾌한 멜로의 촉진제가 됩니다.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위장해 임무를 수행하는 영화 '트루라이즈(True Lies, 1994)'의 남자주인공은 자신이 스파이란 사실을 아내에게도 숨깁니다. 평소에 아내에게 무덤덤하던 스파이 남편 해리(아놀드 슈워제네거)는 가짜 스파이에게 놀아나는 아내에게 질투를 느끼고 두 사람은 스파이들의 작전에 휘말려 핵폭탄이 터지고 다리가 붕괴되는 위험한 현장에서 함께 하며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다소 유치하고 엉성하기도 했지만 당시 세계적인 스타였던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가장 다리가 예뻤다는 여배우(다리에 보험을 든 걸로 유명했지요) 제이미 리 커티스의 매력이 잘 살아난 이 로코물은 스파이 로코물의 정석같은 영화입니다. 킬러들끼리 부부가 되어 서로를 속인다는 내용의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2005)'나 은퇴했던 스파이 부부가 다시 활약하는 내용의 '언더커버스(2010)'같은 미드도 생각해보면 그 엄청난 스케일의 사건과 속임수가 모두 주인공 커플의 사랑을 활활 타오르게 하기 위한 연료의 역할을 했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장면 중 하나였던 '옛날서울짜장'과 '오빠다방'의 대결.

CIA나 NAS는 영화나 미국드라마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에게도 꽤 친숙한 첩보기관들입니다. 한길로(주원)가 우상처럼 여겼던 007이 활약하는 영국의 MI6도 유명하죠. 그런 비밀기관들이 저지르는 엄청나고 무시무시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그이미지가 동네경찰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깝지 않은 외국기관이라서 그렇겠지요. 반면 경자 아부지 김판석(이한위)가 언급한 것처럼 우리 나라에선 '국정원'하면 어딘가 음울한 권력의 상징이란 느낌이 강하고 남몰래 정부기관에 압력을 넣는 권력자 이미지도 있습니다. 로코물의 배경 역할을 하기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고 할까요?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는 누가 뭐래도 두 주인공의 알콩달콩한 사랑입니다. 한길로와 김서원(최강희)은 초반에 최강의 캐릭터 조합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름부터 집안까지 모두 거짓말인 타고난 스파이 김서원과 007을 꿈꾸며 국정원 직원이 된 철없는 부자집 외아들 한길로의 티격태격 싸움은 보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다방오토바이와 짜장면집 오토바이를 타고 싸우는 두 사람은 정말 압권이었죠. 다방 커피와 짜장면을 뒤집어쓴 모습에 배꼽을 잡으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후반부에는 그런 재미를 거의 살리지 못합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매력을 반감시켰던 두 주인공의 갈등. 신파극처럼 지루했다.

주인공들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다투고 국가에 희생된 산업스파이 김미래(김수현)나 JJ(임윤호)의 사연이 부각되면서 첩보기관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는 급격히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특히 한길로(주원)를 속이면서까지 임무를 수행하는 김서원의 갈등은 재미를 반감시키는 주요인이 됩니다. 목숨이 아슬아슬한 순간에 '진심으로 날 사랑하느냐'같은 사랑놀음을 하고 있으니 생뚱맞아 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자아부지 김판석(이한위)과 부녀회장 오막내(김미경) 여사의 촌철살인 정치풍자에도 불구하고 사랑싸움을 쿨하게 묘사하지 못한게 역시 아쉽습니다.

영화 '트루라이즈'의 마지막 탱고는 아직까지도 패러디되는 유명한 장면입니다. 서로를 속인 문제로 갈등하던 부부는 같이 스파이 활동을 하게 되고 급박한 임무 현장에서 격한 탱고를 추며 사랑을 확인합니다.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그런 환경이니 두 사람을 무전으로 조정하던 지원팀은 속이 타들어갑니다. 스파이 로코물이 성공하려면 그런 로맨틱한 상황과 동시에 첩보 임무가 드러나는  조율이 필요했달까요. '트루라이즈'에서는 황당한 핵폭발에도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가 느껴졌는데 '7급공무원'에선 그런 맛이 없었죠.

시청률은 별로였지만 마지막 장면도 출연한 배우들도 모두 최고였다.

덧붙여 '7급공무원'의 각종 임무가 공감가지 않게 느껴지는 건 최근 문제가 된 여러 정치적 사건 때문이기도 합니다. 로코물 특유의 재미를 살리지 못하고 '신파극'으로 변해버린 것이 가장 원인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많은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평가할 때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국정원직원들이 '리얼하게 댓글놀이'를 했으면 이 드라마가 크게 흥행했을 거라 비웃습니다. 실제 국정원이 놀림거리가 되니 드라마 속 국정원까지 우습게 느껴졌다 뭐 그런 말입니다. 김원석과 오광재(최종환)가 개입한 국정원의 검은 과거는 너무 무거웠기 때문인지 아니면 가볍게 처리되지 못해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모로 낮은 시청률에 처음의 매력을 살리지 못한게 아쉬운 드라마 '7급공무원'. 그렇지만 어제 방영된 마지막 장면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예쁘지만 씩씩한 국정원 간부, 끝까지 미혼으로 남은 장영순(장영남)의 캐릭터가 살아있었던 장면이랄까요. 주원이나 최강희, 황찬성, 김민서, 김수현, 임윤호 모두 버릴 것 없는 캐릭터들이었습니다. 경쟁작이 없었다면 꽤 높은 시청률도 기대해볼 수 있었고 우울한 분위기를 길게 연출하지 않았다면 스파이 로코물을 대표하는 드라마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데 포인트를 놓친 건 여러모로 아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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