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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유산, 맛을 느끼지 못하는 이세윤 부각되지 않는 이유

Shain 2013. 3. 3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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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은 계속 당하기만 하고 못된 사람은 좋은 사람들의 보호를 받고. 아무리 드라마지만 답답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는 걸 보면 속이 터지기 마련입니다. 아니 드라마이기 때문에 훨씬 더 갑갑한 느낌이 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얽히고 섥혀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과는 달리 드라마 속 세계는 작가의 의지대로 바꾸고 수정할 수 있는데 왜 보는 사람들을 이렇게 짜증나게 하는지 괘씸하기 때문이죠. 힘든 일을 당해도 언젠가는 밝게 웃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시청자들도 참고 기다리면 속시원한 장면을 볼 수 있겠지만 굳이 드라마보면서까지 견디고 싶진 않은게 솔직한 마음일 겁니다.

'백년의 유산'의 여주인공 민채원(유진)은 예전 시누이였던 주리(윤아정) 때문에 세윤(이정진)에게 단단히 오해를 받고 맙니다. 이세윤은 민채원이 부자집 재산을 노리는 전문적인 꽃뱀이자 착한 주리를 협박하는 몰염치한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윤은 3년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약혼녀 은설(황선희)의 친구였던 주리를 나쁜 여자라 의심한 적이 한번도 없었고 채원은 만난지 얼마되지 않은 낯선 여성일 뿐입니다. 두 사람의 감정이 한참 무르익는 중이긴 했지만 아직까지 은설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기 때문에 채원 보다는 주리를 믿는 것입니다.

참다참다 주리에게 퍼부었는데 채원이 주리를 협박한다고 믿게 된 이세윤.

안 그래도 메인 커플인 세윤, 채원 보다 꽃중년 커플인 양춘희(전인화), 민효동(정보석) 커플의 인기가 심상치 않고 따뜻한 가족 간의 이야기 보다는 방영자(박원숙) 가족의 막장 전쟁이 훨씬 더 화제를 끄는 드라마인지라 주리에게 속아넘어가는 세윤은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본부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사람 보는 눈이 그렇게 없느냐는 지적부터 왜 드라마에서까지 착한 사람이 당해야하는거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아무리 주리의 꾀가 간사스럽다고는 해도 너무 쉽게 속아넘어가는 세윤은 보는 사람을 속터지게 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런 세윤의 역할이 너무 밋밋하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물론 다른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자극적이다 보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이유로 세상에 무관심해진 세윤의 캐릭터는 심심할 수 밖에 없긴 합니다. 마마보이라는 캐릭터가 선명한 김철규(최원영)에 사이코 재벌 막내딸 마홍주(심이영), 이기적이고 욕심많은 주리에 출생의 비밀을 숨긴 백설주(차화연)까지 이세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은 변덕스럽다 싶을 정도로 잦은 감정 변화를 보이는 인물들이지만 이세윤은 오로지 채원에게만 감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감정변화가 격한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해 부각되지 못하는 이세윤의 캐릭터. 밋밋하다는 평까지 듣는다.

알고 보면 이세윤도 감정적으로 격한 비밀을 숨긴 캐릭터인데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방송 초기에 '백년의 유산' 홈페이지에서 이세윤에 대한 캐릭터 설정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드라마 속 이세윤의 행동을 보고 세윤이 병에 걸린 거 아니냐고 물어보셔서 뒤져본 것입니다. 사실 따로 캐릭터 정보를 읽지 않았고 드라마에서 언급된 적은 없어도 눈썰미 좋은 사람들이라면 벌써 이상하다고 지적했을 세윤의 행동이 몇가지 있긴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고 본인만 알고 있는 비밀로 3년전 은설이 죽고 난 후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백년의 유산' 2회에서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세윤은 커피를 마시러 방에서 내려옵니다. '도련님 미국 들어가시고부턴 소리내서 웃으시는거 한번도 못봤다'며 세윤의 어머니 백설주(차화연)이야기를 하는 가사도우미 아줌마는 피곤해서 단 것을 먹고 싶다며 커피에 소금을 퍼넣는 세윤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3년전 애인이었던 은설(황선희)이 죽고 백설주가 세윤을 위해 절에서 불공을 드리는 등 세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는 암시가 있었지만 세윤의 이상한 증상은 자세히 언급된 적이 없습니다. 채원(유진)이 세윤의 회사에서 영양사로 일하게 되기전까지는 말입니다.

커피에 소금을 넣고도 지독하게 매운 음식도 모두 맛있는 척 먹고 있는 이세윤. 미각을 상실했다.

영양사로 일하게 된 채원은 구내식당 반찬 중 하나가 너무 맵다는 걸 알게 되고 밥을 먹는 직원들 모두 그 반찬이 맵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세윤은 남들이 먹지 못하는 반찬을 내 입에는 맞는다면서 아무렇지 않게 집어먹습니다. 맛이나 자극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세윤의 미각이 심상치 않다는 뜻인데 미각 상실은 질병의 징후이기도 하지만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일 때도 많습니다. 식품회사에서 일하는 간부가 직접 음식 맛을 볼 일은 없겠지만 불편한 증세임에는 틀림없고 적어도 미각상실이 앞으로 채원과 세윤의 관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만은 분명합니다.

인간의 오감 중 하나인 미각을 상실했다는 것은 삶의 재미 중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뜻과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모든 일에 무덤덤해진 세윤의 상태가 그렇습니다.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밋밋한 캐릭터라 재미없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처럼 은설을 잃고 난 그의 심리가 딱 그랬습니다. 사는 재미도 맛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세윤의 캐릭터가 아직까지 부각되지 않는 이유는 의욕이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이고 은설의 일 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없는 삶의 자세가 바뀌는 순간 그의 캐릭터도 바뀐다는 뜻일 것입니다. 잃어버린 맛을 찾게 해줄 소울푸드가 필요한 세윤입니다.

미각 상실이 두 사람의 관계와 세윤의 캐릭터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마마보이부터 사이코까지 워낙 비정상적인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드라마라 무심한듯한 이세윤 캐릭터가 등장하면 조용하다 싶을 정도로 안심이 되는 느낌도 있긴 합니다. 채원과의 사랑이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라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던 두 사람이 보기 좋았던 것도 사실이구요. 다만 한번쯤이라도 방영자의 딸인 주리를 의심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채원을 몰아부치는 모습이 실망스럽긴 하더군요. 주리가 프로포즈해도 백설주가 부탁해도 바뀌지 않던 세원, 채원에게서 은설의 모습을 느끼고 설레여하던 세윤은 주리의 말을 전적으로 믿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예고편을 보니 김철규가 나타나 채원을 괴롭히고 세윤과 채원이 사내 연애를 한다는 소문에 백설주가 채원의 뺨을 때리는 걸로 보아 두 사람의 오해를 풀어주는 것도 주변사람들인가 봅니다. 세윤의 친어머니로 추정되는 양춘희도 결국 채원의 아버지인 민효동과 결혼하게 되었구요. 주리에게 속아넘어가기는 했지만 방영자와 주리가 있는 이상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래야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고 지지부진한 두 사람의 관계에도 곧 변화가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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