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풍선/有口無言

지금 우리 나라가 할 일은 기초공사 - 야망의 실현이 아니다

Shain 2008. 1. 2. 13:46
728x90
반응형
기억에 떠오른 대로 이야기를 적어나가는 탓에, 삼풍백화점 이야기를 거론하게 됐습니다.
우선, 진심으로 그때 돌아가신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당시의 관련 사진들은 여러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작년에 유명했던, 신정아씨 파문을 보면서 인상깊게 읽은 스캔들 하나가 '삼풍백화점 사건'의 생존자 중 하나가 신정아씨였다는 기사이다(진위여부 논란이 있었지만 사실이라고 한다). 지금은 소동이 가라앉아서 관심축에서 멀어졌지만 '삼풍백화점' 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까지 알려준 교훈을 당신은 전혀 배우지 못한 모양이다라고.

삼풍백화점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몹시 마음이 아프다. 청천병력같은 사건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기도 하고, 유지태 발언 사건이 생각나기도 하고, 과장된 그 신정아 사건의 본질을 살펴 보니 이미 아픈 사람을 한번 더 아프게 하는 범죄를 계속 저지르고 있단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한 일은 책임져야 하지만 멀쩡한 건물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 자신의 신상이 낱낱이 공개되는 공포를 겪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돈아 너 참 예쁘구나. 남의 집 기둥을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1995년에 일어난 사건이고 가깝게는 아직도 그 피해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고, 살아남은 가족들이 있고, 아무 관련없는 나 역시 그 사건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데 사회는 그 사건의 교훈을 완전히 잊어버린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쓰러지거나 넘어간 건물이야기 같은 기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마음 한편에서는 그 부실공사가 가능했던 원인이 무엇인지 이런 현상을 자초하는 마인드가 무엇인지 실체를 알고 있지만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건물을 원칙대로 활용하지 않고 무리하게 운용하며 이익을 보고자 했던 소유주(소문에 의하면 돈이 아까워서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도 하던데, 죄책감 보다는 돈이 아깝다는 인터뷰를 먼저 했던 것이 기억나는 그 사람)와 그 무리한 소유주의 뒷돈을 받은 공무원, 그리고 그 소유주 주변에서 의견을 쫓으시던 간부들, 그러니까 건물의 안전 보다는 돈이 더 중요했던 사고친 당사자들은은 직전에 도망쳐 살아 남았지만, 백화점에서 쇼핑하시던 시민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해서 생계를 이어가시던 직원들은 다치거나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정이현의 소설 '삼풍백화점'에서는 그곳에서 죽은 애꿎은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내 초록색 반투명 모토로라 삐삐에 안위를 묻는 메시지들이 가득 찼다. 저녁을 짓다 말고 찌개에 넣을 두부를 사러 삼풍백화점 슈퍼마켓에 간 아랫집 아주머니가 돌아오지 않았다. 도마 위에는 반쯤 썬 대파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며칠 뒤 조간신문에는 사망자와 실종자 명단이 실렸다. 나는 그것을 읽지 않았다. 옆면에는 한 여성 명사가 기고가 특별칼럼이 있었다. 호화롭기로 소문났던 강남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대한민국이 사치와 향락에 물드는 것을 경계하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나는 신문사 독자부에 항의전화를 걸었다. 신문사에는 필자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독자부의 담당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여자가 거기 한번 와 본적이나 있대요? 거기 누가 있는지 안대요? 나는 하아하아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전화를 들고 있어 주었던 그 신문사 직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살 집 부실하게 짓는 건 당연히 싫다

도시에서는 어려운 이야기겠지만 시골에서는 단독주택을 짓고 사는 경우가 많다. 삼풍사고 이후 집을 짓게된 아버지는 멀리 사시는 친구분께 부탁해 집짓는 일에 부실한 것이 없는지 계속 살피셨는데 웬만한 사람들은 형편이 된다면 그런식으로 집을 짓고 싶어할 것이다.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이 일반적인 요즘에 직접 집을 짓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 아예 포기하고 가장 잘 지어진 집을 사는 수 밖에 없는데 그마저 부동산 '투자(투기겠지)' 이론에 따르면 꼭 고려할 문제는 아닌 거 같다.

부실하게 지어진 아파트라도 유명 건설사가 지었으면 비싼 값에 팔리고 거래되고, 집을 산 사람은 좋은 지역에서 집을 샀으니 집값이 올라 그 차액을 받을 수만 있다면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순진하게 이 집은 살기가 편치 않겠다느니 부실공사가 아니냐는 둥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실제로 내 거주지 주변 아파트는 집값 떨어진다고 이불 빨래도 못 널게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비싸기만 한 집에 대해 몹시 관대하다


이불도 말리지 못하는 곳이 과연 집인지 내 개념으로는 이해가 안가지만 그게 룰인 듯 하다. 방음이 잘 안되서 윗층 아랫층 간 싸움이 많이 난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리지만 '아파트'의 존재 가치는 그렇게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 만든 사람, 이익을 볼 사람들은 절대 그 문제에 대해 함구하게 될 것이다. 그 건물이 낡을 대로 낡아서  안전을 위협하게 되기  전까지는.

참 비싼 아파트 광고 많이 봤다. 탐나는 그림들하고 이미지들, 그러나 건물 지은 본인들은 그 건물에서 전혀 살고 있지 않다는 소문이 있던데 정말이야?(순진한 질문해서 참 미안하다)


부실공사가 남겨주는 빚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 뭔가 공짜로 얻는 것이 있을 땐 그 공짜를 주는 사람에겐 속셈이 있다는 말이다. 80년대 복부인들은 돈을 벌겠다고 부지런히 국내를 뛰어다녔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진실대로 아주 막대한 돈을 끌어들인 고위층은 따로 있었다. 공짜로 얻은 부동산 투기의 이익은 사실 그 정치권 인사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 '재주부린 곰'이 되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당시 그런식의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얻던 고위층의 행태는 말 그대로 각양각색이라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렵지만, 관대한 사람들은 그 일을 금방 잊어버린다(실제로 처벌까지 받은 사건인데 불구하고 믿거나 말거나 쯤으로 생각하는). 일반 서민이 그때 공짜로 집값이 오르는 바람에 이익을 본 것이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이익을 봤다고 하더라도 그 돈으로 다른 땅투기를 하지 않은 이상 요새 가격이 부쩍 올라버린 다른 집을 사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이도 좋고 매부도 좋은 모래성 한번 지어보실래요?


그런 식으로 부족해진 돈은 그 정도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 큰돈이 빠지기 위해서 줄어든 공사비와 빈약한 자본은 부실한 아파트를 낳았고, 8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 중에는 벽이 얇아 다툼이 끊이지 않는 집도 많다. 그리고 결국 90년대 중반엔 참담한 붕괴사고가 있었고 정서적으로 이젠 다세대 건물에 산다는 자체로 야박스러워지기도 한다. 누군가 공짜돈을 얻었으면 누군가는 그 부족한 돈 때문에 손해를 보고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그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이 말한다.
사적인 정치자금이나 공금을 벌기 위해 부동산 투기를 부흥(?)시키고 뇌물을 받아서 일을 빨리 진행시켜주고, 주가를 조작하는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경제 발전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우리 꾸준히 노력합시다' 열심히 하면 당신도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라나 뭐라나. 그 빚잔치는 국민들이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아는 척 하지 않는다.


정책은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한 기초공사

가끔 서민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곰곰히 생각을 해보는데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왕이라도 되는 까닭에 국민을 부자로 만들겠단 뜻인가 싶어서 비웃었던 기억이 난다. 정책이 돈을 벌게 해주지도 않고 개인의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해주는 경우는 없다. '개인의 운'까지 책임질 수 있는 나라 따위는 세상에 없는 것이다. 막말로 '왕이시여 백성을 먹여살리소서' 하는 시대는 아니잖나.
(혹시 모르지. 운하에 필요한 땅파는 일자리를 마련했는데 왜 일을 해서 부자가 되지 않는가 젊은이여? 라고 비난을 퍼부을 지도.)

감히 말하는데 일부 집단에게 확실한 '이익을 보장해주는 정책' 따위가 있다면 그거야 말로 아주 사적인 정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는 큰 이익을 보면 누군가는 큰 손해를 보는게 국가다. 한마디로 여기에서 퍼서 저쪽에 주기 정도라는 것. 입장이 달라서 이런 류의 정책을 지지하는 특정 이익집단이 아닌 이상 별로 필요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책은 돈을 벌게 해주는 것 따위가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국가에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사업이 망해도, 사고를 당해도 혹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삶을 영위하는데 지장이 없는 기반을 닦아주는 것, 그것이 국가의 기초공사이고 국가가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돈을 뿌려주는 반짝거리는 돈벌어주기 정책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삶이 곤란해진 사람들의 생계를 보장해줄 수 있지만 부자가 되게 해줄 수는 없는게 국가 아닌가?

큰 사업 한가지로 나라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발상은 언제든 할 수 있다. 남들 보기에 멋지고 성공적으로 보이는 큰 업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겉만 번지르한 그런 정책 보다는 나라를 운영하는데 서민의 생활을 안정하는데 근간이 되는 정책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정책 중 하나가 '사회안전망' 조성이다. 이건 나라를 위한 국가의 기초공사 같은 것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 두고두고 그 피해를 보게될 문제들이고, 정책 시행 시기를 놓치면 앞으로 기회가 오기 힘든 일들이다.


복지정책 그리고 사회안전망은 국가의 근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사회안전망과 국가의 통신, 교통, 교육에 대한 기본 혜택은 말그대로 최저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가정은 붕괴하지 않고 사회가 정서적으로 안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공짜로 먹고 자는 노숙자에게 돈을 주는 것' 쯤으로 해석하고 있다면 상당히 근시안적인  발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분배 보다는 성장이라는 말은 그럴 듯하게 들리겠지만 엄밀히 국가의 기능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제도가 분배 정책에 해당된다고 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개인이 국가를 이루어 사는 이유는 보호받기 위해서이다. 개개인의 생계가 붕괴되지 않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추는 것은 말 그대로 '국가의 발전'을 위한 기초공사가 되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람을 살게 해주는 것은 화려하고 찬란한 빛이 아니라 작은 등대 불빛이다.


집값의 상승, 21세기가 왔는데도 사회보장제도가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것, 공정하지 못한 권력에 대한 편견, 당연히 한두가지 쯤은 빠뜨리고 짓는 건물, 수치를 모르는 공직자, 서민의 몰락, 차별의 고착화 같은 문제들은 급하게 이익을 얻으려고 기본 정책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은 80년대 정책의 탓이 크다. 건국 50년이 가까워 와서야 간신히 논의한 사회안전망인데 좀 더 성장하자고 주장하는 걸 보면 권력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사회 전반의 기초를 세우기 보다는 여기저기 눈에 보이는 곳에 돈을 붓기 바빴고 그나마 국민 의료보험정책에 꼭 필요했던 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린 사건도 일어났었다.

그런 것들이 이익을 위해 아니 공개적으로는 '발전'을 위해 국가의 기초공사를 뒷전으로 미룬 우리 나라의 모습이다. 그 급하게 반짝이던 정책들은 사실, 잠시 편하자고 사채빚 끌어다 쓴 것과 같은 모양새로 국민을 허덕이게 하고 있지 않은가?

남들 보기에 화려한 건물은 윗층부터 무너져 내리며 생사람을 잡았다. 남들 보기에 거창하고 근사해 보이고 부자가 될 것 같은, 공돈이 생길 것 같은 그런 정책이 과연 오랫동안 나라의 에너지를 충족시켜줄 것 같나. 국가의 근간이 되는 정책이 내 한몸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하나. 지금 시기를 놓치면 앞으로 영원히 할 수 없는 기초공사가 얼마나 많은데 삽질로 땅파기에 열을 올리고 있느냔 말이다.



출처 :
삼풍백화점 사건
리브로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