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정도전, 공민왕 죽음에 격노한 최영 다시 전설의 시작이다

Shain 2014. 1. 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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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실에 입성한 최영 장군(서인석)의 모습은 그동안 기대했던 영웅의 풍모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공민왕(김명수)의 갑작스런 죽음을 듣고 단숨에 달려온 최영의 모습은 조정에 모인 사람들을 숨죽이게 할 만큼 당당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카락과 고집스럽게 치켜올려진 짙은 눈썹, 굳게 다문 입술과 무섭게 부릅뜬 눈이 왜구들이 그렇게 두려워했다는 백수 최만호(白首崔萬戶)라는 묘사에 딱 맞더군요. 백발을 풀어헤친 한 노인의 모습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드라마 '정도전'의 팬들은 최영에게 '최달프'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반지의 제왕' 간달프와 비슷한 외모를 가졌다는 이야기겠지요.

공민왕을 잃은 백수 최만호의 격한 분노. 어린 우왕은 겁을 먹고 울먹인다.




평소 서인석같은 사극 배우들이 일반 배우들과 다르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개인적으로 사극 발성 안되는 분들이 사극 출연하는 거 싫습니다) 최영 캐릭터를 맡아 소리를 내지르는 것을 보니 역시 연륜이 남다르구나 싶더군요. 서슬 시퍼런 외침에는 많은 적을 무찌른 장수 특유의 무게까지 느껴져 우왕 역의 정윤석이 진짜 벌벌 떨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위압적이었습니다. 최영은 공민왕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에 격노해 우왕에게 '추상같이 호령해보라' 윽박질렀지만 어떤 왕의 호령도 드라마 속 최영을 뛰어넘기는 힘들 것같더군요.

상복 위에 사슬로 장식한 경번갑을 덧입고 큰칼로 무장한 최영은 한손에 부월(斧鉞)을 들고 있습니다. 부월은 왕이 부하에게 내리는 살생권, 권력의 상징같은 것으로 전쟁시 칼을 하사하는 것처럼 관직을 제수할 때 함께 주기도 했습니다. 실제 살생을 하는 도끼가 아닌 금, 은으로 장식한 의장용 무기일 때도 있었죠. 최영은 금으로 장식된 커다란 도끼를 들고 어린 왕에게 네가 나의 왕이라면 내 권력을 거두겠노라 말해보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왕재로 훈련받은 적도 없고 자질도 없던 우왕은 '살려달라' 울먹입니다. 최영 장군의 행동은 단순한 노여움이 아닙니다. 왕을 잃은 슬픔과 동시에 왕이 그렇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못한 조정 대신들에 대한 분노. 평소 신돈의 자식이며 공민왕의 핏줄이 아니라는 말까지 듣던 모니노가 후계자로 결정되었으나 최영이 모셔야할 왕은 겁을 먹고 오줌을 쌀 정도로 형편없는 아이였습니다. 선왕과 고려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런 격한 분노로 나타났기에 이인임이 소리치자 마자 우왕에게 허리를 굽혔던 것입니다.

분노해서 부월을 들고 소리치던 최영은 왕이 바뀌었단 걸 인정하고 우왕에게 허리굽힌다.


궁궐에서 공민왕이 살해당했다는 것은 그만큼 궁이 엉망이란 말입니다. 궁궐 내부가 위험하다는 최영의 직관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닙니다. 수시중 이인임(박영규)이 권력에서 물러나기 싫어 홍륜을 사주했으니 말입니다. 공민왕의 어머니 명덕태후(이덕희)는 최영의 사람됨을 잘 몰라 이인임의 간계에 속았고 한달음에 달려오는 최영을 의심하긴 했으나 명덕태후는 최소한 이인임을 간파하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이 수렴청정을 하는 동시에 이인임의 대항마로 최영을 내세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최영 장군 하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명언과 함께 무덤에 풀이 나지 않는 인물로 유명했습니다. 물론 1976년 이후에는 풀이 나지 않아서 '적분'으로 불리던 그의 무덤에도 무성하게 풀이 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만 그의 충정과 청렴함은 사람들에게 전설이 되어 있습니다. 우왕의 간청으로 서녀를 우왕의 후궁으로 들였으면서도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우왕이 잘못된 길을 가려할 때 마다 입바른 소리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적군이 쳐들어왔을 땐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맞섰다고 하죠.

이인임의 계략으로 최영을 경계했던 명덕태후는 어쩔 수 없이 최영을 끌어들여야하지 않을까.


고려 말기의 인물들을 대부분 깎아내리곤 했던 조선 개국 세력도 최영에 대한 백성들의 호감을 잘 아는 까닭인지 최영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시신을 거리에 버려도 함부로 하지 않고 온 백성이 울면서 슬퍼하니 조선 개국 세력들로서는 민심을 거스를까봐 걱정이 되었을 수도 있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드라마 '신의(2012)'에 등장한 잘생긴 최영 장군 보다 전장을 누빈 연륜이 살아있는 늙은 호랑이같은 최영장군을 선호합니다. '백수 최만호'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그런 장군 말입니다.

물론 최영에 대한 평가가 모두 완벽한 것만은 아닙니다. 백발의 노인이 제주부터 요동땅까지 몸소 적군을 치러 나섰다는 사실만 봐도 대단한 인물임이 틀림없지만 우왕의 후견인 노릇을 할 만큼 정치적으로 노련한 인물이었느냐 하는 점엔 의문이 있습니다. 외척이면서 우왕을 좌지우지한 이인임을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고, 단종의 후견인이었던 김종서가 수양대군에게 제거되었듯 이성계와 뜻을 달리하는 최영 장군은 제거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가장 궁금한 것은 무인 최영 장군의 정치싸움을 어떻게 묘사할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다시 시작된 최영의 전설. 그는 어떤 인물로 남을 것인가.


정치적 목표가 확실한 다른 주변 인물들에 비해 최영 장군은 왕실을 방어하는 입장입니다.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은 전체적으로 세 개의 세력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인임을 중심으로 한 권문세족 일파, 최영장군과 고려 왕실, 그리고 아직은 미약한 신진 사대부들과 이성계로 말입니다. 명덕태후는 우왕이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손자였으나 고려 왕실을 위해 선택한 만큼 그들의 세력 다툼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입니다. 그 사이에 이인임은 우왕에게 입에 발린 말을 하며 길들이겠죠.

대혼란기였던 고려말 정도전은 공민왕에게 개혁을 조언했고 공민왕은 마지막 뜻을 펼치지 못한채 죽습니다. 이인임은 공민왕의 진심을 알고 있는 정도전을 어떻게든 제거하려 할 것입니다. 비록 정사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최영 장군이 이성계(유동근), 정도전과 앞으로 어떤 관계를 이루게 될 것인지도 궁금한 부분이구요. 한때는 힘을 합쳐도 언젠가는 다시 갈라설 수 밖에 없겠죠. 최영 장군의 운명은 우왕과 함께 끝날 것입니다. '최달프'라는 별명까지 얻은 최영. 드라마로 다시 쓰는 최영의 전설, 끝까지 최영 장군이 위엄을 잃지 않을지 아니면 우둔한 쇠고집 노인이 될지 두고 볼 일입니다.

* 그건 그렇고 조선과 고려가 동시에 쓰는 세트장을 제외하면 칼, 갑옷, 활쏘기, 복식 고증이 참 훌륭하네요. 특히 허리에 고리를 만들어 칼 차는 방식 다시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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