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왕가네'냐 '암가네'냐 문영남을 어떻게 봐야하나

Shain 2014. 2. 1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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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문영남은 이번에도 '왕가네 식구들'로 50퍼센트에 육박하는 시청률로 KBS에 기록을 세웠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렇게 말많고 탈많고 스트레스 유발하는 드라마가 어떻게 그렇게 높은 시청률이 나오냐며 의아해하지만 이쯤되면 문영남의 드라마에는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매력이 있지 않나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많은 기자들이 '왕가네 식구들' 분석 기사를 내놓느냐 빠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저 역시 기본적으로 막장 코드 드라마는 안본다는 원칙을 고수하긴 합니다만 이렇게까지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를 완전히 모르고 지나칠 수는 없더군요. 특히 '왕가네'를 막장없는 좋은 드라마라고 평가했다는 KBS 사장의 발언은 지금 생각해도 씁쓸합니다. 

 

문영남 작가의 '왕가네 식구들'이 종영했다. 이 드라마의 마지막회를 지켜보는 복잡한 심정.

 

스트레스 유발 드라마라는 뜻으로 '암가네'라는 별명을 얻었던 '왕가네 식구들'은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났습니다. '왕가네'는 못난 남편들과 시댁식구, 고단한 살림살이에 지친 아내들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는 '조강지처클럽(2008)'과 정반대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강지처클럽'에서는 바람피운 남편과 이혼한 두 여자 중 하나는 새로운 남자와 결혼하고 또다른 하나는 전남편과 재결합합니다. 처가를 중심으로 전개된 '왕가네'도 한 커플이 헤어지고 한커플이 재결합하는 구조로 전개되었죠.

무려 104부나 방송된 '조강지처클럽'의 캐릭터들도 보는 사람 속터지게 할만큼 뻔뻔한 인물들이었지만 '왕가네'도 만만치 않습니다. '조강지처'에서는 뻔뻔한 남편 때문에 속터지는 아내 역할을 하던 오현경이 이번에는 천하에 둘도 없는 착한 남편을 괴롭히는 지독한 악녀 역을 맡았습니다. '소문난 칠공주(2006)'로 시작된 장영남 막장 드라마의 전성기를 알린 드라마가 바로 '조강지처클럽' 입니다. 그때 태어난 캐릭터들이 여태까지 반복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셈이죠. 사실 그 이전의 문영남 작가는 지금과는 좀 달랐습니다.


 

작가 문영남을 TV 속에서 만난게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1991년 데뷰해 '분노의 왕국(1992)', '폴리스(1994)', '애정의 조건(2004)' 등으로 인기를 끈 문영남은 이병헌, 김희애, 한가인, 채시라 등 굵직한 스타들과 함께 인기 드라마를 만들었습니다. 문영남의 배우들로 불리는 오현경, 손현주, 김희정, 김해숙, 나문희와도 꽤 오래전부터 함께 해왔죠. 특히

오현경은 문영남 작가의 데뷰작이나 마찬가지인 '분노의 왕국'에서 숨겨진 조선왕실의 공주가 세상풍파에 휩쓸려 술집 작부가 되는 내용을 연기했습니다. 악관절 때문에 발음이 불분명했던 오현경이 기억나네요.

 

그리고 문영남의 작품들 중 제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드라마도 있습니다. 바로 故 최진실 주연의 '장미빛 인생(2006)'입니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던 억척 주부가 남편의 배신으로 이혼하고 암에 걸려 죽는다는 내용 의 이 드라마는 뻣뻣한 남성들까지 눈물흘리게 할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평생 동반자로 생각하며 믿고 의지했던 남편이 아내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웬수가 되고 한때 사랑했던 아내가 지지리 궁상맞은 삶의 상징처럼 여겨져 바람을 피우는 이야기. 그 뻔하고 통속적인 신파극이 최진실과 손현주의 연기로 감동적인 인생드라마로 완성됩니다.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드라마 '장미빛 인생' 문영남은 통속의 본질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지금은 '왕가네 식구들'을 지독히 싫어합니다만 어쩌면 문영남 작가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은 '통속'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는 설정 때문 입니다.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결국에는 서로를 '웬수'라 부를 수 밖에 없는 부부. 그러나 죽음이라는 인생의 위기 앞에서는 세상에서 의지할 수 있는 단 한사람이 되는 그 아이러니가 통속의 본질입니다. 내연녀에 미쳐서 아내 맹순이(최진실)의 결혼반지까지 팔아먹었던 남편 반성문(손현주)은 아내가 암말기라는 이야길 듣고 번뜩 제정신을 차립니다. 이성적으론 말이 안되지만 가슴으론 납득이 가는 거죠.

솔직히 고백하건데 저는 '왕가네 식구들'을 한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명절같은 때 스치듯 지나가면서 한두번 본게 전부입니다. 요즘 TV 드라마는 다운로드 받아서 보는 드라마와 TV를 켜놓고 그냥 보는 드라마로 나누어 지는데 '왕가네 식구들'은 절대로 다운로드 받아보는 드라마는 아닙니다. 혹자는 이런 점 때문에 문영남식 막장 드라마의 본질을 '마당극'이라 평가하는 것도 같습니다. 고품질, 저품질 드라마라는 구분을 떠나 엽기적으로 캐릭터화된 등장인물들의 한판을 즐기는게 이런 드라마의 본질이라는 말. 나름 이해가 갑니다.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의 어떤 점을 좋아했을까? 웬수같은 배우자를 보는 심정으로?

사당패가 즐겨했다는 탈춤 속에도 밉상인 양반네와 땡중, 구박받는 서민이 등장합니다. 양반네의 행동거지에 눈쌀을 찌푸리면서도 저러다 곧 놀림거리가 되겠지 싶은 맘에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탈춤. 그 짓궂게 웃고 있는 하회탈과 문영남표 막장드라마의 본질이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조건 파격과 선정성을 추구하는 다른 작가들과 다르게 '장미빛 인생'에서 보여준 것처럼 틀림없이 서민을 울리는 감정의 본질을 잘 알고있는 사람인건 사실입니다. 뭐 그래도 왕대박(오현경)같은 캐릭터는 참 별론데 말이죠.

결국 문영남 작가의 '왕가네 식구들'은 어쩔 수 없이, 시청자가 선택한 최고의 통속극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아무리 비난하고 막장 현실을 아쉬워해도 통속극이 추구하는 최고의 본질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입니다.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는 상당히 찜찜하지만 방송사나 작가에게는 '성공'한 드라마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왕가네 식구들'. 마지막회 소식이 시원하면서도 섭섭합니다. 웬수같던 마누라와 헤어진다고 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갑갑해지는 마음 - 이런 이율배반적인 심리와 비슷한거 같다 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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