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파비앙에 대한 호감 정말 백인 우대일까요?

Shain 2014. 2. 14. 12:08
728x90
반응형

요즘이야 일하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시골에도 외국인들이 종종 있습니다만 예전에는 따로 원어민 강사 학원을 다니지 않는 이상 지방에서 외국인을 직접 만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 미군부대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보면 자주) 가끔 볼 수 있었는데 맨 처음 얼굴이 까만 미국인을 본 날엔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얼굴이 하얀 외국인은 종종 볼 수 있었지만 피부색이 검은 사람을 본 건 생전 처음이었거든요. 당시 나이가 아홉살인가 그랬을텐데 지금이야 사람 보고 그렇게 놀라는게 무례라는 걸 알지만 그때는 '다르다'라는 게 무슨 뜻인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그 아저씨의 친절에 대구를 못한 기억이 나네요.

'나 혼자 산다'로 인기를 끌고 있는 파비앙. 시청자는 파비앙이 백인이라서 좋아하나?

 

몇년전 조카가 세 살 때 샌드위치를 먹으러 가게에 들렀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조카는 아기라서 말귀는 알아듣지만 어른들과 의사소통이 정확히 되지 않던 때였는데 동네에 원어민 강사들이 꽤 여럿 살았습니다. 가끔씩 피부가 하얀 강사들과 마주 쳐도 얼굴이 까만 강사들과 마주 쳐도 조카는 그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느냐 간식을 먹지 못하더군요. 몇번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했을 정도였습니다. 외국인에 대한 사전지식이나 선입견이 없는 조카는 피부색이 다른 낯선 사람을 만나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더군요. 낯선 사람에 대한 그 정도의 반응까지는 대부분 비슷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기전에 가만히 생각해봤습니다. 포털에서 한국인들은 파비앙이 잘 생긴 백인이라서 좋아한다는 그런 식의 비아냥을 읽고 왔는데 그 댓글에는 여러분이 상상하시는대로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도 섞여 있습니다. 대개는 그런 글을 그냥 무시하는데 '인종차별'은 민감할 수도 있는 문제라 한번 곱씹어본 것입니다. 최근 '나 혼자 산다'에 파비앙이 등장한다는 내용에 저 역시 호기심이 생겼고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많은 시청자들이 한국 문화에 익숙한 파비앙에 호감을 표시했죠. 제가 봐도 저 보다 젓가락질을 잘 하고 매운 것도 곧잘 먹는 파비앙이 신기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얼굴 하얀 백인에 대한 막연한 호감이 있는 건 분명 사실입니다. 미국인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과 더불어 헐리우드 영화, TV를 통해 방송되는 각종 외화를 통해 긍정적인 '백인'에 대한 가치관이 은연중에 심어진 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백인에 대한 그런 호감이 제가 아홉살 때 막연하게 느꼈던 외국인에 대한 낯선 느낌과 미묘하게 섞여서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은 경계하면서도 TV에서 자주 본 백인들에게는 호감을 표시하는 , 그런 차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본래 '다르다'는 것과 '낯설다'는 것은 여러 모로 복잡한 행동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지금이 그런 까마득한 과거도 아니고 예전에 비해 외국인들이 거리에 흔해졌는데도 똑같이 그런 편견이 있는 걸까요? 물론 외국인에 대한 편견은 존재합니다. 상대적으로 한국과 사이가 안 좋거나 나쁜 기억을 가진 나라에 대한 선입견도 있을테고 노골적으로는 한국에 체류중인 국제결혼 커플, 불법 체류 노동자들에 대한 반감도 섞여 있을 겁니다. 우리 나라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상 백인을 우대하는 감정이 없잖아 있다고 인정은 합니다만 정말 '나 혼자 산다'의 파비앙을 그래서 좋아하는건가 자기 검열(?)을 해보게 되더군요.

한국 문화에 익숙한 파비앙은 시청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나 혼자 산다' 고정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생각해볼수록 그 댓글은 옳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어왔던 것은 사실일지 몰라도 한국 시청자들은 TV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외국인들에게 늘 비슷한 호감을 보여왔습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장님 나빠요'를 유행어로 만든 아시아인도 있었고 지금은 잊혀진, 보쳉같은 출연자도 있었습니다. 잘 생긴 출연자에 대한 호감이야 인종이나 피부색과 상관없는, 공통적인 경향이고 보면 '나 혼자 산다'의 파비앙이 주목받는 건 역시 백인이란 점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의 한국생활에 있는 듯 합니다.

태권도도 태권도지만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식사한다는 한국식 예절과 낼 모레면 내 나이 달걀 한판이라는 한국식 유머 거기다 배즙이나 쌈장을 아무렇지 않게 잘 먹는 파비앙은 낯선 느낌이 들면서도 친숙합니다. 외모는 분명 외국인인데 하는 행동은 딱 한국 자취생이란 것 . 묘하게 이질적인 그 느낌이 호감이 가고 흥미롭단 말이죠. 어떻게 보면 고급스러운 빌라에 사는 연예인들 보다 평범한 원룸에 살며 가끔씩 부모에게 전화하는 그의 모습이 혼자 사는 평범한 대한민국 남녀들과 너무나 흡사해서 친근감이 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인기를 끄는 건 백인이라서가 아니라 다르면서도 친근하기 때문 아닐까?

아홉살의 저는 당황해서 얼굴이 까만 그 아저씨의 인사에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조카는 그쪽에서 귀엽다면서 먼저 인사를 하고 얼굴이 좀 익자 바로 방긋 웃으면서 손을 흔들더군요. 편견이 남아 있는 사람도 많겠지만 외국인에 대한 아무 선입견없이 그냥 좀 우리와 다르게 생긴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이젠 많습니다. 어린 아기들처럼 '다르다'는 사실 한가지만으로도 호기심을 느끼는게 정상 입니다. 또 굳이 '백인을 더 좋아한다'는 걸 강조할 필요도 없거니와 까맣고 하얗다는 걸로 편을 가르기엔 아직은 외국인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파비앙의 예능 포인트는 외국인임에도 한국인처럼 산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발견되는 프랑스 출신 파비앙의 성격을 보면서 이런 점은 우리와 다르구나 생각하기도 하죠. 특히 바람피우는 프랑스 대통령 스캔들에 '바람둥이'라며 '창피해'라고 혼잣말하는 그의 태도는 뭔가 모르게 신기하기도 하더군요. 프랑스 사람들과 한국인의 정서 차이를 약간은 엿볼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어쨌든 예능 프로그램 하나에 한국인의 의식을 밑바닥까지 파헤쳐볼 수는 없겠지만 - 얼굴이 까맣든 하얗든 간에 저렇게 사는 파비앙이니까 좋다 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