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드라마 표절 논란은 드라마 발전에 보탬이 된다

Shain 2014. 2. 1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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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KBS 길환영 사장이 '왕가네 식구들'을 '막장없는 좋은 드라마'라 극찬했다고 합니다. 같은 날 '왕가네 식구들' 종방연에 참석한 문영남 작가는 KBS 로비에서 종방연한 사람은 본인이 최초라며 기뻐했던 모양이더군요. 하긴 시청률이 50퍼센트 가까이 나왔으니 제작진과 사장이 사업(?) 성공을 좋아라할 만도 합니다만 그들의 잔치를 지켜보는 시청자의 한사람으로서 입맛이 참 쓰더군요. 고령의 배우 나문희를 비롯한 연기자들이야 고생하면서 연기한 죄 밖에 없으니 그렇다 치지만 그런 드라마를 만들면서 수신료 올려달라고 광고해대는 KBS는 딱 싫었고 그런 걸 보면서 현실을 살아나가는 한국의 시청자들도 안타깝고 그렇더라 이거죠.

때로는 드라마의 본질이 예술이 아닌 대중의 통속을 담는데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유사 이래로 사람들은 모이면 이야기를 좋아했고 그 이야기 중에는 원초적인 감정과 해학을 자극하는 내용도 많았습니다. 고품질이냐 저품질이냐 하는 다소 주관적인 분류 따위는 다 집어치우더라도 우리 나라 드라마가 막장이 많다면 그만큼 감정과잉된 드라마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어지간한 소재로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드네요. 원래 드라마가 그렇다며 넘어가겠죠.

최근 '별에서 온 그대'를 비롯한 여러 드라마에 불거진 표절 시비. 장기적으론 드라마 발전에 도움이 된다.




요즘 '별에서 온 그대'를 비롯한 여러 드라마의 표절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SBS '별에서 온 그대' 경우 의혹을 제기한 '설희' 강경옥 작가가 상대적으로 유명한 편하고 만화 내용도 대중에게 공개된 편이라 뉴스거리가 된 것이지 대부분 표절 의혹이 불거진 드라마들은 tvN '나인'의 외국작가 기욤 뮈소라던가 '49일'과 표절 의혹이 불거진 '49일 간의 유예'라는 팬픽, '주군의 태양'과 BL 소설인 '음침한 캔디'처럼 상대적으로 표절 의혹 자체를 제기하기 쉽지 않은 케이스입니다. BL 소설은 등급 문제가 지적되는 경우가 많으니 사람들 앞에 공개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현대사회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시대라서 베끼기는 티나지 않게 하는게 기본입니다. 작가가 고의로 다른 작품을 표절했더라도 판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반면 너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데도 정말 우연히 같은 모티브와 뼈대를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편 시청자들은 TV 드라마에서 어디서 본듯한, 익숙한 장면과 모티브가 자주 반복되는데 딱 잘라 그 드라마가 표절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뭔가 비슷한 느낌인데 싶어 혹시나 했는데 법적으론 아니라니 원래 다들 비슷하게 하는건가 싶기도 합니다.








'베끼기'가 만연할 수 밖에 없는 드라마 제작시장

일단 표절 논란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별그대'나 '최고의 사랑'을 빼고 생각해 봅시다(두 드라마는 아직까지 법정 소송을 준비중일 뿐 판결을 받은 작품이 아닙니다). 우리 나라는 드라마를 저자본으로 재미있게 잘 만듭니다. 드라마 제작비 중 출연료 비중이 너무 높다고 비난하지만 따지고 보면 셋트비 촬영료에 투자하는 거 보다 배우가 비싸야 시청률을 올리기 좋고 몸값 비싼 배우가 연기도 잘 합니다. CG 좀 불량하고 개연성 엉망이라도 보는 사람이 서러울 만큼 잘 울고 배꼽빠지게 잘 웃기는 배우가 시청률을 거머쥡니다.

어떤 장르의 드라마를 만들땐 어떻게 만들어야한다는 흥행 공식이란게 있습니다. 시선을 사로잡는 파격적인 오프닝과 액션이든 첩보극이든 어떤 장르의 드라마를 찍든 달달한 멜로를 꼭 끼워넣어야하고 해피엔딩은 기본입니다. 전체적인 구성으로 봐선 의미가 없는 액션신에 엄청난 공을 들이기도 합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만한 가십과 스캔들도 중요합니다. 소재의 다양성 보다는 어떻게든 시청률을 높일 것이냐에 치중하다 보면 가족극엔 고부갈등이 중년 대상 드라마에는 불륜이 로맨스엔 재벌이 꼭 출연해야합니다.

이렇게 흥행 아이템으로 깔맞춤한 드라마를 양산(!)하면서도 표절 논란이 없으면 그게 신기한 일입니다. 2011년 참신한 전개로 화제를 끌었던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전설의 고향' 구미호 편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첫회에서 임충작가가 창작한 '구미호' 이야기를 요약해 넣은 것은 물론 인간과 부부로 살던 구미호가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전체 이야기의 시작이니 이는 표절 판정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구미호 전설과 드라마로 만들어진 '구미호'는 별개의 창작품이니까요.

최근 종방연에서 KBS 사장이 극찬했다는 '왕가네 식구들' 시청률 지상주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처음 이 기사를 읽었을 때 대선배 작가인 임충에게 '오마쥬'를 알리지 않고 허락받지 않은채 드라마를 제작한 것이 문제 아니었나 생각했습니다. 새파란 후배가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 아닐까 했는데 그 중간과정을 읽어 보니 고질적인 문제점이 보이더군요. 읽은 기사를 그대로 인용해 봅니다. '조사해보니 <구미호:여우누이뎐>은 피디가 작가에게 <전설의 고향> 테이프를 주면서 이것을 참고해서 작성하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출처 : 한겨례신문 - ‘국민 드라마’ 너마저? 끝 모르는 베끼기 논란 )

드라마가 비슷비슷하게 만들어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익숙한 설정이 시청률을 높이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어디서 본거 같다'는 표절 시비가 끊이지 않는 이유 역시 시청률 때문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대중에게 익숙하고 인기가 검증된 아이템이나 소재, 줄거리를 가져다 쓰는 것이 확실히 시청률에는 유리하겠죠. '드라마의 제왕(2012)'에서 보여준 내용대로 '이것 좀 넣어보라'는 방송국이나 흥행공식에 익숙한 제작사의 입김이 반영되면 공장에서 공산품이 톡 튀어나오듯 시청률에 특화된 드라마가 한편 만들어집니다.

이런 저런 드라마의 표절 논란이 나왔을 때 많은 팬들이 신데렐라와 이복형제의 갈등, 복수극과 전래동화는 모두 표절이냐며 반발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우리 나라처럼 재벌과 신데렐라 극을 많이 만드는 나라도 드물고 출생의 비밀을 죽어라 끼워넣는 나라도 드뭅니다. 리메이크도 아닌데 너무 비슷한게 이상한거죠. 일부는 삐뚤어진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채우기 위해서라고 변명하지만 본질은 PPL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결국은 같은 문제를 계속 키우고 기형적으로 막장 드라마가 발전하는 상황을 낳게 된 셈이죠.

Muse - Supermassive Black Hole, 본문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개선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시청자들의 관심이 필요

드라마 제작사들은 표절시비가 붙으면 대개 드라마 인기에 편승하고 싶은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일축합니다만  만화가나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소설가가 판매나 소송으로 받는 저작권료는 많지 않습니다(어떤 로맨스 소설 작가는 이 문제 때문에 표절 논란이 불거진 자신의 소설을 공개 배포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가 미국도 아니고 재판에서 질 경우 수익은 커녕 엄청난 손해배상을 해야할 수 있으니 어지간해서는 소란을 일으켜 돈벌기는 힘듭니다. 저작권 소송으로 엄청난 돈을 받게 된다는 말은 현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구미호 여우누이뎐'의 표절 논란으로 예전에 한국방송작가협회가 발간하는 '방송작가'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작가의 권익을 보호하고 각종 정보를 나누는 그 잡지에는 원고료 체불시 대처법과 저작권 보호 등 작가들을 위한 글, 제가 싫어하는 드라마 작가의 글도 있었습니다. 만화 원작 드라마가 다수 제작된다는 글도 얼핏 본 것같습니다. 방송작가협회도 저작권에 신중한 기관이라 '구미호 여우누이뎐'작가는 1년의 활동정지 처분을 '야왕(2013)'의 작가는 제명 처분을 받은 적이 있지요(관련기사 : '야왕' 작가, 저작권 침해로 '한국방송작가협회' 제명 처분).

한국방송작가협회의 작가 제재. (출처 : 방송작가, 한국방송작가협회)


만화 원작으로 제작된 '야왕'은 중간에 작가가 하차해 부득이하게 교체된 작가가 이미 제작된 내용, 캐릭터를 이어받아 시나리오를 쓴 걸로 알고 있는데 제작사와 협상이 잘 안된 것인지 저작권 침해 진정서를 내게 된 것이라 합니다. 원작에 있는 장면을 그대로 썼는데 표절 판정을 받게 된 것이 시청자 입장에서 황당하게 느껴지더군요. 물론 작품의 기본 뼈대, 일부 캐릭터, 설정을 그대로 썼다는 건 표절 조건에 맞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후속 작가가 그 책임을 지는 건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 말입니다.

비슷비슷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은 완전히 작가들 책임 만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 문제가 골고루 영향을 끼쳐 한쪽으로 편중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겠죠. 그런데 이런 일련의 '막장' 논란과 표절 시비를 볼 때 마다 느끼는 건 작가들을 비롯한 제작자들은 딴세계에서 살다온 사람같다는 것입니다. 글 첫부분에서 언급한 KBS 사장과 문영남 작가의 기쁨은 시청률이 좋은 작품의 기준이라는 생각이 엿보입니다. 공중파의 책임이라던가 막장에 길들여지는 시청자들의 정서적 반발은 개념치 않는 듯합니다.

연말 시상식에서 욕먹은 드라마들이 수상을 하고 좋은 대접을 받는 걸 보면 기가 막히다 못해 광고비와 시청료가 아깝기만 하죠. 마찬가지로 표절 시비에서 보여준 태도 역시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별에서 온 그대' 측은 강경옥 작가에 대한 강경 대응을 선언하며 수많은 비난 기사를 쏟아냈는데 그들의 글을 읽어보면 마치 '일부' 만화팬들이 강경옥 작가에게 동조한다는 듯한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29년 경력의 강경옥 작가를 옹호하고 표절 시비를 곱씹어보는 팬들이 만화팬인 동시에 드라마 시청자라는 사실은 망각하고 있는 셈이죠.

이번 표절 논란에서 누가 이익을 보냐고? 확실한 건 시청자 쪽에선 얻을게 있다는 점이다.


TV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가요를 비롯한 우리 나라 컨텐츠 소비자들 역시 느끼는 것이 있고 본 것이 있습니다. (재미있고 격렬하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국 드라마는 모두 똑같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TV 시청자들이 최근 불거지는 표절 논란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비싼 출연료와 유사한 소재로 제작되는 TV 드라마 제작에 문제가 있다고 조금씩은 다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몇몇 팬들이 '설희'를 읽어보지 않다면서도 한국 창작 순정만화 1.5세대인 강경옥 작가의 주장을 더욱 신뢰하는 이유가 바로 그 부분 때문이겠죠.

우리 나라에도 짝퉁, 무단복제와 해적판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와 달리 법도 강화되고 사례도 생겼지만 아직까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방송작가' 웹진을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은 그들의 저작권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타인의 저작권엔 너무 무딘 것이 아니냐 하는 점, 표절 소송이 있었을 때 만화를 '저급한 문화'로 폄하했던 그들은 시청자들이 시청률에 목매는 드라마 제작자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시청률 타령하는 드라마는 저급하다고 평가받지 않을까요? 이런 논란이 만화팬들의 편가르기로 보였다면 판단착오입니다.

결국 표절 논란의 미래는 시청자들의 날카로운 지적과 창작자들의 반발에 달려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언론과 방송국, 법원이 표절 시비를 모른척하고 제작사의 손을 들어주는 것과 별개로 이런 논란 제기가 늘어날수록 컨텐츠 발전에는 도움이 됩니다. 제작사와 방송국이 표절에 더욱 민감해지고 제작과정에서 사전조사를 의무화하는 일이 강화될수록 시청자들도 만족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죠. 여러모로 조건이 대등한 상황은 아닙니다만 '별그대'와 강경옥 작가의 '설희'가 좋은 선례를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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