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별에서 온 그대' 표절 논란, 강경옥 작가는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다

Shain 2013. 12. 21. 09:34
728x90
반응형
강경옥은 80년대부터 활약해온 만화가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만화를 읽으며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별빛속에'나 '노말시티', '두 사람이다'같은 만화가 유명하죠. 특히 '두 사람이다'는 2007년 영화로 만들어져 만화를 전혀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또 80년대에 출간된 강경옥의 만화책을 몰라도 6년전부터 '설희'를 다음 포털과 잡지 등에 연재했기 때문에 웹툰으로 이 만화작가를 처음 접한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즉 강경옥 작가는 컨텐츠 제작을 전혀 모르는, 생판 신인도 아니고 30년 가까이 활약한 중견 작가란 이야기입니다.

워낙 좋아했던 만화가라서 강경옥 작가의 신작이 발표되면 관심을 보이긴 합니다만 최근 만화책을 사서 보관할 수 있는 공간, 게임 표현대로라면 '인벤'이 없어 '설희'는 아직까지 구매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특히 예전에 연재만화를 보며 안절부절했던 기억 때문에 어서 빨리 완간되서 한세트로 봤으면 좋겠다고 내심 바라는 상태였죠. 덕분에 '설희'의 첫파트 그중에서도 주인공 설희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오게 되는 내용까지만 읽었습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이 표절 논란의 쟁점은 무엇인가.




저는 드라마 '골든타임(2012)'의 팬이라 이성민, 이선균이 나온 '미스코리아'를 선택했고 '별에서 온 그대'는 '미스코리아'를 보고 시간이 남으면 시청하는 드라마입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박지은 작가가 이런 판타지도 쓰는구나 싶어 관심있게 봤고 전지현 목소리가 TV에서는 이렇게 들리는구나 싶어서 눈여겨 봤습니다. 무엇 보다 미드 '뉴 암스테르담(New Amsterdam, 2008)' 또 영화 '맨 프럼 어스(2007)'와 모티브가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맨 프럼 어스'가 불로불사 인간의 과거를 묘사하기 보다 인류의 역사를 지켜본 한 존재가 인간의 종교, 역사의 불합리를 꼬집는 내용이라면 '뉴 암스테르담'은 수백년동안 뉴욕에서 살아온 한 남자가 다양한 인간을 만나 살아가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별에서 온 그대(별그대)'의 도민준(김수현)은 두 주인공과 전형적인 한드 남자주인공을 합쳐놓은 느낌이었죠. 아 이거 많이 익숙한데 싶기도 했고 어디선가 이 모티브를 또 본거 같단 생각도 했습니다.

뭐 같은 각본으로 드라마를 만들어도 연출, 배우에 따라 다른 작품이 나오기 때문에 같은 모티브로 만든 드라마도 작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표절 논란으로 화제가 된 강경옥 작가의 글을 읽고 보니(원문 링크 : 강경옥 작가 블로그 - 진짜로 이게 무슨 일이죠) 이게 모티브만 같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끝까지 읽지 못한 '설희'의 뒷부분에는 이번주에 방송된 '별그대'의 1, 2회와 비슷한 설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설희'는 천천히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구조라는 점이고 '별그대'는 처음부터 터트렸다는 것이죠.









강경옥 작가는 표절 의혹을 제기할 권리가 있다

제가 이번 '별그대' 표절 논란을 보며 실망한 부분은 모티브가 비슷한 건 대수롭지 않다는 식의 반응입니다. 특히 강경옥 작가에게 '관종' 표현을 쓰거나 '인지도 없는 작가가 이번 논란으로 돈 좀 벌려고', '왜 드라마에 해를 끼치느냐', '유명세에 묻어가고 싶냐'는 식의 반응은 짜증을 불러일으키더군요. 드라마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한 중견 작가를 모욕할 권리를 도대체 누가 부여한 것인지 표절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사람 보다 욕부터 내뱉는 자세는 아직 아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많은 드라마팬들이 강경옥 작가에게 반발하지만 '설희'의 강경옥은 30여년 경력의 중견작가다.


많은 분들이 인정하는대로 일단 '별에서 온 그대'와 '설희'는 소재 부분에서 유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전체적인 전개 방식은 달라도 불로불사, 광해군 일지, 외계인, 환생, 혈액(체액), 삼각관계 로맨스, 탑스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신분 세탁, 의뭉스런 여자친구 등 여러 키워드나 설정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장르인데 '별그대'는 로코물이고 '설희'는 죽지도 늙지도 않는 한 여성이 환생한 전생의 연인을 만나고 그 주변 사람들과 얽혀가는 내용이라는 점이죠.

'불로불사' 소재가 흔한 것이니, 최대한 양보해 우연히 '설희'와 '별그대'가 광해군 일기에 적힌 외계인이란 소재를 썼다고 칩시다. 표절의 고의성은 없다고 쳐도 '설희'를 창작해 오랫동안 연재하고 작화를 했던 강경옥 작가의 입장에서는 소재가 비슷한 것만으로도 타격을 입게 됩니다. 우선은 '별그대'라는 드라마가 있는 이상 강경옥 작가가 드라마 계약을 하거나 컨텐츠 제공 계약을 할 때 '신선함'이 사라져 버립니다. 이미 같은 소재의 드라마가 있으면 강경옥이 만든 컨텐츠는 본의 아니게 유사품이 되버린다는 뜻입니다.

'설희'와 '별그대'는 몇가지 설정과 키워드가 일치한다. 우연이라도 강작가로서는 당연한 의혹 제기.


강경옥 작가는 블로그 글에서 밝힌대로 '설희'는 드라마 문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아 미뤄진 일이라는데 '지금 이 상황에 광해군 일지사건으로 400년 간 살아온 '설희'의 이야기를 또 드라마로 만든다면 내가 표절한 게 되나요?'는 작가의 말처럼 강경옥 작가가 이 순간 표절 의혹을 제기하지 않으면 '설희'가 먼저 발표되었음에도 표절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표절 의혹' 제기는 강작가의 당연한 권리이고 창작물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말입니다.

표절 의혹은 법으로 해결보려 하면 상업논리에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강작가도 그 부분을 걱정했구요. 그러나 최소한 내가 먼저 같은 소재로 작품을 냈다는 걸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장르의 유사성'이라는 모 작곡가의 말처럼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표절에 둔감한지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아주 간단한 설정 한가지만 가져다 써도 로열티를 지불하는 시대에 작품을 지키기 위해 표절의혹을 제기한 작가에게 이런 무례한 반응은 안타깝네요.




SBS 이번에도 강경 대응이라고?

올해 방송된 SBS '내 연애의 모든 것' 첫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두까기 인형'이란 별명의 주인공 김수영(신하균)이 진보 보수의 화합을 논하는 토론회에서 한 여학생의 질문에 진보, 보수를 모두 비난하며 독설을 날립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드 '뉴스룸(2012)'의 첫장면은 이 장면과 거의 똑같습니다. 뉴스 앵커인 윌 맥어보이(제프 다니엘스)는 '미국이 왜 위대하냐'고 묻는 여학생의 질문에 대답하며 자신이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를 놓고 따지는 상원의원들에게 짜증내듯 독설을 퍼붓습니다.

하나는 코믹했고 하나는 진지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카메라가 바라보는 방향부터 캐릭터 분위기까지 똑같은 이 장면이 오마쥬냐, 패러디냐 아니면 장면사용을 허락받았는지 알 길이 없으나 확실한 건 SBS는 유난히 이런 표절 시비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방송된 '다섯손가락'만 해도 한차례 표절 시비에 시달린 적이 있고 과거 '49일(2011)' 역시 팬픽과 거의 스토리가 같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죠. 대부분의 경우 SBS는 무시 혹은 강경대응을 발표하며 명예훼손을 운운하거나 소송하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시청자들이 거의 똑같다고 지적한 '내 연애의 모든 것'과 '뉴스룸' 첫장면.


이번 '설희'와 '별에서 온 그대' 표절 논란'이 불거지자 많은 드라마팬들이 박지은 작가가 대사 한두마디는 인터넷에서 퍼온 것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더군요.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이나 '내조의 여왕(2009)'같은 드라마가 풍자를 기반으로 하다 보니 유행하는 촌철살인 대사나 유머를 넣는게 당연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불편한 느낌이 듭니다. 그렇게 유행에 민감한 박지은 작가 쪽에서 웹툰으로 연재된 '설희'를 전혀 본적 없다고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죠.

박지은 작가라면 강경옥 작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박지은 작가의 히트작 '역전의 여왕(2010)'은 전작인 '내조의 여왕'과 전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캐릭터와 구조는 유사합니다. 부부의 갈등과 사랑이라는 소재와 핵심 키워드는 동일하죠. 만약 다른 작가가 우연히 '역전의 여왕'같은 걸 발표한다면 가만히 있을까요? 자신의 창작품인 '내조의 여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표절 의혹과 소송을 제기할 것입니다. SBS는 표절 논란이 있을 때 마다 덮을 게 아니라 이 부분을 인정해야 합니다.

왜 SBS는 표절 논란이 있을 때 마다 이런 식의 반응을 보였을까? 동의할 건 동의하라.


일단 SBS는 인기 만화가의 의혹제기를 지금까지처럼 힘으로 누를게 아니라 소재의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강작가로서는 충분히 의혹을 제기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 동의해야합니다. 무엇 보다 제작사와 강경옥 작가가 작품의 유사성과 권리를 두고 합의보는게 가장 중요하고, 혹시 법적으로 표절 시비를 가리게 된다고 하더라도 강경옥 작가의 권리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앞으로는 다른 드라마,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면 그 점을 명확히 표시했으면 하네요.

동시에 인정해야할 것은 우리 나라가 지나치게 표절에 관대하다는 점입니다. 어떤 점이 어떻게 비슷하냐 외국에서는 소재가 겹칠 경우 어떻게 표절 판단을 하느냐를 따지기 보다 표절을 힘의 문제, 팬덤의 문제로 넘어가려는 태도가 우리 나라 컨텐츠 산업의 발전을 방해합니다. 참고나 인용, 패러디를 왜 허락받고 밝히지 못하나요? 그런 식으로 옹호해서 논란이 사그라든다고 해도 '표절 논란 작품'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배우의 경력에 보탬이 될까요. 어느 쪽으로 해결이 나든 양쪽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겠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