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2013년 드라마 결산[1], '욕먹는' 드라마 시청률을 차지한다

Shain 2013. 12. 2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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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은 유난히 화제의 드라마가 많은 한해였습니다. 공중파 방송의 몰락과 케이블, 종편의 활약이 두드러진 만큼 시청률 경쟁도 그 어느 해 보다 치열했습니다. 고정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다면 막장이라는 오명도 미쳤다는 비난도 감수할 수 있다는 자세로 MBC를 비롯한 많은 방송국이 고전했습니다. 반면 저예산이라는 선입견이 있던 케이블 방송은 공중파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소재와 과감한 연출로 시청자들에게 작품성과 재미 면에서 호평받았죠.

2013년 드라마의 대세는 누가 뭐래도 '막장'입니다. 사극(시대극)이냐 현대극이냐와 상관없이 멜로와 치정극이 우세했고 소재는 부성애, 불륜이 대세였습니다. 아침드라마의 막장 경쟁은 바꿀 수 없는 룰이 되었고 한때 온가족이 모여 함께 드라마를 보는 시간으로 여겨졌던 저녁 시간대, 골든타임의 막장 경쟁은 점입가경입니다. 물론 공중파 방송에서도 눈여겨볼만한 드라마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전반적인 평점은 낮게 줄 수 밖에 없는 한해였습니다.

2013년 '노이즈 마케팅'으로 가장 성공(?)한 드라마 '오로라공주'. 마지막 장면까지 유령이 등장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3년 드라마를 뒤돌아보려 합니다. 진작에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인데 최근 여유롭지 못해 미뤄뒀더니 벌써 12월 24일이네요. 우선, 케이블 드라마와 종편 드라마는 시청하지 않은 관계로 제외한다는 점을 미리 공지합니다(다운로드 서비스로 드라마를 보다 보니 케이블은 시청이 힘들고 종편은 아예 보지 않습니다).

한 드라마가 성공하는 비결에는 여러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방송 시기도 잘 타야하지만 좋은 대본과 훌륭한 연기자, 연출자는 기본 중의 기본이고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만큼 화제성도 중요합니다. 2013년 드라마의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노이즈 마케팅'이죠. 과거에는 이 드라마 정말 재미있다, 잘 만들었다는 입소문이 중요했지만 요즘은 소위 '댓글알바'와 팬클럽의 활약으로 드라마에 대한 호평은 그리 영향력이 없는 듯합니다. 오히려 모두가 비난하는 드라마에 시선이 몰리는 기현상이 일어났죠.

'노이즈 마케팅'의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비난이난 우려든 세상을 시끄럽게 한 드라마가 시청률에서 이긴다는 것입니다. 과잉노출이나 부적절한 스캔들로 화제의 초점이 된 연예인이 종종 노이즈 마케팅 의혹에 시달리는 것도 소문을 통해 인지도를 높였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 시청률 1위를 차지한 드라마 중 다수는 고의든 타의든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했고 비난과 함께 시청률 1위라는 영광을 거머쥐었습니다. 올 한해 동안 '욕먹는' 드라마로 등극한 드라마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SBS 야왕 - 민폐형 복수극의 허무한 결말

사랑하는 주다해(수애)를 공부시키기 위해 호스트바까지 나갔던 하류(권상우). 주다해의 배신으로 사랑도 아이도 잃고 평생 처음 만난 쌍둥이 형까지 잃게 된 하류와 주다해 때문에 동생으로 키웠던 아들 백도훈(유노윤호)을 잃게된 엄마 백도경(김성령). 두 사람은 대통령 영부인이 된 주다해에게 복수하기 위해 여러 피해를 감수하며 최선을 다하지만 주다해의 허술한 작전에 매번 당합니다.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발연기 논란이 있었고 마지막회에 악녀 주다해가 죄값을 치르지 않고 허망하게 죽는 등 비난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민폐형 복수극'의 결말 예상이 틀리지 않아 놀란 기억이 나네요. 자동차까지 폭발하는 등 2013년 최고 스케일의 치정극이란 점은 인정합니다.

'민폐형 복수극'이란 유행어를 만들어낸 '야왕'. 복수하려던 주다해 대신 사고를 당한 하류.



MBC 백년의 유산 - 당할수록 시청률이 올라

보통 이혼한 여성이 주인공인 드라마는 어려움을 헤치고 성공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딱 부러지게 자신을 괴롭히던 상대를 이기고 혼자 힘으로 일어서는 내용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죠. '백년의 유산'도 정신나간 시어머니와 마마보이 남편과 헤어진 민채원(유진)이 일과 사랑에서 성공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매번 예전 시어머니 방영자(박원숙)에게 당하기만 해서 '답답 채원'이란 별명이 붙어버렸죠. '백년의 유산'은 KBS 주말극의 아성을 넘기 힘들었던 MBC에게 시청률 1위를 차지하게 해준 일등공신입니다. 특히 방영자의 짜증나는 행동이 계속될수록 시청률은 올라가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중견연기자들의 연기가 워낙 탁월했기 때문이죠. MBC는 '백년의 유산' 성공으로 욕먹어도 잘 나가는 막장 드라마 공식을 완성합니다.

아니 저 납치감금까지 저지른 방영자씨. 벌받을 사람이 마지막회에 이렇게 착해지셔도 되나요.



KBS 왕가네 식구들 - 가족극 맞아요?

'최고다 이순신'으로 주말극 참패를 당한 KBS는 '왕가네 식구들'로 다시 시청률을 되찾습니다. 조금 있으면 40퍼센트를 돌파할 것이라고 하니 엄청난 수치입니다. 그러나 시청률이 오르면 오를수록 욕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바람피우면서도 남편에게 함부로 대하는 수박(오현경)이나 착하게 일만한 아내를 대접할 줄 모르는 허세달(오만석) 등 보면볼수록 정떨어지는 캐릭터가 다수 등장하기 때문이죠. 무엇 보다 가족들이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주말밤에 함께 보기 거북한 드라마라는 평가가 다수입니다. 혹시 알고 보면 좋은 드라마인데 시청률 올리고 싶어서 비난하는 건 아니겠죠?

보기만 해도 혈압오르는 캐릭터가 다수 등장하는 '왕가네 식구들'. 부담스럽긴 하네요.



MBC 오로라공주 - 황당함을 느껴봐

사실 '오로라공주'와 비슷한 시간대에 방송되는 KBS '루비반지'도 만만치 않은 설정으로 비난대상이 되곤 합니다. 교통사고가 나자 언니인척 성형수술을 하고 언니의 약혼자와 결혼한다는 내용이 듣기만 해도 불편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오로라공주'가 폭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자 '루비반지'의 막장 설정은 거의 거론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출연진 대부분이 중간에 퇴출되고 몇몇은 황당하고 잔인하게 죽음을 맞는 설정이나 두 남자와 함께 사는 여주인공 오로라의 이야기 등 많은 부분이 지적되었지만 시청률은 1위였습니다. 임성한은 드라마 시청자들의 여론에 이례적으로 사과문까지 썼지만 드라마의 성공을 자축했지요. 아무리 더러운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성공(?)한다는 대표 사례를 남긴 드라마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고 떠났는데. 세상에는 이렇게 충격적인 해피엔딩도 있군요.



MBC 오자룡이 간다 - 진용석이 간다?

'오로라공주'의 흥행 덕분에 잊혀진 2013년 상반기 일일드라마 '오자룡이 간다'는 주인공 오자룡(이장우)이 알고 보니 막대한 재산의 상속자라는 '출생의 비밀'과 성공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진용석(진태현)의 이야기가 중심축이 됩니다. 두 사람과 결혼한 나공주(오연서), 나진주(서현진) 자매는 진용석에게 재산을 빼앗길 뻔 하지요. 진용석의 악행은 성실하고 착한 사람을 조롱하는 듯한 느낌 마저 줘서 당하기만 하는 자룡이 짜증난다는 비난도 자주 받았습니다. 혼외자녀까지 있으면서 사기결혼을 한 진용석이나 그를 덮으려고 각종 악행에 동참하는 이기자(이휘향)는 공공의 적 수준이었죠. 어쨌든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용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결국 피를 보고 마무리된 해피엔딩. 진용석은 아이엄마 마리가 죽자 죄값을 치른다.



MBC 기황후 - 역사왜곡이 뭐길래

'기황후'가 역사의 가해자라는 건 왜곡이 아닌 사실입니다. 공녀로 차출되어 황후가 될 때까지는 불쌍한 고려 여인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고려에 공격명력을 내리는 가해자가 되었죠. 실존인물 기황후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실존인물인 고려 충혜왕이 망나니라는 비난을 받자 왕유 가상인물까지 만들어낸 사극을 빙자한 판타지 로맨스 '기황후'. 따지고 보면 실존인물 타환, 타나실리도 그렇지만 원나라 공주의 아들인 고려왕 조차 가상인물이라 '기황후'를 제외하면 고려 역사인지도 의문입니다. '기황후' 역시 원나라 사람으로 살다 죽은 여인이죠. 아무튼 월화 드라마 경쟁작이 없는 까닭인지 입소문이 퍼진 까닭인지 시청률 1위는 고수하고 있습니다. 역사와 전혀 다른, 퓨전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은 나날이 커져가지만 방송사는 실존인물의 이름만 빌린 창작극 제작을 멈추지 않을 것같죠.

실존인물의 이름을 쓰지만 역사와는 다르다. 파괴된 사극의 전형인 '기황후'.




KBS TV소설 삼생이 - 아역들 나올 때가 좋았는데

우리 나라 드라마의 '해피엔딩' 강박증은 굉장하죠. 마치 현실세계 사람들도 부모를 죽인 원수까지 용서하라 강요하는 것같은 느낌입니다. '출생의 비밀'을 갖고 태어난 삼생이가 모진 고난을 헤치고 한의사로 성공하려는 초반부 내용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악역의 자살과 악행을 저지르던 수양딸의 성공은, 권선징악에서 한참 어긋난 결말이라며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됩니다. 당연히 중심이 되어야 할 인물들은 비중이 줄어들고 후반부 진행은 개연성없다는 비난까지 받았죠. 그러나 '상생이'의 시청률은 신기록을 남깁니다. 남들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 아침 시간대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회는 전채널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역시 황당한 전개로 입소문을 타면 시청률에서 승리하는 모양입니다.

악역들까지 모두 살아돌아온 '삼생이'의 해피엔딩. 이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



바야흐로 현대사회는 노이즈 마케팅 전성시대입니다. 악플이 달리든 비난의 대상이 되든 인지도만 띄우면 되고 일단 한번 뜨고 나면 일사천리로 판매율과 시청률이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임성한 작가에게 노이즈 마케팅의 대가라는 웃지 못할 별명을 지어준 것도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늘 1위를 기록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비결이 있다 내지는 작가로서 능력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막장 드라마에 질린 사람들로서는 끔찍한 일이죠.

물론 이런 노이즈 마케팅이나 '막장'이나 '욕먹는' 드라마의 순기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리 만족이나 카타르시스 또는 분풀이 대상으로 좋은(?) 컨텐츠라는 평가도 내릴 수 있습니다. 시대가 하수상하니 더욱 그렇죠. 험하고 지친 일상 생활에는 생각없이 한마디 비난하고 잊어버리는, 그런 소모적인 컨텐츠가 최고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컨텐츠 소비의 주체가 되어야할 시청자가 이렇게 마케팅 작전(?)에 끌려다니기만 한다면 앞으로 원하지 않는 드라마가 더욱 더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길티 플레저, 불량식품은 건강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먹어야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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