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2013년 드라마 결산[2], 공중파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주다

Shain 2013. 12. 2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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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방송사 드라마는 케이블과 종편의 활약이 두드러진 반면 공중파는 시청률 경쟁에서 주춤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위기를 맞은 종편들처럼 공중파 역시 적나라한 시청률 싸움에 예외가 아니었고 전반적으로 드라마의 품질은 낮아졌다고 봅니다. 덕분에 드라마를 자주 보는 저로서도 몇편을 제외하면 건진 드라마가 별로 없습니다. 방송사의 시청률 목매기는 결국 자본 문제입니다. 자본이 투자되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경우도 많아 시청률 경쟁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는 상황이죠.

2013년 한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케이블, 종편의 시청률 전략은 참신함입니다. 기존의 공중파 방송국이 시청률 확보를 위해 영웅형 사극을 복제하듯 찍어내고 소위 '막장'이라 불리는 드라마를 다수 쏟아낸 것에 비해 종편과 케이블은 공중파 방송이 외면한 소재와 흥행할 수 없다고 여겨지던 소재를 TV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9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시대극 '응답하라' 시리즈와 타임슬립 드라마의 절정을 찍은 '나인' 등이 대표적이죠.

2013년 공중파 방송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대표 드라마 '나인'과 '응답하라 1994'




공중파는 시청률을 두고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신선하고 독특한 아이템과 잘 알려진 배우가 출연하는 스타작가의 대본 중 하나를 고르라면 공중파는 당연히 스타작가의 드라마를 고릅니다.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아도 10퍼센트 정도의 시청률은 먹고 들어갑니다. 스타의 출연과 대본이 기본 시청률을 보장한다는 암묵적 룰이 있기 때문이죠. (얍삽하게도) 케이블에서 성공한 소재를 역으로 공중파에 유입시키는 경우는 있습니다. '꽃보다 할배'의 성공이 '마마도'의 탄생을 가져온 것처럼 말이죠.

물론 공중파 방송이 새로운 아이템 발굴에 아예 손놓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제작비 확보를 위해 각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은 물론 각종 단막극 제작을 통해 신인작가를 발굴하고 2014년에는 2013년과 다른 대작을 제작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합니다. 틈나는대로 파일럿, 단편을 방송하며 시청자의 호응을 살피고 호평받은 작가들은 중장편 드라마에 투입합니다. 단편 드라마는 짧다는 면에서 충분히 매력있고 시청 부담이 없습니다.

이런 시청률 전략이 노이즈 마케팅. 스타시스템에 힘입어 시청률이 오른다고 해도 결국 공중파 방송국은 '막장'과 '진부함'의 대명사가 되버립니다. 어떤 면에서 시청자들이 케이블 드라마를 호평하는 것은 기존 공중파 드라마에 질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키는 입장과 도전하는 입장의 차이는 분명 다르지만 공중파는 케이블이 보여준 실험적인 시도를 보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2013년 한해 동안 방송된 공중파 드라마들은 아예 가망이 없었던 걸까요.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드라마를 골라봅니다.








KBS 굿닥터 - 의학과 판타지가 결합된 밝은 드라마

우리 나라 의학 드라마는 일종의 패턴이 있습니다. 환자를 위해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고통을 감수하고 살신성인하는 의사 말이죠. '하얀 거탑(2007)'의 성공과 함께 치열한 권력 싸움에 끼어드는 타입의 의사 캐릭터도 인기를 끌었지만 이제는 그런 아류 캐릭터 만으로 신선한 의학 드라마를 만들어내긴 어렵습니다. '굿닥터'는 기존 패턴을 변형시켜 '서번트 증후군' 증세를 가진 시온(주원)을 만들어냅니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기존 의사캐릭터와 다른 약점을 가졌고 동시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현실 보다는 판타지지만 그중에서도 '굿닥터'는 특히나 비현실적이죠. 특히나 시온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선한 분위기로 돌아서는 모습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공감이 가고 따뜻한 분위기는 마치 주인공 '박시온'이 초능력자로 느껴지게 합니다. '굿닥터'는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의학 판타지라는 점에서 주목할만 합니다. 주원은 자폐 증세가 있는 의사 박시온을 훌륭하게 소화했고 시청률도 만족스러웠습니다.



KBS 천명 - 퓨전 사극 역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사극을 좋아하는 만큼 퓨전사극에 질리는 요즘입니다. '퓨전'이라는 핑계로 고증을 깨는 정도가 지나치기 때문이죠. 그러나 정통사극이 필요한 만큼 퓨전도 필요하다는 점 만큼은 인정합니다. 어떻게 얼마 만큼 퓨전시키느냐가 문제일 뿐이죠. '천명'은 가상인물 최원(이동욱)이 인종(임슬옹)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친구를 죽였단 누명을 쓰고 불치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도망치는 내용입니다. 드라마의 캐릭터와 핵심 내용은 가상이지만 등장하는 실존인물들과 역사적 사실은 거의 훼손된 것이 없습니다(물론 헤어스타일은 지적받을만 했죠).


특히 문정왕후(박지영)와 인종의 대립이 비극으로 끝나고 후대에 명종과 임꺽정(권현상)과의 대립으로 이어짐을 암시한 구성은 역사적 사실에 비춰볼 때 상당히 재미있죠. 드라마 자체는 주인공의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역사는 절대 해피엔딩이 아닌 것을 알기에 묘한 느낌을 주는 드라마이기도 했습니다. 사서 속 인물을 전지전능한 영웅으로 바꿔 없던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 보다 역사 속 한 장면을 들춰내는 시도가 칭찬해줄만 합니다. 시청률은 10퍼센트대로 선전한 편입니다.



SBS 따뜻한 말 한마디 - 불륜 로맨스의 진화

과거에 불륜 드라마는 파격적이란 평가를 자주 받았습니다. 김수현의 '모래성(1988)'같은 드라마는 자극적인 설정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죠. 보다 적나라하게 보다 선정적으로 - '불륜'이란 테마가 극화되면 '잤냐'같은 원색적인 대사가 TV로 유입되기 마련입니다. 불륜 멜로 드라마는 부부와 가장 가까이 있는 솔직한 주제라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인 동시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인해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역시 남편의 바람으로 상처입은 한 여성이 다른 유부남과 바람을 피웠다는 설정으로 출발합니다.


사회적, 도덕적으로 불륜은 미화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드라마는 종종 불륜을 사랑으로 묘사하곤 합니다. 반면 '따뜻한 말 한마디'는 불륜 자체에 초점을 두기 보다 불륜으로 인해 상처받은 아내와 남편의 모습을 중심으로 삼습니다. 특히 남편의 외도로 망가져가는 송미경(김지수)이나 아내의 외도로 이성을 잃는 김성수(이상우)의 모습은 불륜의 본질이 파괴라는 걸 똑똑히 보여주죠. 드라마 속 불륜이 '노이즈 마케팅' 대상이 아닌 섬세한 감성 표현의 소재가 되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주고 싶습니다.



SBS 황금의 제국 - 경제사범들의 전쟁

'황금의 제국'은 대한민국 경제사범들의 속사정이라는 풍자 외에도 촬영장소가 사무실과 최동성(박근형) 회장의 집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 화제가 되곤 했습니다. 2013년에 드라마로 만들어진 그 어떤 아이템 보다 가장 강렬했고 섬뜩한 내용이었죠. 우리 나라의 경제 시스템은 경제사범들의 횡포를 절대 제재할 수 없도록 만들어 있다는 슬픈 현실에 주인공은 바다 속으로 사라져갔죠. 개미들의 힘을 일깨운 드라마 '추적자(2012)'의 후속작이란 면에서 입소문을 탄 드라마이고 장태주 역을 맡은 고수의 연기가 놀라웠습니다.

2013년 가장 섬뜩한 드라마 '황금의 제국' - 이 사람들 모두가 대한민국 경제사범들이다.


시청률 면에서 아쉬운 드라마였지만 우리 나라 정치경제의 이면을 신랄하게 꼬집는 사회성, 드라마 아이템, 주제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적극 응원하고 싶은 드라마입니다. 덧붙여 드라마를 꼭 다양한 세트와 장소에서 찍어야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일부 미드는 협소한 장소에서 인물들이 나누는 대사 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황금의 제국'에 등장한 장소는 많지 않지만 대사 만큼은 충격적이고 의미심장했지요. 주요 등장인물 대부분이 모두 경제사범이라니 그 얼마나 놀랍습니까?



KBS 직장의 신 - 리메이크는 이렇게 만드는거다

80년대 한국 드라마는 창피하게도 카피, 표절 드라마 천지였습니다. 일본 만화나 드라마를 똑같이 베껴온 경우도 많았고 줄거리와 세부설정을 그대로 따서 쓰는 경우도 흔했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인터넷의 발달으로 원작을 찾아내기 쉬워졌고 덕분에 많은 방송사들이 일본 인기 드라마 리메이크를 위해 판권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의 신' 첫회는 한국과 일본의 문화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가져다쓴 설정이 한심했습니다 그러나 '직장의 신'은 대한은행 화재 사건이라는 가상 현실을 바탕으로 한국적인 리메이크를 만들어냅니다.


'직장'이라는 테마에는 필연적으로 사회 풍자가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일본과 우리 나라의 현실이 시대적으로 비슷했다고 해도 한국 사회의 정서와 직장 문제를 꼬집지 못하면 공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주인공 미스김(김혜수)을 통해 '직장의 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비인간적인 직장 문화를 날카롭게 짚어냅니다. 감동을 주는 동시에 드라마의 재미와 유머를 잃지 않는 노련함을 선보이죠. 훌륭한 리메이크란 점을 높게 평가하며 가장 공감하며 본 드라마 중 한편입니다.



KBS 비밀 - 스타 작가 시스템에 대한 반란

시청률이라는 무시무시한 장벽 앞에 연기자들의 연기력은 무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연기 경력이나 무엇으로 봐도 낫지만 지명도가 낮다는 이유로 캐스팅에서 탈락하는 배우도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스타 작가들이 비싼 원고료에도 불구하고 등용되는 건 신인 작가에 비해 확실히 흥행 포인트를 잘 알고 있다는 점 때문이죠. '비밀' 역시 초반 시청률은 확실한 시청률 메이커인 '주군의 태양'에게 밀렸습니다. 우리 나라 드라마에서 홍자매 작가의 로코물 영향력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비밀'은 기존 흥행 공식을 깨버립니다.


남자친구를 대신해 뺑소니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감옥살이를 한 주인공 강유정(황정음)과 유정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조민혁(지성)의 이야기는 그냥 봐도 지리멸렬한 치정극이고 계속 억울한 일을 당하는 여주인공의 눈물바람은 대한민국 시청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우울한 설정입니다. 그러나 뒷 내용을 궁금하게 하는 꼼꼼한 설정과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비밀은 흡입력있는 드라마로 거듭납니다. '말도 안되는 사랑'이라는 테마를 멋있게 살려내지요. 스타작가가 아니라도 성공할 수 있다 - '비밀'은 2013년을 대표하는 드라마 중 한편입니다.



MBC 투윅스 - 2주 간의 추격전을 8주 동안

시청률에서는 고전했지만 '투윅스가' 2013년 방송된 드라마 소재들 중에서 가장 의욕적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딸의 존재도 모르고 살던 삼류 건달 장태산(이준기)이 불치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살인 누명을 벗기 위해 전국으로 도망치는 내용은 드라마에서 흔히 시도하던 소재들과는 많이 다르죠. 딸에 대한 애틋한 부성애를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아무 생각없던 젊은 남자가 책임감있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습니다. 특히 2주 동안 벌어진 일을 열 여섯 편의 드라마로 연출한 시도는 높이 살만합니다.


김소연과 이준기의 연기도 볼만했고 악역을 맡은 조민기와 김혜옥도 굉장했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조금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느와르 보다는 감성을 강조하는 소현경 작가의 특징이 많이 드러난 것으로 생각됩니다. 늘 똑같은 소재로 시청률을 노리는 방송사에서 의외로 이런 드라마도 만들었는데 시청률이 따라오지 못했죠. 다양한 실험과 모험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소재가 탁월했다는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줍니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 두 말이 필요없는 성공작

단순 시청률만 놓고 보자면 '너의 목소리가 들려' 보다 시청률이 잘 나온 드라마도 많습니다. 그러나 올 한해 방송된 어떤 드라마 보다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가 바로 '너목들'이고 드라마판에 가장 영향을 끼친 드라마도 바로 이 드라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초능력을 가진 수하(이종석)와 국선전담 변호사 장혜성(이보영)의 연상연하 러브스토리도 좋았지만 민준국(정웅인)이라는 한 살인자를 중심으로 '변호' 제도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테마가 멋지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너목들'은 3년 동안 방송가에서 선택되지 못했던 비인기 시나리오였다더군요.

별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2013년 최고의 화제작 '너의 목소리가 들려'


미스터리, 법조물, 로코물 등 복합 장르의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열광시킨 건 다른게 아닙니다. 다양한 소재와 적절한 사회성, 캐릭터의 매력이 잘 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시청률 1위 여신으로 떠오른 이보영과 신선한 마스크로 매력을 끌었던 이종석, 윤상현, 이다희 등이 이 드라마를 잘 살린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겠죠. 고정된 시청률 공식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올한해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가장 주목할만한 드라마로 '너목들'을 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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