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이 위화도 회군을 단행할 때 이방원은 신덕왕후와 신의왕후를 이끌고 도망칩니다. 어린 경선공주와 경신공주 그리고 아들인 이방원과 이방석도 함께 도망쳤죠. 양쪽 다 엄청난 인원의 대가족인데 그들을 다 데리고 직접 끌고 간 것입니다. 당시 어린 이방석을 손수 안고 함께 도망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거추장스러운 다른 아이들을 몰래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당시 이방원은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안고 도망칠 때는 들고뛰는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이성계에게 공을 인정받고 싶은 속셈이 있어서였을까요. 그때는 나이 든 신의왕후가 이방원의 옆에 함께 있기는 했습니다. 뭐 당시까지는 어쨌든 가족 간의 정을 인정하더라도 신덕왕후는 이미 그때 가족이 아니었던 것 같죠.
원래 한 집안에서 한쪽이 승승장구하면 나머지 한쪽은 갈등을 겪기 마련입니다. 이방번(오승준)이 집안 갈등 때문에 방석에게 밀려나자 형제인 이방석은 두문불출합니다. 한쪽에선 몰래 '왕자의 난'을 일으키니 어쩌니 하고 있는데 방석의 형제인 방번은 입을 다물고 자기 살 궁리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동생 방석을 시기했다고 해도 좀 어이없는 행동이긴 하죠. 이방석 형제만 이렇게 자기 살길을 찾으며 고민했던 것일까요. 아니 알고 보면 어느 집안에나 그런 일은 있습니다. 신덕왕후의 지지를 받아 무사히 세자가 된 이방석을 제외하면 모두 갈등했죠. 왕실에서는 왕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법이니까요.
신덕왕후 강씨가 정치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은 사실이죠. 안 그랬으면 이방석도 꽤 오래 왕권을 유지했을 텐데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신덕왕후도 죽고 이방석과 이방번도 죽은 후 어쨌든 이방원은 살아있는 형제 중 가장 나이가 어렸고 덕분에 이방과도 좀 더 쉽게 이성계에게 효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방석은 공식적으로 '소도군'이란 이름으로 추증됩니다. 소도군 이방석의 나이 17세에 일어난 일이죠. 이방석이 살아있을 때 침실에서 남모르게 조용히 잠든 이성계는 품에 안긴 제일 어린 아들을 보고 가슴 아파합니다. 눈물 흘리며 슬퍼하지만 죽은 사람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살아있었다면 원한이 맺힐 장면이었죠.
회자되는 말로 신덕왕후(현비)는 살아있을 때 부엉이를 굉장히 무서워했다고 합니다. 너랑 같이 죽겠다며 멱살을 쥐고 원망을 쏟아붓는 신덕왕후의 모습은 정말 살벌해서 없는 원한까지 갚을 기세였죠. 나중에 자식을 한명도 남기지 않고 다 죽였는데 어떻게 원망이 없을까요. 이방원은 생전에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민씨 가문에서 살아남은 인물이 거의 없었을 정도입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죽였는지는 미스터리란 말도 있던데 그렇게 친한 사람들을 빼고 가장 원망했던 인물이 강씨였던 것일까요. 강씨와는 정말 가족처럼 친밀했던 것일까요. 왜 원망하고 서로 미워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세상이 다 아는 원수 사이가 되었습니다.
정안군과 함께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원경왕후(박진희)의 두 딸과 두 아들을 제외한 아이들은 대부분 태어나 마자 죽었습니다. 원래 그 또래 아이들은 많이 죽는 게 아닌가 싶지만 아이를 낳을 때마다 원경왕후는 난산을 했다고 합니다. 모두 4남 4녀를 낳은 것으로 기록된 자식들 중 무려 셋이나 죽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이들이 갑작스레 연달아 죽자 송씨 부인(이응경)은 대책을 내놓습니다. 아이들을 여러 곳에서 나누어 키우기로 한 것이죠. 액운이 낄지도 모르니 아이들을 한 집에서 기르지 않는다는 대책은 묘하게 들어맞았습니다. 전염병이 돌거나 행여 아이들만 감염되는 병이 돌아도 기르는 아이들 중 하나는 안전할 테니까요. 덧붙여 왕자들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 성빈 원씨같은 인물을 동원하기도 했죠.
고민하던 정도전(이광기)은 방석(김진성)에게 이방원(주상욱)에 대해 은근히 떠봅니다. 이방석은 자신을 최영의 군사들이 쫓아올때 업고 다녔다며 좋은 분이라고 대답하지만 이 철없는 왕자의 좋은 사람이란 말은 뭔가 곡해된 말이었습니다. 일단 자신은 누구의 편도 아니라 했던 정도전은 한때 이방원의 편이었기 때문에 굳이 편을 가르지 않았지만 지금은 처지가 약간 달라졌습니다. 그때의 이방원은 철저하게 권력에서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을 잃고 싶지 않은 욕심이 생겼는데 이방석이란 존재가 거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생과 '스승님'보다 아들 쪽으로 기울게 마련이었죠.
민제(김규철)가 중심이 되어 이방원의 사람들을 모읍니다. 그들은 꽤 오랫동안 '정안군'의 사람이 될 사람들을 불러올렸습니다. 오랫동안 이방원을 기다려온 게 민제였죠. 민제는 점잖고 조용하고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지만 민무구(김태한) 형제들과 다르게 사람도 많이 만나고 발이 넓은 인물이었습니다. 박포, 박은, 이숙번(정태우), 하륜(남성진) 같은 인물들이 이방원과 함께 '왕자의 난'을 꾸미는 주체가 되죠. 유명한 인물도 없고 당시 확실한 인재도 없었으나 그들이 일으킨 '왕자의 난'은 적은 인원으로 '성공'한 엄청난 모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정도전의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덕왕후(예지원)의 자리를 정도전이 차지하고, 그 자리를 경쟁하고 응원하는 시이였다면 정도전과 세자는 그렇게까지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정도전이 혼자 '한 팀'이 돼버리는 바람에 더욱 세자 혼자 외롭게 정도전을 지탱하게 된 것이죠. 정안군 이방원은 정몽주의 테러 이후 줄곧 왕따처럼 이성계의 주변을 겉돌고 있지만 그 사이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하고 형식적으로 군대도 움직였습니다. 일단 이방원은 자식으로서 할 만큼 한 것입니다. '네가 언가젠는 세자를 해칠 놈이라는 것을 직감한 것'은 말은 억지에 가깝죠. 이성계는 당시 신덕왕후 때문에 아프기도 했지만 당시 이성계는 나이가 들어 몸이 자주 편치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거죠. 아무리 군사 개편을 해도 이번 싸움은 안타깝게도 정도전이 패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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