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엔 여왕이 많다. 특히나 엘리자베타와 에카테리나가 권력을 쥔 세기에는 4명의 여왕이 있었고, 그 사이에 있던 남자 왕들은 한살짜리 아기이거나 똑똑치 못한 편에 속하는 왕이었다..
어쨌든, 나는 슈발리에를 모두 완주했고..
이것을 팩션이라고 생각하기 보단, 역사를 소재로 가져온.. 판타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그래서 소설과 현실은 이렇게 다르마..하고 자료를 모으는 것이다.
 
*Yelizaveta Petrovna - 엘리자베타 여제

엘리자베스 1세가 미혼을 유지한 까닭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고 또 짐작해서 여러 이야기거리를 만들고 영화를 만들었다. 아버지에게 질려서, 결혼할 수 없는 애인이 있어서, 또는 정치적인 이유로. 많은 이유가 추측되지만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엘리자베타 여제가 생전에 미혼이었던 이유는 그녀의 첫사랑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 여제는 알만한 사람은 아는, 숨겨진 애인이 꽤 많았다.

슈발리에서의 엘리자베타 여제의 등장은 생각 보다는 짧다. 그녀는 과감하고 대담하며 개혁을 위한 동지들을 애인으로 가장 했다고 설정되어 있고, 역사대로 예카테리나에게 관대하다. 또 연회를 즐겼다는 것이 유명하다는 사실대로.. 애니에서도 파티 한번 크게 열더라는.. 여자는 남장, 남자는 여장이라는 테마로 즐기는 파티. 인상적이지..

여자, 그리고 남자
데몽 드 보몽이라는 주인공에게서 나름 심각하고, 평생 그를 떠나지 않는 이 주제..를 어떻게 요리하고 싶었던지 엘리자베타와 에카테리나의 등장은 슈발리에에서 상징적인 면이 있다. 엘리자베타는 물론 급서거하긴 했으나.. 애니에서처럼 표트르3세에 의해 암살당하거나 하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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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의 엘리자베타 여제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러시아어: Елизаве́та Петро́вна, 1709년 12월 18일 - 1762년 1월 5일)는 1741년부터 1761년까지 러시아 제국을 다스린 여제이다. 로마노프 왕조의 6번째 군주로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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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리자베타는 1709년 12월 18일에 모스크바 근처의 콜로멘스코예에서 표트르 1세와 예카테리나 1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정식 부부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생아였던 그녀의 제위에 대한 권리에 대해 정적들로부터 도전받을 소지가 있었다.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지적이며 발랄함과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그녀는 황실 친위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높았으나 표트르 2세와 안나 여제의 통치기간 동안 정치적 역할은 미미했다. 1740년 안나 여제가 서거하자 그녀의 언니의 딸, 즉 조카인 레오폴도브나가 자신의 아들 이반 6세의 섭정을 맡고 옐리자베타를 수녀원으로 추방하겠다고 위협하자, 그녀는 러시아에 대한 프로이센의 내정 간섭 배제와 러시아의 친(親)오스트리아·반(反)프랑스 외교 정책 폐지를 희망하는 귀족들과 뜻을 같이하기로 마음 먹었다.

옐리자베타는 1741년 11월 25일 밤 자신의 동지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어린 황제와 그 어머니 안나, 그리고 그들의 주요 측근들을 체포하고, 다음날 아침 8시에 상트페트르부르크 내 관료들과 주요 고위 성직자들을 소집한 후 자신을 러시아의 황제로 선포하게 했다. 이때 그녀의 나이 33살이었다. 옐리자베타의 등극과 함께 로마노프 왕조의 남자 계보는 끊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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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리자베타는 이전 황제들이 채택했던 내각회의를 폐지하고 아버지 표트르 1세가 만들었던 원로원을 정식으로 재구성했다. 그 밖에도 이와 비슷한 조치들을 취했기 때문에 그녀의 재위 기간은 표트르 1세의 통치 원칙과 전통으로의 복귀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사실상 원로원을 주요 통치 기구로 부활시킨 것은 명목상의 조치였을 뿐, 실제로는 총신들이 나라를 다스렸으며, 표트르 1세가 이루었던 주요 개혁의 일부를 철폐했다.

게다가 표트르 1세처럼 정치에 주력하기보다는 무도회나 연극 등 화려한 궁정 생활과 교회 활동, 서유럽의 멋진 옷 등을 사들이는 데 열중했다. 교육과 예술의 발전을 장려해 러시아 최초의 대학교인 모스크바 대학교와 예술 아카테미를 세웠으며 엄청난 비용을 투자해서 겨울 궁전을 지었다. 대부분의 나랏일을 고문과 총신에게 떠맡겨 궁정 내 음모가 끊이지 않아 효율적인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재정 상태는 악화되었고 지주들은 농민들의 희생을 대가로 폭넓은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대외 적극책을 추진하여, 유럽의 강대국으로서 러시아의 위신을 드높이기도 했다. 그녀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고 있던 알렉세이 베스투제프 류민의 지도로 러시아는 친오스트리아·반프로이센 외교 정책을 강력히 고수했고, 1741년에 러시아의 제위 계승과 관련된 내분을 틈타, 스웨덴이 침공했지만, 20만 명의 대군을 파견해 맞서싸워 핀란드 남부를 병합했으며,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관계를 개선하였다. 말년인 1762년에는 7년 전쟁에서 프로이센에 대항해 베를린을 침공하여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를 패배 직전으로까지 몰아붙여 성공적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동맹국인 프랑스 및 오스트리아와 함께 프로이센을 붕괴시키기 전에 갑작스레 서거하여 제위는 그녀의 조카인 표트르 3세에게 돌아갔다. 후계자 표트르 3세의 친프로이센으로의 정책 전환으로 프로이센은 겨우 위기를 모면해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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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리자베타는 살아 생전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대신 수많은 남성 애인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하지만, 첫사랑의 죽음을 애도하여 평생동안 상복만 입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여동생 안나의 아들 홀슈타인 고트로프 가의 카를 울리히(표트르 3세)를 제위 계승자로 지명했지만, 사이가 나빴다. 하지만 카를의 아내인 예카테리나는 매우 예뻐하여 한번은 폐병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던 예카테리나를 전염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찾아가서 꼭 안아주기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두 사람은 자주 러시아어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내용 출처 :
http://ko.wikipedia.org/
http://en.wikipedia.org/

이미지 출처 :
http://www.britannica.com/eb/art/print?id=10391&articleTypeId=0
http://web.ku.edu/~russcult/visual_index/kuskovo.html
http://great.russian-women.net/Elizabeth_Petrovna.shtml
http://russia.rin.ru/guides_e/45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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