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첫번째, 1980년대 공영방송 정책과 문학 드라마

Shain 2009. 8. 10.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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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뒤엉킨 그 시대의 기억은 길기만 하다, 장문주의보)

마봉춘 방송국, MBC엔 한때 '드라마 왕국'이란 별명이 있었다.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도 화제가 되고 최고의 인기를 끄니 어른들의 채널이 한밤만 되면 MBC로 고정되는 기현상까지 일어났다. 1990년대 초반 SBS란 민간방송이 설립되긴 했지만 방송이 되지 않는 지역에선 여전히 MBC가 최고의 드라마 방송국이었다. 개인적으론 뉴스 보도 역시 MBC 만을 최고로 여겼는데 그 이유는 모 아나운서 때문이다(지금도 많은 팬을 가진 분이다).

80년대에도 최근 드라마들의 문제점으로 지적받는 부분들, 즉 불륜, 트렌디류, 자극적인 소재의 드라마들이 물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낯뜨거운 방송국의 선동적 행태로 비난받는 시대이기도 하고 안방을 차지하는 비현실적인 소재들 때문에 언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나름 멜로물과 이념물은 당시의 코드였으니 시대색이기도 하다(멜로의 자극성을 현대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지만 현대 드라마들이 가질 수 없는 몇가지 실험적 장점들이 80년대 드라마 속에서 발견된다.

지금은 생각도 못할 스타들의 단편, 조연 출연이 가능하던 시절이라 단편 드라마에 최고 유망주가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고(역할에 가장 어울리는 공채 탤렌트를 출연시켰다) 시청율에 약간은 덜 민감해 작품성을 따져볼 만한 드라마를 만들기도 한다. 국가적으로 영상물에 대한 통제는 매우 엄격하던 시절이라 사상, 선정성 검열에 민감했고 자발적인 방송국 내의 삭제(충성)도 종종 볼 수 있던 그런 때였다. 괴작도 다양하지만 인상적인 드라마도 풍요롭던 80년대다.

'짜장면'이란 음식이름이 '외래어표기법' 그리고 '언어순화' 정책에 맞춰 '자장면'으로 변한 독특한 현상이 일어났었다. 이 모종의 '스물스물'은 방송계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광주 민주화 항쟁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언론은 그 파워에 직접 조종을 받는다. 최근엔 드라마 비난글을 보고 드라마 따위에 정치를 따지지 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때는 드라마 자체에 정치가 개입된 경우도 있었고 방송국 운영의 전체 흐름은 군부에 통제되고 있었다.

전두환 군부는 미디어에 몹시 민감했다. 칼라TV의 부활과 프로야구 활성화 등, 정책적으로 국민들을 3S에 빠지게 한 것이라는, 그래서 정치 문외한 국민을 만들어버렸다는 평을 들을 만큼 적극적인 미디어 정책에 앞장섰는데 방송규제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방송을 구성할 컨텐츠, 즉 공익성을 가진 방송 편성에도 많은 관심을 두었다. 전체적인 환경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은게 바로 80년대이기에 드라마가 사회가 모종의 관계가 있었음은 부연할 수 없는 사실이다.

1980년 11월 30일 언론통폐합 정책으로 문을 닫게 된 TBC의 마지막 고별방송. 당시 많은 가수와 진행자들이 눈물을 흘려 징계를 받기도 했다. 황인용의 마지막 라디오 방송 등이 tbci.co.kr에서 올려져 있다.


언론인을 강제 해직시키고, 언론기본법을 제정했으며 보안사에 강제로 언론사 대표를 소환해 이루어졌다는 언론통폐합, 그 이후 각 방송사에 '보도지침'이 하달되고 언론통폐합의 핑계로 이용된 '건전한 언론의 육성과 발전'을 몸소 지시하기에 이른다(언론기본법은 1987년 방송법이 제정되며 폐지되었다). 요즘도 문제가 되고 있듯 정부가 미디어 관련법을 건드리는 건 달성하고 싶은 시커먼 속셈이 있는 경우라고 보면 시쳇말로 '백프로'다.

하여튼 80년대 정부가 속이 뻔히 보이는 언론기본법의 핑계로 '건전 언론'을 들먹였으니 그 결과가 보여야할텐데(삼청교육대를 비롯해 건전사회를 유난히 강조한 그의 별명이 '학살자'라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공익성과 건전함의 표본인 교양 함양을 위해 출현한 류가 KBS이 'TV 문학관', MBC의 '베스트셀러 극장'같은 것들이다. 일반인들이 자주 접하기 힘든 문학물을 드라마로 만들어 널리 보급하고자 하는 취지로 이런 프로그램들이 신설되었다는 것이다.

사회정화를 유독 강요한 이 시절의 건전한 풍경은 재미있다. 몇가지 조치 덕에 인기 가수의 최신가요 테이프들은 가수가 직접 부른 건전가요 한곡씩을 앨범 말미에 꼭 실어야하는 웃지 못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당시에 어렸던 아이들은 이 건전가요를 특정 가수의 숨겨진 트랙 정도로 생각해 따라 부르곤 했었다고 한다. 88 올림픽을 유치한 시절 전후엔 청탁받아 만들어진 유명 가수들의 건전가요가 각종 차트를 점령하기도 한다.

공영방송의 윤리, 도덕, 공익성은 물론 공중파라면 한번쯤 따져봐야할 책임이고 기본 가치관이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죄가를 덮기 위해 그 공익의 책임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모든 오락 프로는 건전하고 유익해야한다'라는 원칙으로 만들어진다면 그 역시 올바르지 않다. 겉으론 교양과 도덕을 강조하는 방송국이 속으론 학살자의 죄에 대해 입다무는 이 현실이 현대사회의 이중성과 미디어 문제를 가져온 건 아닐까.

한번 더 말하지만, 불륜과 선정성을 강조하는 드라마에 대한 비난은 80년대에도 있었다. 당시로선 몹시 끝내주었던 그 드라마들, 그 드라마들이 TV를 점령해가는 동안 공익성과 이념 역시 TV를 장악해나가고 있었으니 돌이켜보면 기묘한 풍경이다. 양쪽 모두를 원하던 정부탓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당시 유행했던, 사회적 파장이 컸던 드라마들은 기억에 대부분 MBC 드라마다. 민간방송이란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던 MBC는 제법 많은 표현방법과 소재를 동원해 드라마를 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인기 드라마들은 일단 검토에서 제외하고(추후 기회가 있을 때 다시 정리해볼까 한다) 실험적인 성격이나 인상적인 내용이 많았던 시리즈부터 회고한다. '사랑과 진실(1984)'같은 인기 주말 드라마가 다시 떠오르는 걸 보니 그 시대 문화의 재평가가 필요한 때인듯하다. 처음으로 정리해 볼 80년대 시리즈는 MBC의 '베스트셀러 극장'이다. 공익성을 위한 애초의 목적을 누가 생각해냈건 간에 이런 앤솔로지 드라마를 좋아한다.


이미지출처, 참고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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