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풍선/有口無言

김대중 세대의 민주주의는 종말을 맞는가?

Shain 2009. 8. 1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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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의 방화와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오늘은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가 국민을 충격에 빠트립니다. 누군가가 보기에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이들의 분노가 나름 공감이 가는 것은 정치권이 보여주는 최근 행보가 근대 한국의 민주주의를 역행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국민 개개인의 힘이 국가를 이룬다는 것은 헌법에도 보장된 기본 원리이건만 국민의 외침을 무시할 수 있는 그들은 어떤 종류의 자만에 빠져 있는 걸까요.

이전에도 적은 적이 있지만, 저의 국가관은 이전 세대와 다르고 제 아래 세대의 국가관은 저와 다를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보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보는 몇몇 젊은 세대에게는 이해받기 힘든 행동으로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광주민주화 항쟁으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고, 전두환에게 명패를 던진 그 격한 분노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요즘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 와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어린 시절 김대중 대통령은 제게도 약간은 이해받기 힘든 인물었습니다. 광주민주화 항쟁에 대한 이야기는 루머로만 떠돌고 언론에서 떠드는 이야기는 대통령 찬양과 반공 이데올로기 뿐이었고 미국은 우방이고 북한은 괴물이던 시절에 대통령에 꿋꿋이 반기를 드는 야당 국회의원이 왜 그런 표정을 짓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바른 말을 하는 정치인이란 생각이 들고 난 이후에도 완전히 마음이 맞았던 것은 아닙니다. 군사 정부를 지내온 김대중 대통령은 내 눈에 부정한 다른 사람들과 지나치게 타협을 잘 하는 인물이었고 파헤쳐보면 저지른 부정이 한두가지쯤은 있는 그런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한때 완벽하게 청렴하거나 깨끗하지도 않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회색주의자 쯤으로 생각했었는 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시대에는 '살아남는 것' 만이 최고의 가치가 된다는 걸 그때는 몰랐고, 그 한 존재가 부정해지기까지 더 많은 부정을 저지른 기반이 되는 무리들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의 생존이 어떤식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그 상징성을 몰랐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그리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왜 대통령 후보까지 지내는 정치인이 사형 선고를 두번이나 받았는 지를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정보 차단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해 보여준 절망과 광장의 집회 불허를 꾸짖는 말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광주민주화항쟁이 이미 과거의 일이므로 그 시대의 기준으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감상주의라고. 또 누군가는 말합니다. 전두환의 군부 독재는 경제 성장을 가져왔고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고. 과거의 기준이 되었던 민주주의의 구현은 이제 알 수도 없고 느껴지지도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취업이 되지 않는 세대의 민주주의는 파워게임의 한 부분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 듯합니다.

어째서 그들이 내세운 2명의 김씨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김씨가 동급으로 매도되어야 합니까? 왜 그들에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라도 지역주의의 상징 밖에 안되는 인물로 폄하되는 걸까요? 삼김의 한 사람이자 전라도의 수장이라는 이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져야할 의의의 절반도 되지 않는 미미한 부분이지만, 그의 생존은 독재의 상징이자 광주민주화항쟁의 상징이지만 그는 왜 삼김의 한 사람으로 밖에 기억되지 않는걸까요?

척박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그 안에서 완전한 민주주의의 표본으로 살 수는 없었지만 그 상징으로 존재한 전 대통령. 민주주의의 이념에 완전히 동감하지 못하는 현세대가 그 말하는 자유를 얻기 위해 윗세대의 희생이 있었음을 체감하지 못하듯 나 역시 상징성이란 부분에 동감하지 못했습니다. 부정하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정치인이 태어나기 위해선 그들이 있어야 했음을 이제서야 깨닫습니다.

그래도 고문으로 인해 다리를 절고 말투까지 어눌해졌다는, 지난 세대의 대통령.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모습을 본 것 만으로 기뻤습니다. 그 다음 대통령은 더욱 반가웠습니다. 그들이 내 가치관과 맞는 사람이냐 보단 그 상징성이 즐거웠습니다. 대통령의 죽음에 이렇게 많은 것을 떠올릴 수 있는 건 이 나라의 역사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평범한 죽음을 맞는 대통령들 보다 무난하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이겠죠.

과거에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극복해야할 과제들이 많았습니다. 독재 청산, 언론 개혁, 부정부패 타파, 지역주의 개선, 인물중심주의 극복 등. 지금도 그 현상은 어떤 의미에서 남겨진 민주주의의 과제라 할 수 있지만 현세대는 그 문제에 대해 많은 부분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고 과거와 연결시키길 거부하기도 합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면 치를 떠는 이유를 느껴본 적 없고 알 지 못하기에 더 자유롭게 노무현과 김대중을 비난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 현상은 어쩌면 제 세대가 김대중의 상징성을 거부하고 비난하던 이유와 비슷한 원리인지 모릅니다. 각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은 그 시대의 다른 문제점을 보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김대중 세대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구현되지 않았고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현재의 문제점들이 누적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느끼지 않고서는 MB 정부가 왜 비난을 받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없고, 현 정치 상황의 개선 방법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을 시크하고 쿨하게 대처하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슬퍼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으면 합니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위기의식을 강조하는 현정부는 왜 비난받아야하는 지 깊이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김대중 세대의 민주주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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