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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여왕 Queenie, 멜 오베른

Shain 2010. 9. 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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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판매용 뮤비, SNSD의 초콜릿 뮤직비디오에서 눈여겨본 건 부채 뿐이다. 깃털 부채로 제법 능숙하게 춤추는 그녀들을 보며 떠오른 미국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비밀의 여왕 Queenie(원제:Queenie, 1987)'이다. 물론 드라마 속 장면은 무척 야한(?) 컨셉의 신비로운 장면인데다 전신을 가리는 상당히 큰 크기의 깃털 부채였다.

더군다나 아주 어릴 적 부모님의 방해를 받아가며 간신히 본 장면이라 실제로 본 화면과 기억된 이미지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천사라도 내려온 듯 아름답던 여배우의 얼굴이 머리 속에 남겨진 것과는 달랐다. 그리고 춤추는 그 장면도 생각 보다 '성인용'은 아니었다. 가장 놀랐던 건 그 드라마가 유명한 실존 인물의 인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어릴 적 인상적으로 봤던 그 장면입니다.

아름다운 여주인공은 숀 코네리의 며느리로도 유명했던 미아 사라(Mia Sara)였고, 출연진 중 한명은 그 유명한 커크 더글라스(Kirk Douglas)였지만, ABC 방송국의 이 드라마는 그리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비난받았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도 드문, 드라마가 된 듯하다.

드라마의 시작은 1931년 영국령 인도이다. 영국인들이 점령하고 생활하던 인도는 당시 독립운동이 한참이었다. 아일랜드계 영국인과 인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주인공 퀴니는 캘커타 사립여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다. 영국인 인도인 양쪽 모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퀴니는 영화배우가 될 꿈을 꾼다.

그녀는 인도인들의 반란으로 아버지와 할머니를 잃고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외삼촌이 학교 친구의 엄마와 바람이 나고 그 친구의 아버지는 용서해달라 찾아간 퀴니를 유린한다. 퀴니는 화가 난 그 아버지가 계단에서 떨어져 죽는 걸 목격하게 된다. 영국으로 도망치고 영국에서 나이트 클럽 스트립댄서 등을 전전하다 영화배우로 성공하게 된다는 내용.

당시 인도점령군인 영국인들은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아일랜드계의 영국인들은 인도 여성이 아니면 결혼할 수가 없었다(아일랜드계 역시 영국 내에서 차별받는 존재였다). 특히 엘리자베스 2세의 동생 마거릿 공주같은 경우 대놓고 인도인들을 무시하는 벌언도 했었다고 하니 영국으로 간 혼혈인들의 삶이 어땠을 지 짐작할 만하다. 퀴니는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혈통을 숨겨버리고 인도에서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가 가정부 행세를 하기도 한다.


한국인들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미아 사라는 완벽한 백인의 얼굴을 갖고 있다. 신비스러운 퀴니를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없었지만 당시 언론은 미국에 진출해 성공한 인도계 배우들도 많은데 백인들에게 '발음 못하는 척(인도식 영어를 쓰느냐)'을 시키고 까만 파운데이션까지 발라가며 시대착오적인 드라마를 찍었어야 했냐고 비난했다 한다. 까만 인도인 역을 했던 엄마와 외삼촌은 피부가 하얀 영국인 배우였다.

이 드라마는 Michael Korda라는 소설가가 쓴 소설을 기반으로 한다. 소설은 Korda의 삼촌(유명 감독 알렉산더 코르다)과 결혼한 여배우(후에 이혼), 멜 오베른(Merle Oberon)이 그 모델이었다. 멜 오베른의 본명이 퀴니 톰슨이고 그녀의 많은 삶이 소설과 일치한다. 물론 친구의 아빠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던가 반란으로 아버지를 잃었다던가 하는 부분과 가정부로 속인 자신의 어머니를 대중들에게 소개한 장면은 픽션이다.

Merle Oberon의 대표작인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1939). 로렌스 올리비에와 함께 주연했다. 로렌스 올리비에와는 그 뒤에도 함께 찍은 작품이 있다.


영국 배우들은 연기파로 유명하고, 그 연기로 헐리우드를 장악하곤 한다. 멜 오베른 역시 그들 중 하나로 개성있는 연기를 펼쳤다. 얼핏 보면 당시 인기배우였던 비비안 리와 흡사한 느낌을 주지만, 연기자로서는 훨씬 폭넓은 캐릭터를 창조할만한 타입이 아닌가 한다. 로렌스 올리비에(Laurence Olivier)와 찍은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1939)'의 캐시와 히드클리프는 여전히 팬층이 두텁다.

드라마에서 혼혈이지만 '독특한 분위기'만 있을 뿐 완벽한 백인처럼 보인다는 설정처럼 멜 오베른 역시 영화나 사진에서는 혼혈이란 점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의 사진이나 영화가 모두 흑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다른 여배우들과 찍은 사진에서는 남들 보다 까만 피부가 도드라진다. 발음도 달랐을테니 혼혈이란 걸 들키지 않기는 몹시 힘들었을 거라 본다. 70년대에(79년 사망) 찍은 사진은 갈색 피부를 확실히 알아볼 수 있다.

1963년에 찍은 멜 오베른의 사진


드라마 속 환경처럼 영국의 시대상이 그리 녹록치 않았기에 그녀의 출신지역은 공식적으로 늘 '오스트레일리아'였다. 인도인과의 혼혈이란 점을 죽을 때까지 숨겼지만, 늘 탄로날 뻔한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인도에서 건너와 함께 사는 어머니를 드라마에서처럼 가정부라 소개했다. 4번의 결혼을 했고, 감독과 결혼해 연기자로 인기를 누렸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던 인생인 듯하다.

일설에 의하면 그녀가 언니라고 알고 있었던(자신의 어머니가 영국계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 낳은 딸) 콘스탄스가 사실은 멜 오베른의 친모일 것이라고도 한다. 콘스탄스의 자녀들이 멜을 만나길 원했지만(자신이 조카가 아니라 오빠란 사실에 놀라서) 거부했다고도 한다. 멜은 살인은 저지르지 않았지만 '출생의 비밀'이 극속에서 자신을 쫓아다닌 형사처럼 평생 따라다닌 굴레였을 것이 분명하다.

유명한 인물의 인생을 묘사한 영화(TV 무비)치고는 그닥 인기를 누리지도 못하고 호평을 받지도 못한 드라마였지만, 아름다운 연기파 배우 멜 오베른의 인생을 떠올리기엔 충분했던 영화가 아닐까 한다. 영국에겐 떨떠름한 기억이고 미국에겐 그리 와닿지 않는 소재였을지도 모른다. 미국, 영국, 인도의 문화적 배경을 전혀 모르는 한국에서는 오히려 더 인기를 끌지 않았을까 싶긴 한데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 퀴니(Queenie)란 이름은 퀸메리(조지 5세의 왕비)가 인도를 방문한 해에(1911) 멜 오베른이 태어났기 때문에 지어준 이름이라 한다. 그 단어에는 다른 뜻도 있다.

이미지 출처, 참고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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