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조광조와 갖바치의 남다른 인연

Shain 2011. 2. 3.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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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에서 천민 계급을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하는 직업이 갖바치입니다. 백정이나 노비와 더불어 나라에 꼭 필요한 일을 했지만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 그중에서도 동물의 사체나 가죽을 다루는 직업은 가장 천하게 여겼던게 조선시대입니다. 갖바치란 가죽을 다뤄 신을 만드는 사람들로 양반들이 폼깨나 잡자면 꼭 필요한 '갖신'의 장인들입니다. 한자어로는 목이 없는 신발을 이르는 '혜(鞋)'와 신을 만드는 사람을 이르는 '화장(靴匠)'을 합쳐 '화혜장'이라 부릅니다.

현대엔 이 기술을 전수한 분이 몇 남지 않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신분의 천하고 귀함을 따질 것 없이 곱디 고운 가죽 꽃신을 보면 작품이란 생각 밖에 들지 않으니 이 아름다운 신발을 짓는 분들을 어째서 천민이라 했는 지 알 길이 없습니다. 모양은 좀 다르지만 이번 명절에도 많은 분들이 예쁜 한복과 꽃신을 신고 고향을 방문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SBS 여인천하 - 정난정과 교류하며 젊은 유생 조광조를 염려하는 갖바치


최근 방영을 앞둔 'MBC 짝패'에서 서현진이 맡은 배역이 갖바치의 딸 '달이'입니다. 제작발표회 기사에 '갖바치'를 '가파치'라고 표기한 기자들이 다수인 걸 보고 갖바치를 모르는 분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자들 조차 아무 생각없이 '가파치'로 따라 적는게 황당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만큼 오래된 단어라 모르는 분이 많단 뜻이겠죠.

기존 사극에선 역사적인 인물인 정난정, 조광조, 임꺽정에 대한 드라마를 찍을 때 마다 의문의 인물 갖바치를 등장시켜 주인공들의 정신적인 스승 역할을 맡게 하기도 하고 천민 지식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역사상 주목을 받은 갖바치가 있었던 건 사실인데 이 갖바치에 대한 설정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때로 궁금해지곤 합니다. 역사란 건 원래 천민에게 관대하지 못한 기록이고 보면 더욱 대단한 인물로 여겨집니다.



드라마 속 갖바치는 허구

봉두난발에 허름한 옷차림, 옷차림 만큼이나 가난한 살림집에서 갖신을 바느질하는 갖바치를 처음 본 건 'MBC 조선왕조오백년' 풍란 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젊은 유학자 조광조(유인촌)를 마주 하고 반상의 구분은 있을 지언정 한치도 밀리지 않는 말솜씨를 자랑하던 갖바치(이정길)의 모습은 조광조 만큼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풍란'의 당파싸움이 국회와 운동권 대학생들이 연상된다는 이유로 급하게 마무리 짓지 않았다면 조광조와 갖바치를 제대로 해석한 드라마가 될 수 있었겠죠.

스님을 찾아가 글을 배워보겠다 조르는 갖바치가 천것이 글을 배워 뭐하냐며 나무람을 받는 모습이나 조광조를 문전박대하는 갖바치, 갖바치와 조광조가 만남을 갖는다는 걸 알고 분노하는 중종과 자순대비, 젊은 유학자에게 자신이 깨달은 이치를 전수하면서도 중종의 부름을 거부하여 홀연히 사라지는 갖바치 등이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조선왕조 연출 전문작가, 신봉승이 연출한 이 갖바치와 조광조의 관계가 이후 'SBS 여인천하'를 비롯한 다른 작품들에서 '갖바치' 캐릭터를 활용하는 기반이 됩니다. '여인천하'에서 정난정(강수연)에게 꽃신을 지어주며 세상사를 이야기하는 갖바치(임혁)은 입바른 젊은이 조광조(차광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정치와 도를 논하게 됩니다. 38세에 요절한 조광조의 가치를 드높이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SBS 임꺽정'에서 임꺽정의 스승으로 등장한 갖바치 양주팔(이정길)


'SBS 임꺽정'에 등장한 갖바치(이정길)는 임꺽정(정흥채)의 정신적 스승으로 도인같은 면모를 보여줍니다. 연산군 시절 귀양살이 중 도망가 목숨을 건진 이장곤(김병세)은 백정의 딸과 결혼합니다. 이장곤은 중종이 등극하고 신원되었으나 자신을 구해준 백정의 딸을 버리지 못해 그녀와의 신분을 초월한 혼인을 허락받고 부인을 정경부인까지 올려줍니다. 이장곤의 지인인 갖바치를 조광조가 소개받아 교류하게 됩니다.

신분이 미천해 등용되지 못한 숨은 인재 역할을 하는 갖바치의 모티브는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과 신봉승의 '풍란'을 통해 대부분의 이야기가 사실인듯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조광조의 시대를 앞선 생각들을 재평가하는 만큼 그가 가까이 지낸 갖바치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시 갖바치는 천민이라 기록이 적고 갖바치가 등장하는 장면은 모두 창작된 것입니다.



픽션으로 부활하는 갖바치

소설 '임꺽정'을 집필한 홍명희는 소설의 완성도를 위해 전국 각지를 떠돌며 자료를 수집했다고 합니다. 임꺽정의 정신적 스승이라 전해지는 칠장사의 병해대사가 갖바치 출신으로 백성을 도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종 때에 죽었던 조광조와 교류하던 갖바치가 임꺽정이 전국을 휩쓸던 명종 시기에 살아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소설 속 캐릭터는 그렇게 창작된 듯 합니다.

또 백정의 딸을 아내로 들여 의리를 지킨 이장곤이 현명한 갖바치를 알고 지낸다 한들 이상할 게 없었겠지요. 갖바치에게 고견을 듣던 이장곤과 조광조는 천민과 의견을 교류한 몇 안되는 인물들이니 '임꺽정'의 이상과 제법 잘 어울리는 양반들입니다. 그렇다면 갖바치에 대한 기록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요.

젊은 유생인 임백령(이민우)과 지내는 갖바치 - SBS 여인천하


아쉽게도 조광조와 갖바치에 대한 사서는 조선 후기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각종 야사를 사서나 기록속에서 발췌해 적은 연려실기술은 '己卯錄(기묘록)'을 출처라며 갖바치와 조광조의 이야기를 아주 짧게 싣고 있습니다. 기묘사화(己卯士禍)에 대한 수많은 기록들 중에 조광조의 인물됨을 기록한 글들은 많아도 갖바치를 높이 쳐준 글은 이 글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네요.

어떤 숨어사는 君子(군자)가 갖바치 속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靜菴(정암)은 그가 어진 사람임을 알고 찾아 가서 學文(학문)을 묻고 때때로 間或(간혹) 함께 자기도 했다.그 사람이 말하기를,“公(공)의 재주는 一代(일대)를 건질 수 있을 것이나, 임금을 만난 後(후)에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只今(지금) 임금이 비록 이름을 取(취)하여 公(공)을 쓰고 있으나, 實(실)은 公(공)을 알지 못한다.萬(만)에 하나 小人(소인)이 離間(이간)질을 하면 公(공)은 반드시 免(면)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公(공)은 벼슬하라고 했으나 應(응)하지 않았고,끝내 그 姓名(성명)도 말하지 않았다. < 己卯錄(기묘록) >
- 연려실기술 제8권, 중종조 고사본말(中宗朝故事本末)  중에서

허균이 홍길동전을 통해 조선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개혁을 꿈꾼 지식인으로 평가된다면 조광조 역시 조선을 뒤집어 놓을 수 있었던 잠재력을 가진 개혁세력이었습니다. 그의 못다이룬 꿈이 아쉬운 건 지금과는 조금 다른 역사를 가져보고 싶은 후세인들의 욕심이겠지요. 조광조의 운명을 정확히 예측한 갖바치는 충분히 이런식으로 부활할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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