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TV에서 실종된 우리들, 사람 이야기

Shain 2011. 2. 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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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리에 방영된 'KBS 추노'에는 유난히 명장면이 많습니다만 저는 주인공 대길(장혁)의 앙숙인 천지호(성동일)의 죽음 장면을 제일로 꼽습니다. 평소에도 유난히 주인공을 괴롭혔고 대길의 뒤를 쫓으며 대길을 죽이려 했던 왈자패 천지호의 죽음에 대길은 저승갈 노자돈까지 입에 물려줍니다. 눈물지으며 통곡하는 대길의 모습을 보며 총부리를 거두는 업복(공형진)의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추노꾼, 도망 노비에 맺힌 원한이 많다며 지독하게 자신을 끌고 돌아온 대길이 어디가 이뻐 살려주었을까요. 말 한마디 다정하게 주고받은 적 없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할 리야 없겠지만 업복은 어쩐지 그를 죽여서는 안될 것 같단 느낌을 받습니다. 뺨에 도망노비란 문신은 없어도 업복과 똑같이 초라한 행색의 천지호나 서럽게 우는 대길은 업복을 직접 괴롭히는 사람이긴 해도 '노비' 제도를 만든 사람은 아닙니다.


동료를 죽인 황철웅(이종혁)에게 복수하기 위해 대길을 구하고 죽은 천지호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얄밉고 더러운 천지호의 발가락을 긁어주고, 동전 물려주고 시신 위에 돌까지 얹어준 대길의 심정도 그닥 다르지 않았을 거라 봅니다. 못된 놈이라 욕하면서도 그의 죽음을 두고 걱정하는 큰 주모, 작은 주모, 방화백, 마의, 최장군, 왕손의 마음 한켠엔 힘없는 천민들만 아는 서글픔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정의 내리기 힘든 그들의 '공감'은 결국 업복의 총부리가 이경식(김응수) 대감과 노비당을 만든 그분(박기웅)에게 겨누게 만듭니다. 비록 그 근원은 잘못됐지만 노비당의 일원으로 세상이 바뀌길 꿈꾸던 업복은 보다 넓은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서글픈 민초들의 응어리를 대변하듯 업복의 총은 시원하게 이경식을 처치합니다. 남들의 이야기를 듣고 시야를 키운다는 건 자신의 성장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여성조선에 다시 등장한 맥도날드 할머니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입니다만 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의 신상은 그닥 관심이 없습니다. 주로 관심가게 읽는 건 범죄를 저질렀지만 주연급 연예인이란 이유로 다른 사람들 보다 보호받거나 형평성에 맞지 않는 가벼운 처분을 받을 때 정도죠. 누가 누구를 사귄다거나 이혼을 했다는 등의 기사는 가십이라기 보단 한 개인의 인생이 담긴 부분이라 별로 신경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조선은 2월호에서 '맥도날드 할머니'와의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사랑받고 살았던 과거, 동생에 대한 서운함 등을 담은 이 기사를 보며 많은 네티즌이 또다시 '된장녀'라며 성토하길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맥도날드 할머니'에 대해 맥도날드 한국 지사장은 할머니에 대한 관심이 '피해'라고 생각치 않는다는 언론 인터뷰를 했지만(이전 포스트 참고, http://shain.tistory.com/561) 민폐라는 이들의 지탄은 끊이지 않습니다.


TV나 언론이 한 개인을 다루는 방식이 이렇게 '가벼운' 만큼 대중들의 그 개인에 대한 접근 방법도 피상적이고 겉도는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현상을 분석하거나 원인을 생각해 봐야할 그런 문제들, 그 부분에 대한 관심은 점차 줄어가고 언론이 부풀려 놓은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도드라집니다.

'맥도날드 할머니'에게 굳이 동정을 보내고 그 인생을 공감하거나 보살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마치 어떤 연예인이 결혼했건 말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사회 문제에 무분별한 폄하나 호기심 보다는 우리 사회에 이런 문제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살펴보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입장과 처지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을 끌어내는 이야기가 아쉬운 요즘입니다.


언론에서 실종된 중요한 이야기

맥도날드 할머니에게 주목하는 기이한 시선도 있지만 MBC의 다큐 '노인들만 사는 마을'처럼 사라져가는 농촌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혹은 이 시간에도 지면에서 실종된 '홍대 미화원'과 '해운대 우신골든스위트 미화원' 이야기를 전해주는 언론도 있습니다. 반면 '최철원'을 비롯한 많은 정재계 인물들이 범죄 사실에도 불구하고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제대로 전해주지 않는 밉상 언론도 있습니다.

언론의 중요한 기능은 수많은 숨겨진 이야기를 끌어내어 사람들의 생각을 자극하는데 있습니다. 시야를 넓히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되도록 많이 꺼내야합니다.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맥도날드 할머니'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오락거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이야기를 짚어줘야합니다. 한편의 좋은 기사는 좋은 작품 만큼이나 큰 영향을 끼칩니다.

길다면 길었던 설명절 동안 어떤 일이 있으셨나요. 남의 이야기를 신경쓸 새 없이 바쁜 연휴였을 것입니다. TV에서 언론에서 전달해주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중 어떤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셨나요. 멋진 드라마들이 늘어나고, 오락거리들이 늘어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늘어날수록 미디어에서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시선,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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