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근초고왕

근초고왕, 반복되는 완월당과 소숙당의 숙명

Shain 2011. 2. 2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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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KBS 근초고왕' 방영 내용은 주인공 부여구(감우성)가 고구려로부터 대방땅을 수성하고 해건(이지훈)에게 어라하의 옥새를 받아 백제 입성하는 과정을 그렸기에 고국원왕 사유(이종원)와 백제 부여화(김지수)가 헤어지는 내용이 등장했습니다. 비류왕(윤승원)을 암살한 대역죄인 해소술(최명길)과 부여찬(이종수), 부여산(김태훈)을 단죄하는 일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해건의 희생으로 위례궁과 해씨는 남당에 당당히 입장할 수 있게 됩니다.

새 왕권이 들어서면 의례히 권력의 '줄서기' 작업이 진행되기 마련이라 진정(김효원)과 진고도(김형일)는 요서에서 나타난 군부인 위홍란(이세은)과 위비랑(정웅인)의 존재가 못마땅하기만 합니다. 왕실 외척으로 당당히 제 1 귀족이 되어야하는데 요서땅의 수적이라는 여자가 제 1왕후가 되겠다 설치고 있습니다. 부여화와 부여구의 애틋한 사랑을 아는 해건은 해건 대로 계왕 부여준(한진희)의 유지에 따라 부여화를 제 1왕후에 세우려하고 있습니다.


백제 대성팔족들은 구태의연한 귀족 중심의 남당을 운영하며 부족 중심의 이익을 도모하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제가 한나라로 거듭나려면 근초고왕은 신중한 혼인정책과 권력 분배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사랑도 인정도 권력도 모두 거머쥐려면 과거에 애달픈 사랑을 포기했듯 속으로 감내해야할 고통이 있다는 뜻이죠. 그걸 아는 지 모르는 지 백제는 시끄럽기만 합니다.

아쉽게도 방영중인 위의 내용, 근초고왕의 즉위 과정은 모두 픽션입니다만 이번 블로깅은 '근초고왕의 부인'이 누구인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검색어 유입이 주말과 오늘 내내 상당하군요) 특별히 작성한 포스트입니다. 극중 근초고왕의 제 1왕후가 되는 인물은 부여화로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다고 합니다. 드라마에서 선택한 제 1왕후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진씨 집안의 딸, 즉 진고도의 딸이나 진승의 여동생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드라마 '근초고왕'에서 구현된 백제 왕실

드라마에서 셋팅한 비류왕과 그의 가족들이 머물던 한성왕궁과 왕실체계는 흔히 우리가 자주 보던 조선 시대(혹은 중국 황실)의 지식을 빌리고 있습니다. 즉 머물고 있는 건물의 주인에 따라 궁, 전, 당의 호칭이 달라집니다. 어라하가 머물던 전체 건물을 뜻하는 '한성왕궁', 부여준이 머물던 '위례궁' 그리고 사당인 '곰제별궁' 등이 '궁'으로 분류됩니다. 첫회에 설명되지 않아 혼선이 많았지만 부여화가 공주인 건 왕과 비등한 대접을 받는 '궁주'의 딸이었기 때문인듯 합니다.

그 한성왕궁 안에 어라하가 머무는 안평전, 남당이 열리는 동명전(조선 시대의 편전 개념이겠죠), 제 1왕후가 거처하는 완월당, 그리고 제 2왕후가 거처하는 소숙당으로 나눠 전각의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 전각의 이름으로 높으신 분의 지칭을 대신 했듯(동궁, 양화당, 취선당 등) 완월당은 제 1왕후를 뜻하는 말이 되고 소숙당은 제 2왕후를 뜻합니다.


중국 사서에 적힌 백제 기록 중 왕의 명칭은 '어라하', 왕비의 호칭으로 기록된 건 '어륙' 뿐이라 전에 적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고대어가 무엇인지는 알 길 없지만 최소한 백제 왕실이 중국이나 조선의 모양새와는 꽤 달랐을 것이란 추측은 가능합니다. 하다 못해 왕릉의 모양이 돌무덤인 것까지 다른 그들이니 말입니다. 덕분에 드라마는 어라하의 배우자를 왕후나 왕비라 부르지 못하고 '태대부인'이라 부릅니다.

거기에 조선시대 중전은 하나, 중국 황실에 황후를 셋까지 밖에 둘 수 없었던 예전 체계를 참고하여 태대부인은 둘까지만 둘 수 있는 것으로 한정한 듯합니다. 현대에 전혀 없는 백제의 품계를 만들다보니 후궁의 존재는 따로 언급할 수 없는 상황 아닐까 싶네요. 드라마는 그 부분에 붙여 제 1왕후, 어라하, 태자의 옷에만 나투 무늬를 그려넣도록 구분하고 있습니다. 제 2왕후는 서열이나 권한에서 밀린다는 뜻인 셈이지요.

근초고왕의 제 1왕후가 누군지 정해지지 않았던 첫방영 때에도 '부여화'를 백제의 제 1왕후로 짐작할 수 있었던 건 해소술과 같은 무늬가 그려진 붉은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삼국사기 대로 이후 또다른 진씨 왕후가 등극할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라면 완월당은 부여화, 소숙당은 위홍란이 될 것입니다.



완월당과 소숙당의 갈등은 숙명

해씨가의 해소술과 진씨가의 진사하(김도연)는 백제에서 제일 강력한 집안의 딸들로 비류왕의 사랑과는 상관없는 슬픈 운명에 휘말려야 했습니다. 계왕의 왕후 해소술과 해여울은 사촌자매들임이었고 해여울은 40년간 지켜온 본처 자리를 빼앗긴 고통에 울먹여야 했습니다. 왕후란 왕의 사랑을 두고 다투는 자리라기 보단 권력의 정점에서 세력들과 후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존재들입니다.

가장 사랑하던 여인을 제 2왕후로 두고 그 아들을 쫓아내야했던 비류왕, 그 고통을 지켜본 부여구가 평생의 연인 부여화를 아내로 들여 숙명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생각했겠지만 그들에겐 웬만한 장부 보다 드센 여걸 위홍란의 존재가 있습니다. 부여구는 백제 입성의 근간이 되었던 위비랑의 동생 위홍란을 버릴 수도 없고 등한시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부여화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는 팔자란 이야기입니다.


부여화는 더군다나 고구려왕 사유를 살려준 일로 죄인의 신분이 되기 직전이고 그녀의 뒤를 받쳐주는 해건은 위례궁을 다시 일으킬 욕심으로 부여화를 부추킬 것이니 평화로운 부부 사이가 되긴 진작에 글렀습니다. 외삼촌 진씨 일문과 위씨 남매도 만만치 않게 갈등을 불러올 것입니다. 결국 대성팔족이 강성한 백제에서 완월당과 소숙당이 평화롭기는 힘든 일인 듯 합니다.

시청자들끼리도 부여화가 백제의 왕후로 적합하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압니다. 재혼은 그렇다쳐도 갈등의 원인이 될 고구려 왕의 부인이었던데다 부여구와 같은 부여씨인데다 부여찬과 부여화는 이종 육촌 사이입니다. 부여구와 족내혼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배역을 맡은 김지수에 대한 반감까지 겹쳐 제 1왕후 등극을 싫다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주몽이 소서노의 헌신을 배신해 백제가 세워졌습니다. 근초고왕이 위홍란의 애정과 뒷받침을 배신한다면 또다른 분열이 자명하고 국조모 소서노를 배신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칫 그들의 '정치'가 내궁 싸움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하고 드라마의 유일한 여전사 위홍란이 왕에게 애정을 보답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다 보니 그분들의 주장이 일면 타당하게 들리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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