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한국 드라마 보기

반짝반짝빛나는, 위기의식없는 한정원 현실감없고 과장되었다

Shain 2011. 8. 1. 11:44
728x90
반응형
이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을 볼 때 마다 작가가 대체 왜 황금란(이유리)을 악녀로 만들어야 하는 지 모르겠다고 하던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타고난 천성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존재이고 삼십이 다 되도록 내 것이라고 믿으며 살던 환경이 바뀌었을 땐 양쪽 모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게 정상인데 돈이 넉넉해진 한쪽은 열등감 때문에 쓸데없이 악녀가 되고 한쪽은 허리가 불편한 좁은 방에서도 여전히 밝고 씩씩하게 살아간다니 주인공 한정원(김현주)의 원톱 주인공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황금란을 바보로 만든 건 아니냐고 하더군요.

입장에 따라서는 한정원이 악역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고졸 출신에 출판사에서 일해본 경험이라곤 조금도 없던 금란이 평소 서점에서 일하다 알게 된 지식으로 출판사에 꼭 필요한 기획안의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고, 평소 독자로서 생각해오던 생각을 바탕으로 자질이 괜찮은 직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계속 성공하던 인생을 살던 한정원이 금란의 성공을 보며 자신이 부족했음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금란은 금란대로 능숙하게 자기 일을 하는 정원을 보며 생계에 바빠 공부할 수 없었던 자신을 탓할 수도 있었습니다.


삼겹살, 치킨, 수박이 최고의 사치인 서민 가정에서 돈걱정 안하고 거침없이 살고 있는 정원을 보면 참 한심하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철이 없다 해야할지 캐릭터가 과장됐다고 해야할지 답답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처지가 바뀌었음에도 명품옷을 입고 다니는 정원같은 성격을 본다면 누구든 니 가정 형편을 생각해 이제부터라도 돈을 모으라고 충고했을 지도 모릅니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지만 황남봉(길용우)의 빚 때문에 그 가족은 조금씩 희생을 합니다. 얄미워 보이는 큰딸 태란(이아현)이 전세금을 빼 아버지의 빚을 갚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백곰(김지영)이 원본 계약서를 가진 한정원을 노린다는 걸 알게된 금란은 일단 신림동 집으로 들어갑니다. 금란의 예상대로 신림동 집 주변에는 백곰이 보낸 깡패가 정원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금란 이모가 제일 좋다는 조카 지원의 반응에 눈물을 흘리고야 마는 금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못나고 게을러서가 아니라며 정원을 나무라는 금란은 이제서야 침착하고 여유있는 원래의 금란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떠맡겨진 생활고를 힘들어도 거부하지 않았던 착한 여자가 금란인데 이제서야 빛을 내는 것 같아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생매장 당할 위기에서도 겁먹지 않는 정원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는 금란의 우울하고 부정적인 가치관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정원의 상대적으로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을 칭찬하곤 합니다. 돈이 없어도 기죽지 않고 처지가 바뀌어도 최선을 다해 상황을 바꾸려 노력하는 정원은 분명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좋은 성격의 여자입니다. 금란의 입장에서는 그 긍정적인 성격이 자신과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란 느낌이 들어 지긋지긋할 수 밖에 없겠지만요. 책임에 짓눌려 있던 금란은 현실감없고 만화책 속 주인공같기만 한 정원을 보며 갑갑해서 한숨을 쉬었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시청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극중 인물을 평가하게 됩니다. 금란이 악행을 하고 있음에도 심정적으로 동정이 가는 이유는 실제로 그런식으로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성격의 사람들이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서도 속으론 얼마나 상처를 받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내 인생'과 '내 미래'에 대한 서글픔에 울분을 터트릴 수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정원을 볼 때는 우리가 그동안 만났던 현실 세계의 '한정원'들이 극중 캐릭터처럼 용감한 캔디이기 보다 세상물정 모르는 '민폐녀'였기에 드라마가 한정원 편이라 지적하는것입니다.


한정원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 자신의 노력으로 아버지 회사에 취직하고 승승장구하는 현실 속 모델은 보통 금란과 같은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종영된 드라마 '49일'의 신지현(남규리)이 착하디 착한 성격이면서도 자신의 절친한 친구 신인정(서지혜)가 자신의 호의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걸 몰라본 청맹과니였던 것처럼, 대부분은 상대방을 잘 파악 못하고 자기 주장만 펼치는 타입이더란 것입니다. 혹은 약아빠지게 자기 만 챙기는 얍삽한 인물형인 경우도 있습니다. 확실한 건 비슷한 경험을 해본 시청자들은 금란과 같은 처지를 더 동정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 포스트에서 금란의 삶은 1차원적인 욕구, 즉 돈이 필요한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면 한정원은 커리어우먼으로서 성공하는 좀 더 높은 차원의 욕구, 혹은 사랑을 이루고 싶은 욕구를 가장 중요시한다고 적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금란이 자신을 며느리감으로 여겨주던 백곰에게 순간 혹했던 것도 그 돈의 가치가 어떤 것인지 평생 뼈저리게 느끼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반면 정원은 신림동으로 간 뒤에도 아버지였던 한지웅(장용)이 빚을 갚아주겠다고 하는 등 돈걱정 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한정원의 캐릭터는 현실적이지 못하다 못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는 편입니다. 선악구분이 확실한 완전무결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모자라 대범(강동호)이 경고하고 금란이 경고했음에도, 백곰이 자신을 노리는 걸 알면서도 낯선 사람에게 서슴없이 가까이 갑니다. 또 생매장당할 뻔한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깡패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등 위기의식이라곤 전혀 없습니다. 단한번도 깡패에게 위협당하고 죽을 뻔한 위기를 겪어본 적이 없으면서도 다치더라도 괜찮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감없는 '밝기만 한 성격'이 지적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황남봉의 도박장에 찾아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우스를 신고하고 판을 뒤엎는 행동은 현실 속에서는 그 자리에서 칼맞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입니다. 원한 때문에 뒤따라 다니면서 해꼬지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는 정원의 당당함과 긍정적인 성격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위해 정원의 성격을 과장되게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금란의 묘사에 비하면 상당한 차별이지요.



정원을 구하러 오는 건 금란

정원을 기죽이려다 실패한 깡패는 그대로 자리를 뜰테고 아무래도 정원을 구하러 오는 사람은 황금란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친구를 사귈 때도 정원처럼 방방 뜨는 타입 보다 금란처럼 차분히 상황을 보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훨씬 더 정이 가고 믿음직하게 보이는 건 아무래도 경험탓이겠죠. 조카를 사랑하고 엄마 이권양(고두심)의 생활고를 자기 일처럼 돌보던 금란이 이제는 자기를 희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백곰에게 가겠다고 거짓말을 하는 걸로 봐서는 정원과 송편(김석훈)을 대신해 뭔가를 하려는 모양입니다.


이 드라마도 이제 완결(54회)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백곰은 진나희(박정수)의 고발이든 금란의 고발이든 처벌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송편집장과의 관계를 위해 백곰의 선처를 애원하는 정원이 이기적이다 싶으면서도 어이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어머니를 처벌하고 어떻게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겠냐 싶겠지만 '지혜의 숲'이란 한 출판사에는 한지웅 가족의 생계 뿐만 아니라 전 직원의 삶이 걸려 있습니다. 그를 흔들었던 사람에 대한 처벌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단 뜻이죠.

자신의 소중함을 알게 된 금란이 그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금란은 정원에 비해 장점이 많은 캐릭터입니다. 정원 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고 침착하게 기다릴 줄도 알던 착한 둘째딸입니다. 이제는 금란도 돈 때문에 고민하지않고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삶이 정원이 만의 것이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 말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