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끔찍한 수양대군의 최후는 억울한 원혼들의 저주?

Shain 2011. 9. 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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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권력이 탐난다지만 자신의 혈연에게 어쩌면 이리 잔인하고 모질게 굴 수 있을까. 명색이 인간의 탈을 쓴 자가 어쩌면 이리 교활하게 사람을 죽이고 괴롭히는 것인지 드라마 '공주의 남자'를 볼 때 마다 현대사의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수양대군(김영철)의 악함에 치를 떨게 됩니다. 어린 왕 단종(노태엽)과 어린 경혜공주(홍수현)을 상대로 수양은 무섭게 왕위를 달라 압박을 합니다. 다음은 나를 죽일 것이냐 묻는 단종에게 금성대군(홍일권)과 경혜공주를 죽이겠다 겁박합니다. 왕족이 왕위를 양위함은 죽음을 의미함에도 단종은 어쩔 수 없이 상왕이 되기로 합니다.

이 드라마의 큰 줄거리가 이세령(문채원)과 김승유(박시후)의 로맨스이기 때문에 몇가지 역사적 사실은 생략했고 허구를 많이 섞었지만(정순왕후의 존재라던가 정종의 정치적인 입지 등) 단종이 양위를 결정하자 온녕군(윤승원), 권람(이대연), 신숙주(이효정), 한명회(이희도) 등과 어울리며 즐거워하는 수양대군의 모습이라던가 현대사의 정치깡패들을 연상시키는 시정잡배들을 두루 거느린 모습, 꼿꼿한 경혜공주가 정종(이민우)과 금성을 살려달라 애원하는 모습은 당시의 분위기를 아주 잘 살려줄만한 연출입니다.

경혜공주는 살아남지만 가족 모두가 죽은 채 살아갑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지금까지 수양에게 죽은 억울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많은 사람들이 단종의 왕위를 지켜주기 위해 애썼지만 단종은 결국 왕위에서 물러나야했습니다. 항렬이 낮은 단종이 윗항렬의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주다니 왕족의 체통이나 위엄이나 전통이나 모두 어염집 모리배 보다 못한 상황이 되버린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쌍한 남매 경혜와 단종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가여워합니다. 그들의 애통한 눈빛에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어제 드라마에서도 누나를 죽일까봐 걱정된 단종이 양위를 선언하는 것처럼 나왔고 실제로도 그 과정은 좀 다르겠지만 단종은 양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렇게 왕위를 공식적으로 '양위'를 받아놓고도 세조는 공신을 선정했다는 점입니다. 무슨 개국공신도 아닌데 공신을 두었다는 건 권력을 찬탈했다는 걸 자인했다는 셈임에도 '내가 왕위에 있게 만든 공신'이라 선정하다니 현대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비웃음이 날만한 행동입니다(어제의 그 기생집 술판 장면이 연출된 건 다 이유가 있는거였죠).

단종을 지켰다는 이유로 금성대군과 정종은 죽습니다.

단종과 세조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백성들에게 회자되며 세조의 악행을 되새겨주었습니다. 한 소년왕이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어가야 했던 슬픈 이야기, 춘원 이광수는 1929년 '단종애사(端宗哀史)'를 연재해 많은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은 적극적으로 표현하진 못했어도 이런 수양대군을 참 많이 욕하고 미워했다고 합니다. 이 드라마 '공주의 남자'의 기본 줄거리가 된 금계필담의 세희공주 이야기도 그 과정에서 탄생한게 아니겠느냐는 말도 있습니다.

경북 성주에 가면 왕족들의 태를 모신 곳이 있는데 수양대군은 즉위 이후 이곳에 그럴듯한 비석을 하나 세웠다고 합니다. 이후 백성들이 그 '가봉비'에 오물을 투척하고 돌을 던져 비석의 비문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수양대군을 찬양하는 낯뜨거운 글이 적혀 있던 그 비석의 글이 지워질 때까지 돌을 던지고 싶은 마음, 인간백정 수양을 혐오하는 그 마음은 현대인과 과거 사람들 모두 같은지 유독 '공주의 남자' 방영이 끝나면 수양대군의 최후를 검색해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람을 죽인 악인이 천벌을 받길 바라는 마음 비슷했나 봅니다.



현덕왕후의 저주를 받았다는 수양대군의 최후

수양대군은 왕이 되기 위해 조카와 조카사위도 죽였지만 자신의 형제도 다섯이나 죽였습니다(물론 그중 셋은 이복형제, 혜빈 양씨의 소생입니다). 문종 임금 역시 독살설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아선 여섯을 죽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들만 죽인게 아니라 왕을 지키려했다는 이유로 충신들까지 학살하고 그 가솔들을 모두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제정신이 아니긴 아니었나 봅니다. 아마 처음엔 권력에 눈이 멀어 직접 아랫사람들을 통솔하다가도 후반기엔 자신 보다 더 열심히 권력 만들기에 기를 쓰는, 일명 '공신'들에게 휘둘려 하고 싶지 않아도 계속 사람들을 죽여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수양대군이 그리 왕위를 빼앗고도 공신이라는 특권층에 시달려 집권 말기에는 왕권이 매우 약화되고 그의 아들 예종 조차 독살설이 있을 정도로 공신의 위세가 대단했다는 글을 썼던 적이 있습니다. 또 세조가 단종을 낳고 곧 죽었던 문종의 아내, 현덕왕후의 저주를 받아 큰아들 의경세자를 잃었다는 풍문에 시달렸단 이야기도 적었을 것입니다. 그 전해오는 이야기의 핵심은 실제로 수양대군이 그런 귀신에게 시달렸다거나 저주를 받았느냐 보다 수양대군이 그런 일을 당하길 바랐던 백성들이 그만큼 많다는데 있습니다.

충성을 다 했다고 했지만 왕과 권력을 나누어 가진 간신들.

백성들의 그런 비난도 비난이지만 세조 자신도 상당히 괴로웠던 듯합니다. 자신이 죽여야 했던 왕족들의 신원회복을 아들에게 부탁하는 등 죽을 때는 '학살자'로 행동하던 그때와는 약간 다른 태도를 취한 것도 사실이구요. 또 말년에 '피부병' 때문에 크나큰 고통을 겪었던 것도 사실인듯합니다. 꿈에서 현덕왕후가 수양을 욕하며 침을 뱉었던 그 자리에 종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 불교에 귀의하고 치료를 위해 좋다는 곳곳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이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세희공주'를 만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오고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났다거나 세조를 구해준 고양이에게 도움을 받았단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것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세조의 피부병은 한센병(나병 혹은 속어로 문둥병)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고 합니다. 상원사에서 발굴된 세조의 어의로 추정되는 적삼엔 피고름 자국이 묻어 있어 세조의 병이 심각했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부처가 세조의 병을 낫게 하고 고양이가 세조를 자객으로부터 구해줬다는 이야기는 백성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퍼트리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같긴 하지만 확실한 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단 것이죠.

상원사에서 발견된 세조의 어의로 추정되는 적삼

정사에 적힌 세조의 최후는 짧고 간략한 편이고(세조가 저주받았단 이야기는 연려실기술 등에 전하는 일종의 야사) 상원사 이야기에서는 세조가 피부병이 나았다고 하지만 1468년 9월 8일 사망한 세조는 상당히 끔찍한 상태로 죽었다는 말이 전해져 옵니다. 그는 죽을 때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꿈에 시달렸고 피부병 때문에 사람들이 가까이 가기를 꺼렸다고 합니다. 죽음을 예감한 상태로 계유정난에 관련된 인물들을 방면하고 그 다음날엔 예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8일 51세의 나이로 죽고 맙니다.

조선 왕실은 세종이나 문종 모두 피부병에 걸린 적이 있다고 하니 예종이나 의경세자(덕종)까지 죽게한 그들의 병이 세조가 받은 천벌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귀신의 저주같은 것은 세상에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구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했던 자책감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아마 죽기 무서웠을 겁니다)가 스스로에게 천벌을 내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공포심 때문에 피부병을 천벌이자 저주라고 믿으며 괴롭게 죽어간 것이리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증오와 원혼의 원망을 한번에 받았던 '수양대군의 최후'는 분명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두 주인공의 애틋하고 인간 한계를 초월한 극적인 사랑 이야기도 참 굉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수양대군이 업보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리 많은 사람을 죽이는지 싶어 혀를 끌끌 차게 됩니다.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는 정종 이민우와 경혜공주 홍수현의 연기 덕분에 전에는 덤덤하게 읽어내려갔던 역사 속 사실이 더욱 비극적인 모습으로 느껴지기도 하구요. 동생 밖에 모르던 경혜공주가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나면 어떻게 살아갈지 동생이 죽은 걸 알면 그 한을 어떻게 감당할지 안타깝기 그지 없네요.

* 물론 음력이긴 하지만 공교롭게도 글을 쓰는 오늘이 9월 8일입니다. 세조 임금이 1468년 죽음을 맞았던 바로 그 날짜입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와 맞물려 학살자 수양대군은 오늘도 편히 잠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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