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승유가 그릇된 복수를 그만둘 수 있었던 이유?

Shain 2011. 9. 1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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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글빙글 웃으며 음흉하게 조카들과 조카사위를 위협하는 수양대군(김영철)은 어린 조카를 상왕이라 부르며 깍듯이 대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운지 알 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수양대군의 막내 아들 보다도 어린 단종(노태엽)은 비록 나이는 어려도 세조의 상왕이며 왕실의 어른입니다. 꼴사납게 항렬이 낮은 조카가 아버지뻘인 숙부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왕실 서열이 엉망진창이 되고 그토록 원하던 지존의 위에 올라서도 조카에게 존대를 해야하는데 이미 그 자체가 백성들에게 놀림거리임을 수양대군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상왕 조차 노산군이라 강등하고 사약을 내려 죽게 만드는 인물이 수양대군이지만 조카를 죽음에 몰아넣으며 내심 궁 안에서 그런 꼴을 안봐도 된다는 점에 안심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성들이 어린 단종의 하야를 슬프게 생각한 것은 소년왕에 대한 동정도 있겠지만 얼굴 한번 안본 어린아이의 고통이 진심으로 슬펐다기 보다 왕을 하늘로 알고 살아가던 시대, 왕이 나라의 원천이고 근간이던 그 시대에 너무도 간단히 그 체제가 바뀌어버렸으니 쉽게 말해 백성들은 사회의 질서가 흔들렸음을 한탄했을 것입니다.


세조를 옹호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업적'을 칭송하며 어린왕을 그대로 두었을 경우 나라에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김종서가 일인지상 만인지하로 단종을 휘어잡았을 것이다 등의 가설을 주장하지만 왕이 어리기 때문에 체제가 전복되는 것이 당연하다면 그 어떤 나라의 전쟁이나 침략, 분쟁의 원인도 모두 정당한 것이 될 것입니다. 왕이 어리든 어리지 않든 백성을 다스리는 자의 책임은 작은 원칙이라도 잘 지키고 체제를 훌륭하게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일 뿐 왕을 대신해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분명 실제 역사 속 김종서(이순재)가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묘사되듯 완벽한 인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쿠데타에 성공한 수양대군과 한명회(이희도), 신숙주(이효정) 등은 윤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왕을 수호하고 국가의 질서를 지키고 싶어했던 김종서 한 사람을 이기지 못합니다. 어떤 업적을 내세우더라도 위정자로서의 그들은 영원히 변절자이자 배신자로 평가받을 것이며 국가 체제를 전복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바로 정치인으로서의 양심, 후손 대대로 영원히 빛날 그 양심을 팔아먹은 사람들이기에 비난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암살자였던 승유가 사육신과 함께 하기로 한 이유

이미 수양대군의 천하가 되고 그가 임금으로 불리며 조선의 왕으로 대접받는 이상 딸 이세령(문채원)이 신면(송종호)과 혼인을 하지 않겠다 하고 또 경혜공주(홍수현)가 유일한 공주라며 자신의 공주 책봉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행동은 의미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실패한 것으로 알려진 사육신들의 단종복위운동이나 처남을 위해 죽어간 정종(이민우)의 뜻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의미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극중 김승유(박시후)처럼 복면을 하고 야음을 틈타 소위 '공신들'이란 인물을 죽이고 다니는 것이 수양대군 무리들에겐 더 아찔한 일이었을 지도 모르죠.

권력과 물리적인 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은 암살자의 칼끝이 자신을 겨누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좀 더 차원이 다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목숨 보다 중요한 것이 자신의 명예입니다. 신숙주처럼 변절하여 수백년 후에도 숙주나물이란 놀림을 받느니 이개(엄효섭)와 사육신들처럼 목숨을 잃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이자 신하의 명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령이 경혜공주에게 사죄하며 자신의 철없음을 뉘우친다 말하는 것도 왕족으로서 가져야할 최소한의 수치심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딸에게 조차 비난받는 아버지 수양대군의 굴욕

문종(정동환)의 딸로 태어난 경혜공주가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와 혼인하여 단종을 지키겠다 마음먹은 것도 한 나라의 공주로 태어나 종묘사직에 도움이 되겠다는, 자신의 책임을 잊지 않은 행동이며 왕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노력입니다. 비록 형과 왕권 다툼을 했다는 평도 받고 있지만 금성대군(홍일권)과 안평대군(이주석), 혜빈 양씨와 한남군 등이 단종을 지키려 노력한 것도 나라의 근간을 지키기 위한 행동입니다. 왕족으로 태어난 자들과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이 최소한 백성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몸소 보여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계유정난으로 아버지를 잃고 가족들을 잃고 아버지의 목이 효시된 모습까지 보아야했던 김승유. 그는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로 증오에 찬 인물이 됩니다. 따뜻하고 아름답게 웃던 미소는 사라지고 눈앞의 먹이를 순식간에 낚아채는 짐승이라도 된 것처럼 사람도 서슴없이 죽이는 암살자가 됩니다. 자신을 속인 연인이라지만 잔인하게 세령을 묶어 끌고갈 때는 마치 전혀 다른 존재가 태어난 것처럼 보였을 정도입니다. 온녕군(윤승원)의 시신에 대호라는 글씨를 피로 써내려가는 승유에게 살생은 가족의 복수이자 삶의 이유였을 것입니다.

둘 중 어떤 것이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는 일인가

그런 그를 따뜻하게 웃는 승유로 만들어준 것, 사육신들과 함께 단종 복위를 꿈꾸는 이개의 제자 승유로 돌려놓은 것은 물론 화살을 대신 맞은 세령의 희생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살생 보다 보다 큰 뜻을 함께 하자는 스승의 충고, 그리고 아버지의 함자를 부끄럽게 하지 않도록 신중히 행동하라는 형수(가득히)의 조언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수양대군과 손잡지 않고 단종을 지키기로 했으며 수양대군이 무엇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난받는지 승유는 그때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아버지 신숙주와 함께 하기로 한 신면에게도 한 인간으로서의 양심이 있습니다. 왕을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정종과 승유라는 친구까지 배신하고 스승에게도 등을 돌려야 하는 그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모두 저버린 평범한 인간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까지 독하고 잔인하면 모든 인지상정을 포기한 채 권력만 바라보고 살 수 있을까. 신면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수양대군과 그 일당이 얼마나 인간말종인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승유는 스승과 형수의 조언으로 자신이 어떻게 그들과 달라야하는지, 명예를 지킨다는 게 무엇인지 다시금 알게 된 것입니다.



다섯 명의 주인공 중 최소한 둘은 죽는다?

이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몇가지 부분에서 두 파트로 각각 분리되어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양대군을 중심으로 한 계유정난과 단종, 경혜공주 이야기는 정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실제 사건이고 세령과 승유, 빙옥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이야기는 창작된 로맨스입니다. 마찬가지로 실제 역사 부분 이야기를 진행할 때는 정통사극의 분위기로 꾸며지지만 세령과 승유가 중심이 될 때는 현대극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덕분에 실제 역사 속 비극 커플인 경혜, 정종 부부의 팬들과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는 엄청난 사랑을 연기하는 세령, 승유 커플의 팬으로 나누어지는 현상까지 있습니다.


경혜, 정종 커플은 두 사람 모두 교통사고로 고통을 참고 연기하는 중이라(홍수현은 갈비뼈가 부러졌고 이민우는 디스크로 '광개토대왕'에서도 하차해야 했습니다) 자꾸 촬영 분량이 줄어드는 느낌인데 정종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고 보니 자꾸만 한량처럼 넉넉하게 웃는 정종의 얼굴이 안쓰럽게 보이기만 하네요. 신면도 마지막 부분 쯤에 등장할 '이시애의 난'에서 누군가를 대신해 죽을 것같은 인물인지라 최소한 다섯 명의 주인공 중 둘은 명을 달리할 사람들입니다. 둘 다 실제 역사에 기록된 사람들이다 보니 죽음을 거스를 수도 없습니다.

덕분의 이야기 마지막에 '경혜공주' 홀로 살아남아 네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느냐, 그것도 아니면 승유와 세령은 민담 속 세희공주처럼 멀리 도망가버리느냐 하는 게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되버렸습니다. 넷 다 죽어버리면 최악의 비극 드라마가 되어버리는 것이라 마지막회가 눈물 바다가 되버릴 것도 같습니다. 워낙 복수가 얽힌 커플이다 보니 서로를 연인으로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거든요. 세령은 그나마 죄지은 자의 딸이니 무조건 굽히면 그만이겠지만 승유 입장에서는 성불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야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여튼 마지막회가 다 되가서야 로맨틱한 장면을 찍는 경혜와 정종, 너무 늦으신 거 아닙니까? 원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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