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경혜공주와 세령 쫓겨난 두 공주의 애닯은 시련

Shain 2011. 9. 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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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년 가까운 과거의 일이라 역사 속 일일 뿐 도무지 현실감이 나지 않던 단종애사,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10대의 어린 왕이 숙부에게 쫓겨났다는 이야기. 드라마의 힘은 이렇게 대단한 것인지 어제도 사람들은 쿠데타로 왕위에 등극한 악당 수양대군의 비참한 최후에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혹자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실감나게 수양대군을 연기하는 배우 김영철이 진심으로 미워지더라 고백합니다. 무력으로 왕권을 이어받은 수양에게 분노를 느끼고 억울하게 밀려나야했던 정통후계자에게 안쓰러움을 느끼는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드라마를 위해 창작된 장면이긴 하지만 소년왕은 정말 비장하게 어보를 내려놓았습니다. 할아버지 세종은 위대한 왕이었고 비록 병약했으나 아버지 문종(정동환)도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적자에게 왕권을 물려주고 싶어했던 그들의 바람이 자신으로 인해 깨져버렸다니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누이 경혜공주(홍수현)와 매부 정종(이민우), 젊은 숙부 금성대군(홍일권)을 살리고 싶어 어린 소년왕 단종(노태엽)이 옥좌에서 내려옵니다. 짐짓 왕위를 사양하는 척 명을 거둬달라 엎드리던 수양대군(김영철)은 그런 조카에게 일말의 동정도 보이지 않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을 죽게 하고 이 자리에 올랐노라'며 왕이 된 심정을 털어놓는 수양대군. 눈앞에 앉아 등극을 축하하는 공신들, 자신의 동지이자 신하들인 한명회(이희도), 신숙주(이효정), 권람(이대연)가 마냥 진정한 친구들인 양 권력에 대한 속마음을 드러내지만 어리석은 수양대군은 권력을 향해 함께 달려온 그들이 자신의 최후의 적이 될 자들임을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굳이 공신들을 죽여 왕 이외의 특권층을 사전에 제거했던 이유도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권력자의 말로는 세상에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는 외로운 길임을 곧 알게 되지 않을까요.

이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전체 24부작이고 이제 반이상이 방영되어 총 8회분, 즉 한달 정도의 방영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수양대군이 세조로 등극하였지만 신하들은 단종을 복위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상왕으로 밀려나 최소한 목숨을 보전하리라 여겼던 단종은 권력을 지키고 싶었던 수양대군의 위협이 되었고 사육신들의 복위 운동이 실패하자 사약을 받는 처지가 됩니다. 날카로운 칼을 쥐고 야음을 틈타 떠도는 김승유(박시후)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이개(엄효섭)와 정종은 승유의 복수를 만류하지만 그들 자신이 단종을 위해 목숨을 걸게 되는군요.



세령의 깨어진 옥가락지와 경혜공주의 은가락지

반지를 주고 받는 것은 서양의 풍습처럼 여겨지지만 반지는 본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약속의 상징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역사에도 꽤 오래전부터 반지를 주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조선 시대에도 혼례를 할 때 가락지를 포함한 예물을 주었으니 늘 몸에 지닐 수 있는 반지는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김승유가 세령(문채원)을 아직 공주로 알고 있던 시절에 아무리 자신과 혼인을 약속한 경혜공주라지만 길거리에서 산 가락지를 연서와 함께 보낸 건 무척 대담한 행동이랄 수 있겠습니다. '당신은 나의 연인'이란 뜻으로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세령은 이후 김승유가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경혜공주에게 그 가락지를 돌려받습니다. 함께 그네를 타고 말을 달리고 정을 나누었던 그 순간이 모두 담긴 그 가락지를 목숨 보다 소중히 여기며 가락지가 김승유인 듯 그리워하는 연인이 생각날 때 마다 어루어만집니다. 수양대군과 김종서(이순재)가 서로의 원수가 된 순간부터 이미 두 사람의 인연은 산산조각이 난 것인지도 몰라도 과거 함께 했던 그들의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기에 무엇 보다 소중히 합니다. 물론 복수에 불타오르는 승유는 그 가락지를 깨뜨려버리지만요.


정종 역시 한쌍의 은가락지를 경혜공주에게 주었습니다. 병중에 계시던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주겠다며 절대 팔지 않았다는 그 물건이 당시 경혜공주에게는 약간 하찮게 느껴졌을 지도 모릅니다. 문종이 죽고 천지간에 믿을 사람이라곤 서로 밖에 없는 남매, 단종의 안위에 정신이 팔려 인륜지대사라는 혼인을 했음에도 남편 정종은 관심 밖이었던 경혜공주였으니 생일선물로 들고 온 은가락지가 그닥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육신의 사건이 일어나고 금성대군과 정종이 함께 유배를 가면 가락지의 의미가 달라질 것입니다.

자신의 탄생일이 계유정란이 일어난 바로 그날이고 부부의 비극이 시작된 바로 그날이란 걸 깨닫게 된다면 그 가락지는 특별해질 수 밖에 없겠지요. 꼿꼿하고 도도하던 공주가 남편과 금성을 살리기 위해 수양대군 앞에 무릎을 꿇고 애원하였는데 수양대군을 죽이려 무사를 끌고 세령의 혼인식에 가던 그날도 거사가 성공하길 빌었음과 동시에 남편이 무사하기만 빌었는데. 자신도 모르는새 따뜻하고 의젓한 정종이 이미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왔음을 모르는 공주는 은가락지를 바라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반지(斑指)의 본래 의미는 본래 한쌍으로 끼게 되어 있는 가락지를 나눠 한개만 끼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흔히 여성이 장식물로 쓰던 가락지는 똑같은 모양의 고리가 한쌍입니다. 마치 연인이 함께 있는 모습처럼 같은 고리 두 개를 단아하게 끼고 있는 모습은 화려하지는 않아도 은은한 멋을 전해주곤 합니다. 한복이 잘 어울리는 여성들이 가락지를 낀 모습은 참 '곱다'는 느낌을 줍니다. 최근 결혼식에서 사용하는 한개짜리 화려한 보석 반지 보다 한쌍으로 끼는 가락지가 훨씬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커플링은 각자가 나눠끼지만 세령과 승유, 경혜와 정종 커플이 서로의 연인에게 준 가락지는 늘 한 쌍이 함께 있습니다. 물론 유령커플의 반지는 한짝이 깨어져 비극적이고 슬픈 그들의 사랑을 예감하게 하지만 정종과 경혜의 은가락지는 아직 함께 있습니다. 남편을 유배보내고 남은 한평생을 그 뒤를 쫓으며 그리워하게 될 경혜공주의 슬픈 운명과 공주가 되어야할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승유의 뒤를 쫓으며 살게될 세령의 남은 인생. 한쌍의 가락지처럼 두 쌍의 연인이 함께 할 날이 있을지 정말 가시밭길 험난한 사랑의 여정입니다.



세령의 도피 행각이 시작될 시점

아무리 왕권이 강력하다 한들 공주로 책봉된 여성이 폐서인되었다는 기록을 실록에서 완전히 삭제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 세령이 장녀라면 극중 의경세자 보다 나이가 위였을 것이니 수양대군이 입궐할 즈음엔 스무살이 넘었다는 뜻입니다. 그 나이까지 공주가 혼례도 치르지 않은채 궁중에 있었다는 것도 조금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만약 금계필담에 적힌 '세희공주'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면 수양대군의 딸은 공주 책봉을 받기 전에 도망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말하자면 드라마 제목이 '공주의 남자'이고 또 전하는 이야기 속의 세희공주도 공주라 불리지만 실제 공주의 첩지를 받지는 못하지 않나 하는 이야기입니다. 극중 세령의 주장대로 세령이 절대 '수치스런' 공주 첩지도 받지 않을 거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정희왕후 윤씨(김서라)의 감시를 피해 김승유가 있는 마포나루로 달려간 세령이 그대로 수양대군에게 돌아갈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이니 이대로 김승유와 세령의 도피행각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어보이네요. 세령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드는 그 순간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라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밝고 아름답던 김승유가 복수의 화신이 되었다 염려하고 만류합니다. 세령과 사랑을 나누던 시절의 빛나던 김승유가 사라짐을 슬퍼하지 않을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승유 역시 사랑하던 세령이 자신을 대신해 활을 맞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고 석주(김뢰하)의 말처럼 멀리 도망가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물론 한 나라의 공주가 사라졌으니 신면(송종호)이 그 뒤를 쫓겠지만 차라리 둘에겐 그게 행복일지도 모릅니다. '진짜 공주'였지만 첩지를 박탈당한 채 살게되는 경혜공주의 삶, 그 사랑이야기도 눈물나지만 이제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게될 승유와 세령이 어떻게 원한을 극복할지 다음주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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