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수양대군이 사육신에게 더욱 광분하고 잔인했던 이유

Shain 2011. 9. 2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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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KBS에서 방영되던 드라마 중 '사육신'이 있습니다. 총 24부작의 이 드라마는 KBS에서 총 제작 기획과 대본 등을 맡고 북한에서 직접 배우를 섭외, 제작한 조금은 특별한 드라마였습니다. 출연 배우들도 북한 배우들이라 낯설었지만 당시 국내에서 유행하던 퓨전사극과도 달라 별나단 느낌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저 역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못했고 시청률도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충신불사이군(忠臣 不事二君)' 즉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사육신들의 가치관이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야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박팽년, 유응부 등의 여섯 신하들, 그들 사육신의 절개를 볼 수 있는 에피소드와 한시들이 아직까지 남아 전하고 있습니다. 어제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사육신들이 수양대군(김영철) 앞에서 단종(노태엽)을 '전하'라 부르며 우리들에게 왕은 '단종' 뿐이라 야유하는 모습처럼 그들의 성정은 그 누구 보다도 대쪽같았다고 합니다. 사육신들과 함께 하며 수양대군을 비난한 것으로 연출된 정종(이민우) 역시 시기는 좀 다르지만 비슷하게 단종에 대한 충심을 표현하며 고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모진 고문에도 수양을 왕이라 부르지 않는 사람들

드라마와는 조금 다르지만 박팽년이 지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수양대군을 약올렸다는 일화는 실제로 전해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는 나를 '전하'라 부르면 살려주겠다며 회유책을 쓰는 수양대군에게 나는 나으리에게 한번도 '신하(臣)'라 칭한 적이 없고 장계에도 '신(臣)' 대신 유사한 한자 '거(巨)'를 써서 올렸다며 비웃었다고 합니다. 오로지 단종에게만 신하였을 뿐 강제로 왕위를 차지한 수양대군은 왕이 될 수 없다는 그의 말은 수양대군의 자존심을 몹시도 자극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신하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왕이라니 엄청난 스트레스일 수 밖에 없었겠지요.

'가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夜光明月)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변(變)할줄이 이시랴' 박팽년이 남긴 한편의 시처럼 그들은 변함없는 마음으로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극중 신면(송종호)의 울부짖음처럼 나약한 한 인간이 목숨을 걸 정도의 충성을 바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비록 연출된 장면이지만 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자처한 김승유(박시후)에게 살지 않고 죽겠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이개(엄효섭)의 충심은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경지인 지도 모릅니다.

정종을 위해 무릎 굻는 경혜공주와 절연을 선언한 세령

드라마 속에서 수양대군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한명회(이희도)와 권람(이대연), 신숙주(이효정) 등은 사육신의 처벌을 두고 자신들이 또 한번의 위기를 넘겼음을 자축했지만 그들은 죽어버린 김종서(이순재)와 사육신을 영원히 뛰어넘지 못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사육신들의 말처럼 그들의 죽음은 역사에 기록되어 수양대군의 악행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수양대군은 이미 왕이었지만 경혜공주(홍수현), 금성대군(홍일권)을 비롯한 가족들이 그들을 외면했고 가장 귀히 여긴 딸 세령(문채원) 조차 그와 절연하겠다고 합니다.

감히 수양대군의 암살을 시도한 그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성공하지 못하리란 걸 알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수양대군은 그렇게 충절을 지킨 사육신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분노하였고 유례없이 잔인하게 후손들의 씨를 말렸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세종 시절부터 집현전에서 수양대군과 함께 하고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이 되기 위해 가족들을 죽이고 조카까지 쫓아냈지만 그래도 친구들 만은 자신의 야망을 이해해주길 바랐을텐데 그들은 수양대군을 끝까지 왕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수양대군이 정신적으로 몰락하기 시작한 건 그때문이지 않을까요.



모두에게 외면당하는 수양대군의 눈물

사육신들은 1456년 수양대군의 명으로 처참한 형벌을 받습니다. 아무리 암살을 시도했지만 그냥 죽이면 될 것을 찢어죽이거나 잘라 죽일 것까지는 없었는데 지독한 고문을 당한 몸들에게 세조는 악독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수양대군은 1417년 생으로 당시 마흔을 앞둔 나이였고 그들 중 태어난 시기가 기록된 성삼문은 1418년생, 이개와 박팽년은 1417년생으로 수양대군과 친구라 보아도 좋을 또래의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집현전에서 근무할 동안 수양대군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신숙주 역시 1417년생으로 수양대군과 동갑입니다.

세종은 집권 말기에 건강이 좋지 못하여 아들 문종을 시켜 정사를 돌보게 합니다. 그런데 장남 문종 역시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고 왕을 대신에 집무했던 까닭에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고 맙니다. 세종은 그런 아들에게만 일을 시킬 수 없어 권력 관계를 잘 조율하여 집현전을 비롯한 몇가지 업무는 수양대군에게 일임합니다. 왕족이 정사에 관여하던 시절이라 아들을 시켜 왕권을 보조하게 하는 일이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것이겠죠. 세종에게 왕족이란 왕을 보필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도와주는 인재 쯤으로 생각이 되었던가 봅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쩌라고 이리 가시는 지, 승유에게 웃는 이개와 울부짖는 정종

세종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역시 아들 문종의 건강이 염려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자신이 살아 있으니 어떻게든 왕권은 유지해야겠고 문종을 시켜 이런 저런 필요한 일을 하게 했다고 치지만 장남을 너무 혹사시켜 어린 손자에게 왕위도 물려주기전에 죽게 생겼습니다. 세종은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문종 곁에 두게 하고 장남으로 이어지는 왕위를 보호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누구 한사람에게 그 일을 맡겨서는 안되니 김종서를 비롯한 강력한 의지를 가진 신하와 수양대군을 왼팔과 오른팔로 두게 했던 것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양대군이 외교와 정치 일에 익숙해지고 집현전의 젊은 피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며 왕실과 집현전을 조율하다 보니 분명 집현전 사육신들과 수양대군은 보통 친분은 아니었을 거라 봅니다. 신숙주가 변절자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수양대군에게 넘어간 건 이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의 인정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죠. 대신 신숙주 등을 제외한 집현전 학자들은 평생 공부만 했던 유학자들이기에 대부분 올곧고 바른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고 수양대군이 권신을 처벌함은 나서서 비난하지 못해도 왕위 찬탈 만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딸에게 조차 외면당한 수양대군의 눈물

자신이 젊을 때부터 가까이 지낸 사람들이라 수양대군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잘해주려 했던 것같습니다. '전하'라 부르면 살려주겠다며 했다는 이야기는 전후사정을 볼 때 아마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꼿꼿한 그들은 수양을 왕으로 부르기 보다 죽기를 자처했고 수양대군은 배신감에 훨씬 더 잔혹한 형벌을 내렸던 것이 아닐까요. 거열형이란 형벌도 형벌이지만 명색이 유학자들인데 자손이 없어 제사밥 조차 못받는 처지로 만들다니 무척이나 잔인한 복수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설에는 직계가 모두 죽어버려 박팽년의 후손이 간신히 살아남아 오래도록 사육신들의 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지난 번 '수양대군의 최후'가 몹시 끔찍했다는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원래 세종이나 문종 모두 피부병을 앓아 고통을 받아온 건 사실입니다. 한 다큐에서 방영된 내용으론 상원사에서 발견된 수양대군의 것으로 추정되는 적삼을 분석해보니 세조는 아무래도 스트레스성 피부병, 종양이 생기는 질병을 앓았던 것 같다고 합니다. 하늘이 내린 천벌은 아닐지 몰라도 주변 사람들이 하나 하나 자신을 외면하는 불행한 처지가 되고 보니 가족도 친구도 모두 죽여야했던 자신에게 스스로에게 천벌을 내린 것 같기도 합니다.

가끔 현대인들은 '의로운 죽음'의 가치를 잘 모르고 사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혹자는 단종이 아무힘없는 소년왕이었던 자체가 죄라 이야기합니다. 또 '성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완벽하지는 않기에 그들의 죽음을 현대적으로 재평가받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양대군의 학살에 맞서, 억울한 죽음이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무력 쿠데타에 맞서 그것이 옳치 않다 비난하는 용기, 끝까지 바르지 않음을 지적할 수 있는 그 기개는 현대인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누군가 죽음으로 학살을 비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끝까지 무력으로 권력을 차지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속이지만 정말 안타깝고 아쉬운 죽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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