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트렌스젠더 최한빛 캐스팅은 사방지 때문인가?

Shain 2011. 9. 2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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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은 본래 정사를 다룬 역사서로 딱딱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대인들은 상상하기 힘든 각종 이야기를 담고 있는 흥미로운 책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안타깝게 죽어간 문종(정동환)의 아들 단종이 어릴 수 밖에 없던 사연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수양대군(김영철)이 동생이고 문종이 형임에도 수양대군의 아이들 보다 문종의 아이들이 나이가 어립니다. 그건 문종이 워낙 책을 좋아해 29년 동안 왕세자 자리에 있으며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종의 두 아내가 쫓겨났던 때문이기도 합니다.

문종은 남자를 유혹하는 요망한(?) 사술을 부리다 쫓겨난 첫번째 아내 휘빈 김씨, 궁녀 소쌍과 동성애를 즐기다 쫓겨난 사나운 순빈 봉씨 이 두 아내에게 자손을 보지 못하고 당시 후궁이었던 권씨(훗날의 현덕왕후)에게서만 아이를 얻게 되었습니다. 조선왕실의 이런 스캔들은 종종 벌어지는 일로 태종의 이복형제였던 세자 방석, 그 아내였던 현빈 유씨가 내시와 사통하다 쫓겨난 일도 있었습니다. 지엄한 왕실에서 또 유교 국가에서 그런 일은 금기시 되는게 당연했지만 조선 초기는 나름 자유분방했던 고려 때의 분위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시대였죠.

문종의 딸과 아들은 왜 그렇게 어렸을까


예전 드라마 '왕과 나'에서 묘사된 어우동의 이야기처럼 조선 초기의 스캔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가 몸소 '내훈'이란 것을 써 여성들의 몸가짐을 단속했다고 하는데 그러든지 말든지 어우동은 왕실 종친 태강수에게 시집갔으면서 상대를 가리지 않고 관계를 가지고 연인의 몸에 문신을 새기는 등 입에 담지 못할 각종 연애를 즐깁니다. 조정에서까지 거론된 그녀는 유교 사회에서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사형당할 수 밖에 없는 없었을 것입니다.

'공주의 남자'에 등장하는 수양대군도 이런 불륜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는 후궁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덕원군, 창원군을 낳은 근빈 박씨(박팽년의 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이고 하나는 비첩이었던 폐소용 박씨입니다. 수양이 왕이 되자 박씨는 종의 신분에서 후궁이 되는데 내시와 불륜을 저질러 한번 용서를 받았음에도 수양대군의 동생인 임영대군의 아들에게 연애편지를 보내다 발각되어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사람을 여럿죽인 무서운 수양대군의 첩치고는 대담하다 싶기도 합니다.

우리 부부도 첩실 때문에 애 좀 먹었지


수양대군의 친형제들 중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은 사약을 받고 죽지만 막내 동생인 영응대군은 세종과 문종, 세조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았던 특별한 동생이었습니다. 이 영응대군도 첫번째 부인을 아버지 세종이 음란하다해서 내쳤다가 극중 정종(이민우)의 누이와 혼인합니다. 세조 등극 이후에 첫째 부인을 잊지 못해 다시 맞아들인 특이한 전력을 가진 왕자입니다. 굉장한 연애를 한 셈이지요. 그러나 이 모든 스캔들을 다 통틀어도 조선 초기를 뒤흔들던 '사방지' 사건 만큼 시끄럽고 말많던 사건은 드뭅니다. 그게 또 묘하게 극중 무영으로 등장하는 '최한빛'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자로 자랐으면서도 여자와 사랑에 빠진 사방지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 왜 최한빛을 남자 몸을 가진 기생역으로 출연시켰을까. 조금은 생뚱맞은 배역에 나름 의문을 품으면서도 남자인듯 여자인듯 능숙하게 기생역을 하는 연기자 최한빛이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떠오른 인물이 'MBC 조선왕조오백년 뿌리깊은 나무'에 등장했던 '사방지(舍方知)'입니다. 그는 왕족이나 신하가 아님에도 무려 14번이나 실록에 등장한 유명인입니다. 당시 중성적 이미지의 배우, 티아라 전보람의 엄마로 유명한 이미영이 그 역을 맡았습니다.

1988년에는 배우 이혜영과 방희가 '사방지'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워낙 역사 속 사실이 파격적이라 그런지 영화 자체도 선정적인 느낌입니다. 그의 인생을 대충 요약하면 바느질도 배우고 화장도 하며 자랐지만, 여종 출신이던 그는 여자 복색을 하고 다녔어도 사실 양성인간이었습니다. 여자의 몸에 남자의 신체도 갖추고 있으니 함께 자고 생활하던 여승, 여종 등과 간통하고 나중에는 과부였던 이순지의 딸과도 사통하게 됩니다. 이런 소문이 사헌부에 들어가 잡혀가게 되었죠.

1988년 개봉된 이혜영, 방희 주연의 영화 '사방지'


일설에는 이 사방지가 어미를 잃고 고모가 길렀는데 고모부 김연이 안평대군을 따르는 바람에 집안이 몰락하고 노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이 사방지와도 무관하지 않은 셈입니다. 미색이 뛰어나고 손바느질 재주도 남달라 어딜 가든 호감을 얻었습니다. 혼자 살던 여자들은 사방지와 관계가 가능하단 사실에 반색하며 따랐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조선왕조실록에 적혀 있다는게 신기하기만 할 정도로 '사방지' 이야기는 꽤나 자극적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 명종 때도 이런 양성을 가진 인물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하는데 하여튼 당시 처벌하라는 상소가 빗발쳐도 세조는 사방지에게 엄벌을 내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간통하던 과부가 처가 이순지의 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순지는 공신인데다 정인지의 사돈(극중 의숙공주가 정인지의 아들 정현조에게 시집갑니다, 그러니 엄청난 실세)이었기에 조용히 덮어주고 싶기도 했을 것이고 양성의 몸을 '병'이라 여겨 돌려보낸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도 한번 더 발각이 되었지만 그때도 살려주었다고 하지요.

최한빛이 연기하는 극중 '무영'은 기생집에서 일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얼굴과 몸을 가진 한 여성이 알고 보니 남성의 몸을 갖추고 있다니 당시 사방지는 유학자들 사이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성리학자들인 당시 사대부들은 이 문제를 크게 여겨 두고두고 문제를 삼습니다. 세조 역시 김구석과 간통 당사자인 이씨의 아들 김유악의 출세길을 막고(예종, 성종 때는 아예 부마 간택에서 그 집안은 더럽다고 제외) 이순지를 파면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세조가 사방지를 두고 '인류가 아니다'고 평했다는 점입니다. 현대인들에게도 이 증후군은 종종 나타나고 하나의 질병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당시 사회에서는 엄청나게 기이하게 여겨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헌부나 승정원에서 놀라는 모습을 묘사한 글이 상당히 '신기한 것'을 취급하는 듯 하더군요.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지며 확인했다는 글도 있구요. 영화 '사방지'에서도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괴물로 인식되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방지의 모습이 연출되었다고 합니다.

이의(二儀)라 불리며 남들과 다른 취급을 받았던 사방지, 극중 최한빛이 남성의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놀림당하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거의 5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남과 다른 특징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시선은 변함이 없는 것인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세조 시대를 묘사한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 굳이 최한빛이란 트랜스젠터를 출연시킨 뜻이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두 사람 모두 화제의 인물이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고려 후기에서 이어진 조선 초기의 시대상을 묘사하고 '사방지'와 당시 사회를 연상해보라는 뜻이었을까요. 한번 더 주목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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