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수양대군의 천벌과 점점 더 깊어지는 유령커플의 사랑

Shain 2011. 9. 2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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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수양대군에게는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습니다.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세종실록과 '금계필담'을 근거로 또다른 딸 세령(문채원)의 존재를 묘사하고 있지만 이 딸의 존재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정사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기록에 남은 그의 자녀들은 천벌을 받았다 할 정도로 평탄치 못한 삶을 삶을 살았습니다. 어제 드라마에서 묘사된대로 큰 아들 의경세자(권현상)는 세자가 된 지 2년 만에 갑작스런 병으로 죽어갑니다.

둘째 아들 해양대군(황) 역시 예종으로 즉위하여 2년 만에 죽고 맙니다. 기록상 남은 유일한 딸 의숙공주(극중 세정, 서혜진)은 정인지의 아들과 혼인하였지만 자식 하나 두지 못하고 36살에 죽습니다. 고생없이 살았던 왕가의 여성치고는 꽤 일찍 죽은 편이지요. 자녀가 없는 것으로 보아 몸이 약했던지 남편과 원만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정사인지 야사인지도 알 수 없는 옛이야기대로 수양대군이 쫓아냈다는 큰 딸 '세희공주' 만 김종서의 손자와 혼인해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녀는 집나가고 장남은 죽어가고 점점 무서워지는 수양대군의 표정

의경세자의 죽음을 필두로 사람들은 수양대군이 천벌을 받았다고 수근거렸습니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단종을 죽였기 때문에 의경세자가 죽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의경세자가 단종 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1457년 9월 2일에 의경세자가 죽고 1457년 10월 21일에 단종이 사약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으니 말입니다(자결했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어차피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니 정확치 않지만 혹자는 수양대군이 단종에게 사약을 내릴 마음을 먹었을 때 현덕왕후의 꿈을 꾼 것이 아니겠느냐고도 합니다.

'수양대군의 천벌'이라고 적긴 적었지만 저주나 천벌이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요. 궁에서는 본래 많은 사람들이 살다 떠나고 죽어갑니다. 아버지 세종이 후대를 부탁하며 돌아가신 그 자리, 내 형님 문종이 정사를 보고 숨을 거두었던 그 곳, 내 형수 현덕왕후가 아이를 낳고 죽어간 그 궁궐, 한때는 혈육이었던 사람들이 쫓겨나고 명을 달리한 그곳에서 갑자기 무서움증이 일어난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라도 갑작스런 공포에 쇠약해질 수 있는 것이구요. 죄짓고는 못산다고 수양대군 일가는 학살한 사람들의 망령이 두려워 그렇게 죽어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수양대군의 정곡을 찌른 세령의 결정적 한마디

누군가에게는 돈많이 벌고 부자가 되는 것이 삶의 꿈이고 어떤 이에게는 최고의 권력자가 되는 것이 사는 이유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부자가 아니라도 배곯치 않고 사는 것이 가장 큰 꿈이고 기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세령이 정성스레 밥을 짓고 나물 무친 밥상을 차려 김승유(박시후)를 기다리고 승유가 장터에서 세령에게 줄 가락지를 고르는 모습처럼 아기자기하게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들 하지요. 두 사람은 그 마음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릅니다.

반면 아들 의경세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수양대군(김영철)은 점점 더 궁궐이 외롭고 힘겹게 느껴집니다. 큰 딸은 드러내놓고 자신의 악행과 학살을 비난하고 나서며 부모와의 연을 끊겠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쿠데타에 찬성하지는 않아도 말없이 따라주었던 착한 큰아들은 각혈을 하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제 누나를 용서하라 합니다. 이런 꼴을 보자고 조카를 밀어내고 왕이 되었던가. 수양대군은 점점 더 괴로워지는 자신을 어쩌지 못하고 힘겨워합니다. 평소 강단있고 성품이 온화했다는 정희왕후(김서라)가 아무리 위로한다 한들 진정이 되지 않습니다.

고춧가루없이 만든 소박한 밥상, 옥가락지, 간만에 행복한 유령커플

궁궐을 나갔다 신면(송종호)에게 잡혀들어온 세령은 그런 수양대군에게 결정적 한마디를 날리고야 맙니다. 동생 의경세자의 목숨이 위태로운 줄 몰랐던 세령은 빙옥관 사람들을 죽이겠다는 아버지에게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그 업보를 자식들이 받길 바라냐고 독하게 쏘아부치고 맙니다. 안 그래도 내가 죽인 사람들 때문에 아들이 아픈 것은 아닐지 내가 가진 욕심 때문에 아들이 마음고생을 한 것은 아닌지 두렵고 고통스럽던 한 아버지가, 친조카 경혜공주(홍수현)가 모질게 독설을 뱉어도 능청맞게 웃던 수양대군이 그 한마디에 무너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수양대군은 이제 그런 딸을 용서할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자신은 이제 나물 밥상에 기쁘게 웃을 수 있는 필부가 아닙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체통과 체면을 지켜야하고 자신과 함께 학살을 저지른 신하들 때문에라도 쿠데타의 정통성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신숙주(이효정)와 한명회(이희도)같은 간신들과의 의리 때문이 아니라 피를 보고 빼앗은 왕권이니 책임감 때문에라도 허술하게 무너트릴 수가 없습니다. 딸이 자신을 공격하고 나섰으면 어떻게든 엄한 형벌을 내릴 수 밖에 없는 게 왕입니다.


수양대군은 자식의 죽음을 보며 그쯤에서 학살을 멈추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밤마다 자신을 괴롭히는 유령이 정말 존재해서가 아니라 손가락이 잘리는 듯 고통스러운 자식의 죽음 앞에 더 이상 '업'을 짓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허나 왕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인정과 뜻대로 모든 걸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단종(노태엽)의 복위 운동을 막으려면 조카를 죽여야 하고 친동생인 금성대군(홍일권)과 정종(이민우)도 죽어야 합니다. 계속 피를 보게 되리라는 사육신들의 예언은 정확했던 것입니다.


반면 수양대군에게 가족을 잃은 승유는 세령으로 인해 새로운 삶의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인연을 끊을 만큼 의를 지킬 줄 알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자 세령을 만나 필부로 사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형수(가득히)의 말대로 너무도 비극적인 커플이었지만 진정한 복수는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사람은 새로운 삶의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양대군의 고통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경혜공주의 짧지만 달콤한 행복

언제인지 정확히 적혀 있지 않지만 경혜공주는 남편 정종의 역모 때문에 첩지를 박탈당한 것 같습니다. 정종이 사육신의 역모에 가담했을 때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 뒤로는 실록에 '정종의 처'라 적히기 시작합니다. 남편이 죄인의 신분이라 첩지를 제대로 적지 못한 것인지 첩지를 박탈당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남편의 뒤를 따라다니며 고생을 하기 시작합니다. 세조에 대한 세간의 평이 아주 좋지 않았기 때문에 수양대군은 대놓고 조카를 박대하지는 못한듯합니다. 정종이 죽고 1462년 그녀는 다시 경혜공주라 불리기 시작합니다.


한 나라의 왕이 쫓겨나 상왕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유배를 가는 심정, 왕족이 쫓겨남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친동생 안평대군(이주석) 조차 단칼에 죽인 수양대군의 성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10대의 어린 소년은 너무도 의젓하게 누나를 보며 오히려 잘 됐다 하고 남편까지 유배지에 끌려가게 된 어린 공주는 언젠가 만날 거라며 어린 동생을 위로합니다. 남매는 아버지 문종(정동환)이 승하하고 난 이후 모든 것을 빼앗기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언제 정종에게 사약이 내릴지 또 언제 금성대군의 거사가 들통이 날지 몰라 불안해 하면서도 정종과 경혜공주 두 사람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사랑을 키워갑니다. 유배지에 사는 죄인의 신분으로 공주로 살 때 보다 모든 것이 부족할터이지만 단둘이 사는 삶이 나물 밥상에 싸구려 가락지 만큼이나 행복했을 것입니다. 후에 정종이 죽고 오롯이 경혜공주만 남으면 그 모습을 어찌 보나 싶을 정도로 다정한 부부입니다. 벌써 20회나 됐으니 4부 밖에 남지 않은 '공주의 남자', 비극 뿐이지만 사랑으로 행복한 네 사람의 모습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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