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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속 추석 풍경 변하긴 변했더라

Shain 2011. 9. 1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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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오작교 형제들'의 주인공 백자은(유이), 자은의 아버지 백인호(이영하)의 친구인 황창식(백일섭)과 아내 박복자(김자옥)는 자식들 보다 어린 자은과 오작교 농원을 주느니 마느니 다투고 있습니다. 본래 황창식이 백인호에게 10년만 농장땅을 무료로 빌려쓰자고 했지만 10년 동안 고생고생 황무지를 가꿔 배농장으로 만들고 보니 땅을 돌려주기 아깝습니다. 농장을 뺏기지 않기 위해 복자는 자은이 갖고 있던 각서를 훔쳐버립니다. 워낙 이 드라마 내용이 황당해 어린 연기자 유이와 연기 경력이 오래된 김자옥이 대립하는 모습은 뭔가 너무하다 싶기도 합니다.

김자옥은 1951년생으로 1970년에 데뷰했고 아이돌 출신 연기자 유이는 1988년생으로 2009년 걸그룹으로 데뷰했습니다. 두 사람의 나이차이가 30년이 넘어 40년에 가까운 만큼 두 사람이 출연했던 드라마에도 아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신체조건 조차 세대 차이가 진다고 해야할 지 유이의 신장이 173센티로 최근 걸그룹들의 표준키라 할 수 있는 반면 김자옥은 155센티대로 옛날 세대의 표준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 만큼 드라마도 많이 발전했고 많아 달라져서 출연진이나 내용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오작교 형제들'에 출연중인 김자옥과 유이

KBS 주말 드라마의 경우 좀 억지스럽다 싶을 정도로 '가족 드라마'의 전통을 고수하는 관계로 3대가 한집에 살거나 심한 경우 4대가 한집에 사는 내용도 종종 묘사되고 대부분의 가정이 하나 내지는 둘 정도만 자녀를 낳는 경향이 일반적임에도 세 형제 이상 혹은 다섯 형제가 함께 살거나 부모를 중심으로 살며 '짝을 짓는' 내용을 80-90년대부터 지금까지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습 조차 과거에 비하면 많이 달라진게 사실이고 요즘은 '막장 범죄' 드라마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90년대 초반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3대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내세워 시대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약간은 여성중심으로 돌아가는 한 가족과 남성이 경제적 주도권을 쥐고 아내를 쥐고 사는 한 가족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며 할머니, 어머니, 손녀 세대의 가정과 사랑이 어떻게 다른지 코믹하게 묘사합니다. 대발이(최민수) 가족은 대표적으로 아버지의 발언권을 중요시 하는 집안인 반면 대발과 결혼한 지은(하희라)의 집은 할머니(여운계)가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어른입니다. 아버지 역시 아내이자 지은의 엄마인 한심애(윤여정)의 뜻을 중시하는 친절한 아빠입니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 두 주부

80, 90년대에도 다양한 드라마가 있었고 요즘처럼 화제가 되곤 하는 사회문제작들이 있었습니다만('사랑이 뭐길래' 역시 어떤 의미로는 화제작) 그래도 '사랑이 뭐길래'처럼 가족이 등장하는 주말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에는 몇가지 빠지지 않는 원칙이 있곤 했습니다. 드라마 제작시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제작 수칙이라도 내려온 것처럼 명절 풍습이나 가족들의 생활 모습이 똑같은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거든요. 하긴 지나치게 가난한 서민의 모습을 묘사한 드라마는 정부의 압력으로 조기 중단되기도 했었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추석 명절이고 어제가 주말이었죠. 만약 10-20년전이라면 추석 즈음에 방영되는 드라마들은 일제히 추석 풍경을 묘사했을 것입니다. 각종 추석 특집 쇼프로그램에는 한복을 차려입은 연예인들이 등장해 이런저런 '전통놀이'내지는 경연을 했을 것이고(대표적인게 외국인 노래자랑) 드라마에도 역시나 한복에 앞치마를 곱게 입은 며느리들이 전부치고 음식을 마련해 가족들과 함께 '차례'를 지내는 모습이 묘사되었을 것입니다. 모든 에피소드가 '명절'을 중심으로 엮어지기에 조금은 지겹다 싶기도 했을 정도랍니다.

'전원일기'에서 묘사되던 식사, 제사 장면

사실 8-90년대에는 일부 중상위층을 제외한 가정에서 한복은 비싼 의복으로 취급되던 시대라 드라마 속 그런 모습은 상당히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인데다 잘못된 명절 풍습을 시청자들에게 전파하기도 했습니다. 본래 제사를 올리면 남자들도 밤을 치거나 자리를 준비하는 등 할 일이 많았는데 주부들만 분주한 모습을 연출하는 식으로 명절이 주부가 고단한게 당연한 시즌이란 식의 인식을 퍼트리기도 했고 또 80-90년대를 기점으로 많은 가정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제사나 차례를 간소화하거나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음에도 드라마에서만 그런 시대착오적인 묘사를 하곤 했습니다.

최근 방영중인 주말 드라마는 MBC '애정만만세'. '천번의 입맞춤'과 KBS '오작교 형제들', '광개토대왕' 그리고 SBS의 '여인의 향기', '내 사랑 내곁에' 등입니다. 그중 SBS의 드라마는 한편도 볼 기회가 없었지만 '오작교 형제들'을 제외한 나머지 드라마에서는 추석상을 차리는 모습을 볼 수가 없더군요. 그나마 '오작교 형제들' 조차 추석을 맞아 전을 부치는 박복자와 시어머니 신갑년(김용림)의 모습이 전부였습니다. 예전같으면 3대가 같이 사는 가족은 반드시 추석 차례를 지내는 모습을 연출했었는데 시대가 달라지긴 한 모양입니다.

'오작교 형제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부지런히 전을 부치는 유일한 가족

물론 '애정만만세'나 '천번의 입맞춤'은 가족 이야기가 등장해도 멜로가 주된 내용이고 고구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광개토대왕'엔 당연히 중추절을 묘사할 수 없으니(추석은 본래 신라 중심의 명절이라고 합니다)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제사와 가족 그리고 전통을 따지는 과거에서 레저와 휴식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현대로 넘어온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경제적, 정신적 조건들이 워낙 많으니 과거의 전통이라는 명절이 조금은 등한시 된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구요.

꼭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도 최근엔 추석을 명절이라기 보단 휴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많아졌습니다. 지금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 중에도 20-30년전처럼 '민족대이동'을 하지 않는 분들도 꽤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륜과 이혼녀 또 사랑을 이야기하는 주말 드라마가 '현실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명절 보다는 휴일이 더 좋은 시청자들의 심리 만은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리라 봅니다. 반면 아직까지도 많은 양의 전을 부치고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집안에서는 그런 '편한' 드라마가 참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하겠지요. 둘 중 어느 쪽이든 명절 하루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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