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side

내가 기억하는 '연예인' 강호동의 초심

Shain 2011. 9. 17.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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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저는 어릴 때도 코미디나 오락(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을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애니메이션이나 쇼프로그램엔 잠시 빠져든 적 있지만(목소리가 그렇게 아름다운 줄 TV 라이브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희한하게 예능은 재미가 없더군요. 덕분에 강호동이 이휘재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끌며 '오늘은 좋은 날'로 데뷰할 때도 지나가며 한두번 힐끗 본게 전부입니다. 지금도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타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닥 자주 보지 않는 프로그램이 '1박 2일'이구요.

그런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데뷰 당시 강호동에 대한 인상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1988년 씨름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해 엄청난 기록을 세웠지만 젊은 나이에 은퇴하고 1993년 MBC 특채 개그맨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사람, 당시 획기적이란 평을 받던 '오늘은 좋은 날'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덩치에 맞지 않는 '귀여운' 연기로 온 국민의 관심을 받던 신인 개그맨. 씨름선수가 개그맨이 되어도 되느냐는 질문과 함께 참신하다는 평을 동시에 받았던 화제의 인물.

포동이와 호동이, 강호동의 코미디언 데뷰 시절

아무리 코미디나 강호동에 관심이 없어도 어떻게 그런 사람을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데뷰 후에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최근까지 계속해서 예능 프로그램의 MC, 간판스타로 활약해왔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천생연분'이나 '쿵쿵따'라는 프로그램도 언뜻 본 것같고 김제동과 함께 진행하던 '야심만만'도 있었던 것같네요. 혹자는 MC 유재석과 강호동을 비교선상에 놓고 언급하기도 하지만 워낙 두 사람의 스타일이나 색깔이 다르기에 각자 독자 영역을 개척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번 '강호동 탈세'라는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 왜 처음부터 검찰 수사를 받지 않는 지가 가장 궁금했었습니다. 제가 아는 선에서 탈세라는 건 고의로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서류를 조작하고 각종 증명을 위조한다던가 재벌가의 상속세 탈세를 위한 방법처럼 주가를 조작하는 등의 적극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고 그런 행위가 있었다면 당연히 사실 관계를 정확히 증명해야하는데 어쩐지 검찰은 조용했기 때문입니다. 만의 하나 불법행위라도 있었다면 그 사이 증거 인멸도 할 수 있는데 경찰이든 검찰이든 뭔가 법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게 더 이상했습니다.

만약 검찰이나 경찰이 조사를 위해 사전 작업을 하던 중이라면 더욱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어째서 한 연예인, 그것도 엄청난 지명도를 자랑하는 한 연예인의 '혐의'를 범죄 사실이 확정되기도 전에 공개했다는 말인가. 만약 무혐의로 처분될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텐데 국세청을 비롯한 그 어느 기관에서 그 문제를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어느 언론도 강호동이 '탈세'를 위한 위법 조치를 했다는 기사는 없었지만 혐의가 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소동은 '탈세'라기 보다는 '절세' 쪽으로 결론났습니다. 몇가지 항목에 대해 세금을 적게 내고 싶어하는 납세자와 세금을 걷어야하는 세무서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그 부분에 대해 세금을 추징하겠다고 한 것으로 탈세 혐의는 물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강호동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 보니 그만큼 많이 버는 연예인이 세금을 조금 내고 싶어했다는 사실에 모두들 화를 내고 흥분한 것이었겠죠. 지금 상황은 강호동이 법을 위반했다기 보다는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고 보는 쪽이 맞는 상황인듯합니다.

위법만 아니면 절세하려는 시도는 당연한 것이냐. 그 부분에 대해선 저도 분명히 판단하기 힘듭니다. 인간 심리상 법적으로 적게 내도 된다면 당연히 끌릴 수 밖에 없을텐데 누구라고 그 유혹에서 자유로울까 싶기도 하구요. 그만큼 연예계의 세금 납부 기준이 불명확하단 증거같기도 하고 얍삽하게 세금을 적게 내보려는 한 '비싼' 연예인의 수작같기도 하고, 평소 강호동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다고 해서 이 문제를 쉽게 판단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법적으로든 강호동 본인이 양심적으로 판단하든 그건 정답이 없는 문제이니 말입니다.


그러다 문득 강호동이 연예인으로 데뷰할 때 즈음 읽었던 한편의 인터뷰, 'MBC 가이드'의 한 페이지가 떠올랐습니다. 천하장사였던 그가 은퇴후 어떤 과정으로 코미디언이 되었는가를 적은 글이었는데 당시 활약중이던 코미디언 이경규가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한번 해보라고 권유했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이 사람이 내게 무슨 장난을 하나' 싶었는데 결국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생각 보다' 어려운 코미디언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원천은 천하장사 시절의 그를 있게 한 '승부 근성'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더군요.

'강호동은 씨름 선수 시절의 승부 근성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다시 고향에 내려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코미디와 연기에 대한 기초가 전혀 안 돼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방송사 분위기를 잘 몰라 당황할 때도, 새벽에 야외 녹화를 위해 뛰어나갈 때도 그는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하고 선수 시절의 힘들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고 한다.'

'그는 개그맨을 언제까지나 계속하겠다는 욕심은 없다. 스스로 신이 나서 일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을 즐기며 순간순간 열심히 할 뿐,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미련 없이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씨름판이 떠나갈 듯 관객들이 환호할 때 느끼던 감격과 희열을 지금은 코미디를 통해 느끼고 있다는 강호동. 그는 “건강한 육체, 건강한 정신, 건강한 웃음을 가진 사나이”로 기억되고 싶어한다. 또한 좀 거창한 말이긴 하지만 자신이 코미디의 발전에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도 있다. 많은 별명 중 카멜레온이라는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그는 앞으로 코미디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개성 강한 역할을 맡고 싶은 바람이 있다.'

출처 : MBC 가이드, 1994년 11월.

흥미로운 건 그때 당시 강호동이 개그맨 생활을 일종의 외도 쯤으로 여겼고 언젠가는 씨름판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며 방송계에서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 미련없이 떠날 거라 마음먹었다는 점입니다. 최근 '1박 2일'에서 이만기와 기념비적인 경기를 벌이는가 하면 탈세 혐의가 생겼을 때 바로 은퇴를 결정하는 모습 등, 그의 언행이 과거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어 놀랍단 생각이 들더군요(이 기사는 1994년 11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건강한 육체, 건강한 정신, 건강한 웃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본인에게 얼마나 부끄럽지 않은 연예계 생활을 했는지 그건 본인만이 알고 있는 일일테고 또 자신이 평가할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잠정 은퇴'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참 노력하며 살았던 사람이란 점은 인정하고 넘어가야겠더군요. 한 연예인을 평가함에 있어 그 연예인에 대한 위법성이나 호불호를 거론할 수는 있어도 팬의 입장에서 그의 인간성이나 삶의 자세까지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면에서 그의 꾸준한 노력은 존중받아야하지 않나 싶기도 하구요.

저는 이번 '강호동 탈세' 소동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된 강호동, 그가 돌아오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수 있는 건 본인의 의지라 보고 있습니다. 방송계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 미련없이 떠나겠다는 그의 자세로 보아 팬들이 그를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유재석이 잡아도 또 다른 누군가가 만류해도 떠날 것이 분명합니다. 절세였던 어쨌든 세금을 적게 내고자 한 그의 노력을 끝까지 밉게 본다면 그것도 팬들의 판단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구요. 어쨌든 초심을 잃지 않고자 노력한, 연예인으로서 쉽지 않은 태도를 보여준 인물이었단 점은 기억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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