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나무, 아들 세종이 깨달은 마방진의 비밀은?

Shain 2011. 10. 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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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털어놓는 말이지만 저는 방송국 SBS에서 사극을 만든다고 하면 일단 환영하지 않습니다. 개국 이후 만든 정선경, 임호 주연의 '장희빈' 같은 작품은 맛깔나게 사극의 재미를 살리긴 했으나 복색 고증에는 실패했었고 김재형 PD가 만든 '여인천하'는 엄청난 인기를 끌며 100회가 넘는 방영을 했으나 인기에 영합해 경빈(도지원)의 활약상을 지나치게 강조했고 역사는 제껴놓고 활약하는 정난정(강수연)이 지나치게 만능이란 평도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SBS 사극은 사극의 전통을 무시하고 '일단 재미있게' 만들려고 하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인데 가끔은 배우들이 한복만 입고 시대가 과거일 뿐 내용은 사극의 탈을 쓴 코스프레 창작극이라는 평가도 받습니다. 최근엔 정통사극으로 인기를 끌던 KBS 조차 이런 창작 사극을 만드는 경향이 있으니 할 말이 없긴 합니다만 그나마 KBS는 복색 고증이나 배경 고증엔 그 어느 방송국 보다 뛰어난 경력을 갖추고 있지요.

심온을 무고하고 낚시를 즐기는 태종과 태종의 숙청이 시작되자 방진을 완성하는 세종

이제는 퓨전사극의 시대라 그런 '전통' 만으로 사극의 매력을 찾기 힘든 시대, 예전 'MBC 조선왕조오백년'에서 '뿌리깊은 나무'라는 사극을 만든 적이 있는데 SBS도 같은 제목의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습니다. 같은 제목이지만 편년체였던 과거 드라마와 달리 이번 드라마에는 원작 소설이 따로 있고 퓨전 사극인지라 미스터리 추리극의 면모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극의 발전이기도 하지만 SBS 만의 독자적 색깔을 가진 사극이 탄생할 것 같기도 합니다. '무사 백동수'같은 드라마는 좀 걱정스럽긴 합니다만 '뿌리깊은 나무'의 작가진이 김영현, 박상연이고 보니 엄청난 작품이 될 것 같네요.

혹시 1983년 MBC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대왕을 누가 맡았는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드라마 자체가 달라 SBS '뿌리깊은 나무'와 비교하기 힘들지만 당시 세종대왕 역을 맡았던 배우는 극중 심온 역으로 나온 한인수입니다. 사위인 세종과 딸 소헌왕후를 위해 별다른 변명없이 죽어간 인물로 표현된 심온. 주인공 똘복이의 주인어른이자 억울한 희생양이기도 했죠. 83년 당시의 심온은 최낙천, 소헌왕후는 김영애였답니다. 한인수의 외모를 보니 거의 30년의 세월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네요(그러고 보면 한석규는 당시 84년 강변가요제에 출연했었네요).

1983년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 역을 맡았던 한인수, 이번에는 심온 역.

외척을 제거하기 위해 아내 원경왕후의 가족을 몰살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개국공신들 조차 제거해버린 태종 이방원, 그가 세종의 아내 소헌왕후의 집안까지 몰살시켰음은 아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덕분에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비극의 주인공이 된 가족 문종과 단종을 거들어줄 외가집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니까요. 어찌 보면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종의 완고한 성격이 이런 비극을 낳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전 KBS '대왕 세종'에서 세종(김상경)의 아버지 역을 '공주의 남자'에서 수양대군으로 열연한 김영철이 맡았던 기억이 납니다.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와 강경한 의지, 그런 캐릭터가 목소리가 크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요. 이번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상왕 태종 역할로 백윤식을 고른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70년대에 데뷰한 두 배우는 TV에서 활약하는 배우들 중 가장 능력있는 연기파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백윤식은 세종 역의 한석규와 '서울의 달' 등에서 함께 공연한 적도 있는 배우입니다.




마방진의 비밀과 태종의 숙제는 무엇?

이 드라마의 원작 소설은 이정명의 '뿌리깊은 나무'라고 합니다. 지금 책을 구매중이라 아직 읽어보진 못했는데 첫 1, 2회의 내용은 소설과 다르다고 하더군요. 천재적 자질을 가졌던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던 중 의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한글 창제를 추진하는 기관과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 그 미스터리를 풀어헤치는 과정이 소설의 내용이라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첫회는 아버지 태종(백윤식)과 세종(송중기)의 대립 그리고 아버지 태종이 세종에게 내린 빈 찬합의 비밀을 깨닫는 과정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빈 찬합의 고사'는 순욱이 조조에게 빈 찬합을 받고 자결했다는 내용으로 유명합니다. 즉 상왕 태종이 자신의 외척 숙청에 반기를 든 세종에게 죽으라고 했다는 뜻으로도 보이지만 이는 똘복(채상우)을 살릴 때 대립했던 세종의 국가관을 엿보기 위한 시험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세운 이방원의 조선과 '나의 조선'이 다르다는 말에 태종은 세종을 채근하며 답을 하라 말하지만 세종은 답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남다른 용기로 호위무사 무휼(조진웅)을 재촉해 똘복과 자신의 목숨을 구했을 뿐입니다.

세종은 상왕 태종이 내린 빈 찬합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지엄한 아버지 태종이 내린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옥새와 오매패, 어도 등을 가져와 왕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까지 하고 있는 세종을 보고 태종은 빈찬합을 내리고 군사를 집결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일가 친척들을 숙청시킬 때 마다 항의도 만류도 못하고 방진을 풀고 있던 세종에게 태종은 방진을 푸는 비결을 알려준 적이 있습니다. 태종은 오로지 '일(一)'이라는 숫자만을 중앙에 놓고 모든 걸 버리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왕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왕 이외의 권력을 모두 무력화시키는 태종의 국가관을 피력한 것입니다.

태종이 내린 빈찬합을 보며 고민하고 있던 세종은 그 빈찬합이 9칸이며 방진의 모양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풀지 못했던 33방진의 비밀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고 가로, 세로 어느 쪽으로 합해도 같은 수가 나오는 방진이 오로지 '일' 만 존재하는 아버지의 방진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알아낸 것입니다. 모든 답은 그 '일'에 있었습니다. 비밀은 아버지가 놓았던 '일'의 위치를 어떻게 정하냐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방진을 푸는 비결이자 왕의 위치를 결정하는 비결입니다.

'일(一)'을 어디에 둘 것이냐, 방진의 비밀을 알아낸 세종.

방진을 완성하는 방법은 의외로 아주 간단합니다. 3방진의 경우 가로 세로에 얽매이지 않고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일정한 규칙으로 채워나가며 완성시키면 됩니다(5방진은 배열 방법이 약간 다릅니다). 방진의 숫자에 따라 방진을 채워나가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처음부터 중요한 건 정해진 1의 위치와 배열 원칙이라는 점에는 대동소이합니다. 1의 위치 즉 왕의 역할과 지위가 정해지면 나머지 숫자들의 위치도 정해지는 것이 마방진의 비밀입니다.

칸을 채워넣는 방법이 일정하기 때문에 왕의 역할에 따라 완벽한 하나의 전체 조직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숫자가 어긋나면 그 방진이 망가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방진을 완성하는 건 원칙에 따라 배열하는 것이 키포인트입니다. 33방진을 풀어내는 해법을 깨닫게 된 세종방진의 비밀과 함께 태종과는 달라야할 자신의 조선, 그 국가관을 깨닫게 된 것이라 봅니다. 한 사람의 왕으로서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 지 그 시작을 알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첫 시작은 마치 영화 '영웅'의 암살 장면인 듯 화려하게 드라마의 오프닝을 장식했습니다. 제가 읽은 기억으로는 고기를 몹시도 좋아했고 성질은 급한데다 약간은 살이 찐 느낌의 세종은 어쩐지 천재적인 능력을 숨긴 특이한 왕이었습니다. 종종 욕설도 입에 담을 수 있는 별난 세종대왕의 캐릭터를 연기하겠다는 한석규의 해석이 어떨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배우도 배우지만 제작진, 특히 작가분들이 특별한 사람들이라 화제작이 안되기는 힘들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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